▲ 작년에 3백 개도 넘었던 감이 금년에는 기상이변으로 죄다 떨어지고 이 정도밖에 못 얻었다.
김수복
어머니 깨워오라는 어머니에게서 나는 무엇을 보는가
돌아보니 알량한 집수리 좀 한다고 어머니를 굶긴 날이 참 많았다. 내게 일중독 비슷한 증세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한참 뭔가를 좀 한다고 뚜닥거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하늘의 해를 찾아보면 항상 저녁에 가까워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 자신도 배가 고팠다.
추석 직후에는 먹을 것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어서 금방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많은 먹을 것들이 떨어진 뒤에는 밥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은 뭘로 끼니를 때우지? 국은 뭘로 끓이지? 밥 짓는 일이 이렇게도 난감하고 거대한 사업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하면 내가 참 세상을 헛되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가끔은 낭창낭창하게 잘 익은 홍시 몇 개로 대충 끼니를 떼우기도 했다. 작년에는 감을 3백 개도 넘게 수확을 해서 두 달 이상 어머니의 간식거리가 되어주었는데 금년에는 막판의 폭우로 죄다 떨어지고 몇 개 안 남은 것마저 까치들이 공격을 해서 일찍 수확해 버렸다. 그것으로 가끔 잊어버린 점심 대용을 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오매 이바지네 이바지여. 먼 홍시가 이렇게도 크다요. 고맙소, 고맙소 야." "너무 많이 고마워하지 말아요. 밥 못 챙긴 내가 미안해지잖어."사실로 그렇다. 어머니가 고마워하면 할수록 나는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신다. 그 진도의 내용이 어찌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웃다가 배꼽이 빠질 것이다.
"아이고 참말로, 이 고마운 것을 으찌케 나 혼자 먹을 것이요. 집이 어머니 깨워서 항꼬 잡숫자고 하시오, 야?""어머니요? 우리 어머니를 깨우라고?""아따 참말로, 이 좋은 것을 으찌케 나 혼자만 먹을 것이요. 얼른 깨워 오시오, 잉?""금매, 그럴께라우? 우리 어머니도 깨워 올께라우?""아이 그래야제라. 잠자는 사람 잠잔다고 내버려 두고 먹는 거, 그것 참말로 죄로 가는 것이요 잉? 얼른 깨우시오, 야? 얼르은."눈곱 만큼도, 털끝 만큼도 농담이 아니다. 재촉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에는 "아이고 어쩌까, 큰일났네"하는 투의 애닯음마저 절절이 깔려 있다. 이러한 애닯음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과 귀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년간의 동거로 익숙해진 마음이 아니고는 느낄 수 없는 인간사의 내밀한 점액성, 정이라는 이름으로나 번역이 가능한 이 끈적끈적한 것이 내 가슴을 돌고 돌다가 마침내는 쿵, 쿵 울리는 북소리로 환원한다.
그나저나 이런 때는 할 말이 막히고 난감하다. 어머니로부터 어머니 깨워오라는 당부를 받았는데 나는 어디 가서 어떤 어머니를 깨워야 하는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해서 후대에 두고두고 여러 가지 말을 낳은 장자(莊子)의 심중에 들어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는 느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