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소설] 나트륨 로맨스

김몽의 SF단편선

등록 2010.11.11 17:38수정 2010.11.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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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륨 늠름한 나트륨 군의 금속시절
나트륨늠름한 나트륨 군의 금속시절Wikimedia Commons

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트륨 군(Na)으로 말할 것 같으면 주기율표에서 알아주는 명문 금속가문인 제1족(族)의 일원으로서 원자번호 11, 원자량 22.9898의 당당한 신체조건을 지닌 훈남이다.

처음 나트륨군이 염소(Cl)양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다. 제1족 가문은 뼈대 있는 알칼리 금속가문으로서 휴대용 배터리로 성공한 리튬(Li) 선생, 3공화국때 화학비료를 지낸 칼륨(K) 선생, 원자시계로 일가를 이룬 세슘(Cs) 선생 등을 배출하여 주기율표에서 방귀 깨나 뀌는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염소양은 미천한 17족 할로겐 가문으로 브로민(Br)과 같은 독가스들이 즐비한 깡패 가문이었다. 염소양 역시 툭 하면 아무 남자에게나 전자를 받아 음이온이 되는 등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였다. 리튬, 칼륨, 세슘 등 집안 어른들은 나트륨군을 앉혀 놓고 심하게 꾸짖었다.

"우리는 양반인 금속가문이고 저쪽은 날라리 기체 가문인데 어찌 결혼생활이 평탄하겠느냐? 할로겐족은 정조 관념이 부족하여 아무한테나 전자를 받는다는데, 여자는 모름지기 화학적으로 조신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이미 염소양의 팜므 파탈적 매력에 푹 빠져버린 나트륨군의 귀에는 집안 어른들의 충고가 고리타분한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염소와 결혼하겠습니다. 염소와 결혼하지 못할 바에야 벤조산나트륨(C7H5NaO2) 같은 방부제가 되어 코흘리개들이 먹는 가공식품에서 살겠습니다."

나트륨 염소 결혼식 신랑 나트륨과 신부 염소가 소금으로 한 몸이 되는 결혼식 장면
나트륨 염소 결혼식신랑 나트륨과 신부 염소가 소금으로 한 몸이 되는 결혼식 장면Wikimedia Commons

나트륨군은 결국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플라스크에서 염소양과 결혼식을 올렸다. 둘의 결혼식에는 물(H2O) 한 방울이 주례를 섰는데 물이 플라스크에 들어오자마자 신랑과 신부는 엄청난 빛과 열을 내면서 이온결합을 하였고, 결국 한 몸이 되었으니 이를 소금(NaCl)가족이라 명한다.


소금가족이 된 나트륨군과 염소양은 한동안 깨소금 맛 나는 신혼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달콤한 신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처녀 때 염소기체로 자유롭게 생활했던 염소양은 미혼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도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생활비를 이것 밖에 안 줘? 당신은 왜 그렇게 짜?"
"소금이 짠 게 당연하잖아!"


소금가족의 이사 물 좋은 강남으로 이사가는 소금부부
소금가족의 이사물 좋은 강남으로 이사가는 소금부부Wikimedia Commons

허영심으로 가득한 염소양은 물(H2O) 좋은 강남으로 이사 가자고 남편을 졸랐고, 마음 약한 나트륨군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은행에서 모기지론을 받아 물(H2O) 많은 강남으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강남의 산소(O) 부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염소양의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자신은 결혼 후에 고체가 되어 답답하게 살았는데 산소 부인들은 결혼 후에도 액체로 자유롭게 사는데다 멀쩡한 수소(H) 남편을 둘씩(H2O)이나 데리고 사니 부러울 따름이었다.

결국 염소양은 나트륨군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마음 약한 나트륨군은 자신이 가진 전자까지 위자료로 내어주고 양이온(Na+) 싱글이 되었다. 나트륨군은 전자가 하나 부족해 내핍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혼한 염소양은 위자료로 받은 전자로 화려한 싱글(Cl-)이 되어 물 좋은 강남에서 재미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나트륨군의 불행한 로맨스를 전해들은 한 시인은 "소금, 함부로 물에 넣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너 때문에 이혼할 커플들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읊었다.
#김몽 #나트륨 #염소 #소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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