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끝내고 사흘간 보양식을 먹다

사흘 단식 일지-4

등록 2010.11.13 11:52수정 2010.11.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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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꺼번에 쓴 글이 아니고 매일매일 일기처럼 쓴 글이라서 '오늘'같은 표현이 등장하나, 이해해 주기 바란다.


  <보식(복식, 회복식) 사흘>

  보식 첫날(몸무게: 59kg)

오늘 일어나보니 아침에 배가 말랑말랑했다. 보통 때는 배가 불러서 배를 눌러도 배가 안 들어갔는데, 지금은 배를 누르니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몸무게를 쟀는데, 살이 3킬로그램 가까이 빠져서 놀랐다. 이렇게 많이 빠진 것은 아팠을 때 5일 만에 5킬로그램이 빠진 이후 처음이다. 너무 기쁘다.
처음에 감식 할 때나 단식 초기에는 뭔가 토할 것 같고 너무나 배고팠지만, 아침에 딱 보니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뱃속에 아무것도 없는 시원함과 공기를 들이마시면 바로 항문으로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워지면서 앞 가죽과 등가죽이 붙고 그런 만큼 의식이 맑아지면서..."
어머니는 그래서 단식을 하신다는데, 나는 솔직히 그런 것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침에 사흘 만에 처음으로 음식(미음)을 먹었는데, 그 조금으로 배고픔이 사라지고 막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점심 때 너무 맛있어서 미음을 빨리 먹었는데, 엄마가 한 말씀을 하셨다. 너는 밥을 먹을 때 너무 빨리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이다, 천천히 먹으면 위가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너무 빨리 먹으면 위가 놀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좀 있다가 사과즙을 먹었는데, 너무나 달콤했다. 이 음식을 아끼는 느낌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흘을 단식해도 배가 고파 죽으려 그러는데, 가뜩이나 몸이 약한 엄마가 버틸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었다. 보면 엄마는 단식 할 때 통증이 오면(나는 3일만 해서 이런 경험이 아직 없다.) 힘들다며 막 짜증을 낸다. 그래도 단식이 좋으니 하는 것 같다.


저녁때 우리 식구들이 된장국을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 왈, 아직 된장국도 먹지 말라는 것이다. 된장은 수프 수준인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 너무나 좋다. 이제 곧 밥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흐흐흐, 더 더 좋다.

  보식 둘째 날(몸무게: 59.5kg)

오늘은 평소와 느낌이 다르지 않았다. 단식을 한다는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침은 늦게 일어나서 굶고, 점심과 저녁은 버섯, 호박, 당근 등을 넣은 엄마표 야채죽을 해 먹었다. 간도 적당히 잘되고, 맛도 일품이어서 너무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어도 산에서 먹은 초코파이와, 굶었을 때 먹은 밥을 따라갈 수 없듯, 이 야채죽도 며칠 굶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야채죽 때문에라도 단식을 다시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는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낼모레면 나도 밥을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힘들다는 단식과 회복식 사흘 중 이틀을 끝내 좋다. 이때까지 잘 버틴 것 같다.

  보식 셋째 날(몸무게: 59.5kg)

오늘은 완전히 평상식을 회복한 듯해서 너무나 기뻤다.
아침에는 어머니께서 몸에 먹을 것이 안 들어가서 그런지 너무 아프셔서 내가 저녁과 아침에 계속 어머니를 주물러드렸다. 아, 단식을 하면 자기 몸이 어디가 아픈지 안다고 하셨다. 사흘이나 나흘째 심한 통증이 오는데, 바로 그 부위가 건강하지 못한 부분인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비장이 지나는 혈자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 아침에 우리 부속건물에서 학교로 내려오기 힘들다고 하셔서, 내가 혼자 내려와서 아침을 해 먹었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해봤지만 된장죽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먼저 밥 한 공기에 물 두 그릇을 넣었는데, 조금 있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 밥이 눌어서 타고 있었다. 그래서 물을 한 바가지 퍼놓고 계속 부었더니, 비로소 죽다운 죽이 되었다. 중간에 된장을 넣을 때 어머니가 한 것이 생각해내서, 된장을 물에 풀어서 넣고, 두부도 으깨 넣었다. 그러고보니 살면서 어머니가 사이사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많은 것 같다.

오후에 아버지가 오셨을 때 놀라셨다. 내가 먹는 것을 (감식, 보식 포함) 9일이나 참았다는 것과, 된장죽을 잘 끓였다는 것 때문이었다.(된장 죽은 매우 맛있었다!)

  단식을 끝내고.

단식을 하고 나니 먹을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되고, 내가 잘 먹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 몸에 있던 나쁜 독소와 음식물을 쫙 뺐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몸이 가벼워서 매우 좋다.  단식을 할 때는 다음부터는 단식을 안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음에도 단식을 꼭 하고 싶다.

내 인생에 많은 배움이 된 날들 중 가장 인상 깊은 배움인 것 같다. 2010년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그렇게 내 열세 살의 9일이 흘러갔다.
#단식 #보식 #복식 #회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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