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좌상의 안면은 어디로 갔을까

국보 제122호 진전사지 삼층석탑을 찾아서

등록 2010.11.17 10:59수정 2010.11.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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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22호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 소재한 진전사지 삼층석탑 ⓒ 하주성

▲ 국보 제122호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 소재한 진전사지 삼층석탑 ⓒ 하주성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는 진전사지가 있다. 진전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이곳 진전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8세기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진전사는 우리나라 선종을 일으킨 도의선사가 신라 헌덕왕 13년인 821년에 귀국하여 오랫동안 은거한 곳이다.

 

이 진전사에서는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많이 배출이 되었으며,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체발득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진전사는 16세기경에 폐사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진전사지에는 국보 제122호인 삼층석탑과 보물 제439호인 부도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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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인 하층 기단에 조각된 비천인이 좌상으로 되어있다 ⓒ 하주성

▲ 비천인 하층 기단에 조각된 비천인이 좌상으로 되어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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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인 비천인이 좌상으로 조각되어 특징이 있다 ⓒ 하주성

▲ 비천인 비천인이 좌상으로 조각되어 특징이 있다 ⓒ 하주성

 

거대 사찰이었을 진전사

 

국보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보물인 부도탑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상당하다. 또한 둔전리를 나오다가 보면 절의 축대로 사용되었을 만한 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아마 이 진전사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현재 둔전리 야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현재의 진전사로 가는 길 우측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이번 답사가 4번째이다. 2004년과 2006년 그리고 2008년 비가 오는 날과 이번 11월 14일이다. 다행히 갈 때마다 시기적으로 다르게 찾아갔는데, 가을에 찾아간 것은 처음인 듯하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분위기 때문인가? 아니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가?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언제나 감탄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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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중상 팔부중상 역시 좌상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 하주성

▲ 팔부중상 팔부중상 역시 좌상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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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중상 돋을새김을 한 팔부중상이 역동적이다 ⓒ 하주성

▲ 팔부중상 돋을새김을 한 팔부중상이 역동적이다 ⓒ 하주성

 

도대체 여래불의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그동안 수많은 문화재를 답사를 하면서도, 지금 다시 찾아가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문화재를 쉽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창피스럽다. 지금처럼 문화재 한 점에 적게는 30장, 많게는 60장 정도의 사진을 담는 것이 아니고, 고작해야 5~6장의 사진만 달랑 담아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낯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런 지난 사진이라도 있으니 문화재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국보 제122호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높은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을 설치했다. 밑 기단에는 연화좌 위에 좌정한 비천상을 각 면에 2구씩 조성해, 총 8구의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윗 기단에는 한 면에 2구씩 8구의 팔부중상을 조각하였다. 일층 탑신에는 한 면에 한 구씩 여래좌상을 조각되어 있다. 진전사지 석탑의 특징은 모두가 좌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천인이나 팔부중상의 경우에는 입상을 조각하는데, 이 석탑은 돋을새김한 모든 상이 좌상이다.

 

그런데 이 여래좌상 중에 서편으로 앉은 여래좌상의 얼굴이 사라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 사진자료를 찾아보니, 역시 그 자료에도 여래좌상의 안면이 없다. 그저 희미한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이번 답사를 하면서 '도대체 이 여래좌상의 안면을 누가 떼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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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불 1층 몸돌에 돋을새김한 여래좌상. 광배가 몸과 머리에 있는 것이 뚜렷하다 ⓒ 하주성

▲ 여래불 1층 몸돌에 돋을새김한 여래좌상. 광배가 몸과 머리에 있는 것이 뚜렷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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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좌상 안면만이 훼손된 여래좌상. 딴 부분에 비해 얼굴만이 사라져버렸다 ⓒ 하주성

▲ 여래좌상 안면만이 훼손된 여래좌상. 딴 부분에 비해 얼굴만이 사라져버렸다 ⓒ 하주성

내 땅에 소재한 문화재부터 관심을 가져야

 

딴 면은 다 괜찮은데 서쪽 편의 여래좌상과 그 아래 팔부중상 중 왼편의 얼굴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탑이다. 만일 일부러 훼손을 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깨끗하게 안면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여래좌상과 팔부중상의 안면을 일부러 떼어낸 듯하다.

 

기단부와 몸돌 1층에 세련된 조각들이 있어 국보로 지정이 될 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안면이 사라지다니. 혹 세월이 오래되어 자연적으로 마모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다면 딴 조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왜 한 편의 여래좌상과 팔부중상의 얼굴이 사라진 것일까?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문화재들. 세월이 지나 자연적으로 변화가 되고, 풍우에 씻겨 그 아름다움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안타까운데, 이렇게 누군가 일부러 훼손이 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문화재의 반환도 중요하지만, 내 땅에 있는 문화재부터 간수를 해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1.17 10:5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진전사지 #삼층석탑 #국보 제122호 #양양 #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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