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 〈제네시 일기〉
포이에마
크리스천이란 하나님의 뜻을 좇는 자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와 생명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다. 기도나 묵상도 그 선상에 있다. 결코 자기 업적이나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시간이 아니다. 자칫 감투나 일이 많다 보면 하나님의 본궤도에서 이탈하기도 그만큼 쉽다.
어떻게 그걸 경계하고 차단할 수 있을까? 홀로 고독해 지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그때에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교회 구성원들이 많아지고, 강연과 설교와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결코 고독해지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단순화하고 끊임없이 비워내는 자만이 참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세례 요한이 청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홀로 고독한 데에 머무른 까닭이다. 예수가 십자가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갔던 것도 겟세마네 동산의 고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 바쁠수록 더더욱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의 <제네시 일기>는 뉴욕의 북부에 있는 제네시 수도원에서 7개 월 간 머문 그의 수도생활 일기다. 존 유드 수도 원장을 비롯한 베네딕트, 제임스, 조셉, 그리고 그레고리 수사는 그에게 적지 않는 생명의 가르침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건져 올린 고독한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참된 여정이었다.
"더 이상 편지 한 장 오지 않을 때, 생각해주거나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 하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평범한 수사로서 더도 덜도 아닌 형제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할 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내 존재가 지워질 때, 비로소 마음과 생각을 충분히 비워서 하나님이 당신의 임재를 드러내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참다운 기회를 드릴 수 있을지 모른다."(91쪽)물론 그는 단순 노동도 반복해야 했다. 그 속에서 빵도 굽고, 돌도 다듬고, 건포도를 세척하고, 감자 껍질도 벗기고, 침대 시트도 다림질하고, 페인트와 사포질도 되풀이해야 했다. 더욱이 수도사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규율과 책임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이 1974년 6월 2일에 시작된 그 삶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탈진한 이유였다.
그러나 금식과 순종이라는 자기 부정을 통해 하나님의 거대한 세계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수도사들을 향한 너그러운 관용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참된 연합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누렸던 참된 평안을 그도 누리게 된다. 여태껏 수많은 강연과 원고 청탁으로 둘러쌓인 그의 바쁜 흐름에 쐐기를 박는 시간이었다.
모름지기 크리스천 가운데는 괜히 바쁜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 욕망 때문에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그렇다. 더욱이 그들이 기독교계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조직을 더 비대하게 짜고, 역량을 더 크게 과시하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아무리 바쁜 크리스천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홀로 고독해 질줄 모르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친다는 것을. 2천년 전 유대교를 주름잡은 종교지도자들도 길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세를 과시하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정화시켰던 인물은 세례 요한과 예수였다. 하나님 앞에 홀로 고독한 이유에 있다. 헨리 나우웬이 깨달은 바도 바로 그것이었다.
제네시 일기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포이에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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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도 홀로 고독해 질 줄 알아야 진정한 크리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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