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평론가가 구청에 간 까닭은...

[화제] 공무원들에게 휴식과 나들이 독려하는 광주 광산구청

등록 2010.11.22 15:47수정 2010.11.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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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평론가 나의승씨가 광주 광산구청 공무원들과 함께 음악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은 오디오 한 대와 김밥 도시락이 음악사를 이해하는 귀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 이주빈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교육 시간도 아닌데 공무원들의 자발적 참여 높아

<오마이뉴스>에 재즈이야기를 연재했던 재즈평론가 나의승씨. 그가 지난 19일 광주 광산구청 상황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에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즐기지 않는 그가 50여 명의 공무원과 한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들이 함께한 자리엔 도시락 김밥과 생수 한 병, 그리고 나씨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음악이야기 몇 대목이 출력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아직 김밥을 먹고 있고, 누군가는 생수로 입안을 헹구는 사이 나씨가 입을 열었다.

"지금 여러분이 듣고 계신 곡은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가 작곡한 곡입니다. 서양음악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음악은 크게 바흐 이전과 바흐 이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바흐는 순정율 음악시대를 평균율 음악시대로 바꾼 이죠."

그렇게 바흐로부터 시작한 음악이야기는 한 시간쯤 흘러서는 찰리 버드 파커가 대표하는 '밥 재즈'에 도달했다. 파커를 후원했던 루씰드 가문은 엇박자의 효시라 불리는 쇼팽도 후원했었다는 감춰진 이야기까지 곁들이면서.

그의 음악이야기는 지자체에 대한 당부로 끝을 맺었다.

"거리음악가를 버스커(busker)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버스커를 거리음악가라고 부르지 않고 '성공 대기자'라고 부르며 지자체에서 일정한 후원을 해줍니다. 나름의 기준으로 심사를 해서 버스커가 공연할 수 있는 거리 공간을 잡아주고, 약간의 돈도 지급합니다. 돈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 버느라 바쁘더라도 이런 문화적 감수성은 유지하세요' 하며 지자체에서 문화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광산구도 그런 시민의 문화감성지수를 높이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한 시간이 넘는 음악이야기가 끝나자 50여 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이 오랫동안 박수를 보냈다. 그들 모두 어떤 문화적 세례를 받은 듯 행복한 표정이었고, 박수에선 감사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들이 공무원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 모임을 주관한 오경수 광산구청 총무과장은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교육시간도 아니고 참석하고 싶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가신청을 하는 모임이라 좋은 취지임에도 참여율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인데 갈수록 참여율이 높아져 그것이 고민일 정도"라고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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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청 런치토크 '너나들이'의 가장 큰 장점은 직원 스스로 참가신청을 하고, 주제나 강사 선택 역시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의 모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윤리적 소비'를 주제로 열렸던 런치토크의 한 장면. ⓒ 광산구청 제공


"우리도 대강당에 모아놓고 교육할 수 있지만, 그런 전시행정 해서 뭐하나"

오 과장이 말한 이 모임은 광산구청 '런치토크(lunch talk, 점심대화) 너나들이'. 너나들이는 너와 나 구분 없이 편하게 참가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런치토크는 한 달에 두 번 실시하는데 지난 주제는 '윤리적 소비'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 주제는 '오카리나 연주와 함께 하는 생식'. 주제와 강사 선택 역시 직원들이 내부 통신망을 통해 토론해서 직접 결정하고 있다.

광산구청 관계자는 "공직사회가 내부구조에 갇혀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세상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공무원들이 무능해서도 아니고 생각이 없어서도 아니고 다만 세상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문화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계기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문화적 감수성은 바깥바람 쐬며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고 듣고 얘기하면서 직원 스스로 의미 있고 생산적인 자극을 받는 것"이라며 "무슨 교육 받듯이 정형화된 교육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면 프로그램 안에 갇혀버리고 말기 때문에 최대한 직원들의 자발적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의 말처럼 런치토크는 주제나 강사나 미리 정해진 것이 없고, 참여예정 직원들도 확정되지 않는다. 주제나 강사에 따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광산구청 관계자는 "대강당에서 최대한 많이 모아놓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전시행정 해서 뭐하나"며 "중요한 건 직원 한 명이라도 자기의지로 실속 있게 듣고 스스로 문화감성지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문화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해 광산구가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또 있다. 한 달에 한 번, 하루 '출장'을 내고 자기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관례적으로 써왔던 출장보고서를 쓸 필요는 없다. 산에 오르든 영화를 보든 미술관에 가든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 구청 바깥에서 차분히 생각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취지다.

또 서울이건 광주건, 바깥세상에서 토론회나 학술세미나 등이 열리면 보고만 하고 참석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과 중 상관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참가보고서를 따로 쓸 일도 없다. 세상 트렌드 변화에 대한 조응 능력을 스스로 키우라는 것이다.

이렇듯 광산구청이 직원들의 문화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민형배 구청장의 강한 의지 때문.

기자 출신으로 시민단체 대표를 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민 청장은 "행정 창의력이 높아지려면 직원들의 문화감성지수가 높아져야 한다"며 간부들에게도 "쉬는 날엔 구청장 눈치 보지 말고 제발 쉬라"고 권유하고 있다. 간부들이 나와서 일하면 부하 직원도 나올 수밖에 없는데 휴일에 쉬지 못한 직원이 어떻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광주 광산구청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정책의 핵심은 직원들의 문화감성지수를 높여 행정서비스 질을 높이고 그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순조롭게 출발한 광산구의 새로운 시도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안팎의 기대가 높다.
#광산구청 #민형배 #공무원 #런치토크 #문화감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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