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거사 정리의 성과와 의의'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진실화해위원회
물론 정승윤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지난 11월 4일 공개한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진실위 국제학술회의 자료집 '한국 과거사 정리의 성과와 의의(Transitional Justice and Beyond in South Korean)'를 보면 정승윤씨는 진실위 상임위원 신분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상 인권침해사건 관련 주요 법적 쟁점에 대한 분석'이란 제목의 논문을 싣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중앙일보에 쓴 글을 보면 문제가 되었던 이영조 위원장의 글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1월 19일 배포한 '오마이뉴스 보도(2010. 11. 18. 목) 관련 반박자료'에서 "이영조 위원장은 '제주 4·3 사건'에 관해 한국정부의 과거사 정리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a Communist-led rebellion)'이라는 표현은 사건의 발단에 대해 언급한 데 불과하며, '제주 4·3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공산주의 반란자들에 대한 동조 혐의를 받은 제주도민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점(Government forces summarily executed villagers suspected of helping the rebels)을 글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원문은 명확하게 제주도 4·3사건에 대해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 4·3사건을 공산주의 세력이 미군정에 대항해 무력폭동을 꾀한 사건으로 예를 들며, 46년 경북의 추수봉기, 여수 사건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미군정에 대항해서, 그리고 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국 정부에 대항해서 무력 폭동(armed revolts)을 꾀하고 있었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면, 1946년 10월, 경상북도에서 추수봉기(the Harvest Uprising)가 일어나서 말 그대로 "들불처럼" 퍼져나가 몇 개월 후 마침내 진압되기까지 전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rebellion)이 발생하여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다. 그해 말에는 국군 제14연대가 한반도 남쪽 항구 도시인 여수에서 반란(insurrect)을 일으켰다.' 사건을 기록하는 과정에는 기록하는 자 또는 기록하는 집단의 '입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을 가해자 입장에서 기록한다면 '제주 4·3 사건'은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저 '폭압에 대한 항쟁(uprising)'일 뿐이다.
제주도민연대도 지난 11월 22일 "진실화해위가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이라는 표현은 사건의 발단에 대해 언급한 데 불과하다고 해명했으나, 문맥상에 이미 공산주의 세력의 무력 폭동 중의 일례로 4·3을 들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명은 말장난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주도민연대는 특히 "이영조씨의 이 같은 표현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고 그가 저지른 학살행위에 면책권을 부여하고자 무리하게 서술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내려진 규정이라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해자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광주에서 발생한 민중반란(a popular revolt)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 강경파 그룹이 권위주의 정권을 수립했던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의 기록이라면 위의 서술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에서 발생한 민중항쟁 혹은 민주화운동(Democratization Movement)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 강경파 그룹이 권위주의 정권을 수립했던 것이다."이영조 위원장은 발표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민중반란(a popular revolt)(정승윤 상임위원은 중앙일보 시론에서 revolt를 항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광주사건(the Gwangju Incident) 등으로 명명하면서, 공식화된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광주 학살(Gwangju Massacre)'이라는 표현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사건 명명이라고 보기 힘들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두 가지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가해자의 시각과 피해자의 시각이 그것이다. 그동안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분들, 피해를 입은 분들은 민중항쟁 또는 항쟁이라고 표현해왔고 가해자들은 반란 또는 폭동이라고 표현해왔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도 피해자 측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당시 정부의 입장에서 어느 쪽도 손들어주지 않은 중립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그래서 공식적인 표현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영조 위원장이 공직자로서 국가에서 쓰는 공식적인 표현을 국제포럼에서 사용하지 않고 가해자 입장을 대변하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은 공직자의 자세라고 지적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정확한 표현은 전두환 반란군, 즉 내란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항거였다고 정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즉 반란 세력은 광주시민이 아니고, 당시 가해자인 전두환 신군부세력이라는 말이다.
진실위는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발표문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발표문에 쓰인 'rebellion'(반란)이라는 단어와 'a popular revolt' (민중 반란)라는 특정한 단어 몇 개를 맥락과 무관하게 끄집어내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발표문의 진의를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라고 판단됐다"고 반박했지만, 글 전체적으로 봐도 일관성이나 공식적인 명칭 사용, 역사적 평가에서 이영조 위원장은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 입장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가해자의 입장에 충실한 진실위 이영조 위원장 이영조 위원장이 가해자 입장의 시각을 보인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지난 7월 23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는 성명서를 통해 '6·25전쟁 중 미군 폭격으로 인한 한국 민간인 피해'와 관련해서 이영조 위원장의 시각을 아래와 같이 비판하기도 했다.
"전임 안병욱 위원장 시절 '미군의 폭격이 필요했다 해도 민간인 희생의 조처도 없이 폭격한 것은 국제인도법과 전쟁 법을 위반했기에 미국은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밝힌 반면, 현 이영조 위원장은 '군사 작전상 긴박한 필요 여부가 판단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고의성, 불법성이 입증되지 않아 미군 폭격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태도이다. 만에 하나 이영조 위원장의 부모와 온 가족이 미군 폭격에 의해 몰살당했다면 그런 한가한 소리가 나올 법이나 하겠는가."필자는 이영조 위원장이 진실위의 설립 취지에 맞게 오로지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해 힘써야 함에도 우리 유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을 반성하고,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로 가해자의 입장을 담은 시각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의 상처에 다시 한 번 소금을 뿌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진실위에서 근무했으며, <함석헌 평전>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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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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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폭동, 5·18은 민중반란" 내가 왜곡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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