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따라온 학생들이 다정하게 앉아 ‘731부대 기념관’과 ‘안중근 의사’를 화제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조종안
부모와 함께 온 나영이, 지수, 한민이, 다인이, 은찬이도 침대칸에 마주앉아 놀이를 시작했다.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은 일주일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동반하는 장거리 열차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겹고 흐뭇한 광경이었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동안 어디를 가장 인상 깊게 보았느냐고 물으니까 기다렸다는 듯 "화장실요!"라고 대답했다. "화장실 말고는?" 하고 물었더니 '731부대 기념관'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꼽았다. 초등학교 4학년(11살) 나영이는 일제의 잔악함에 소름이 돋는지 목을 움츠렸다.
필자도 만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불편을 느낀 게 화장실이었다. 인구가 7백 만이 넘는 심양에서도, 1천 만 가까운 하얼빈에서도 화장실 찾기가 어려웠고, 시설도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화장실을 '측소'(厠所), 공중화장실을 '공측소'(公厠所)라 했다.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흙 냄새와 인분 냄새오후 10시가 되니까 영락없이 불이 나갔다. 일행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박영희 시인은 편히 쉬라고 인사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언제 또 맞이할지 모르는 낭만의 시간을 잠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의자에 앉아 창문을 여니까 시원한 밤 공기가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향긋한 백양나무 냄새는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니까 썩은 흙 냄새와 섞여 들어오는 인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좋았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봉화 연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기차에서 감상하는 흑룡강성(헤이룽장 성)의 밤 풍경은 아름답고 시(詩)적이었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서쪽 하늘의 샛별처럼 멀리서 반짝이는 농가의 불빛들이 오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어슴푸레 보았던 외갓집 정경이 떠올랐다.
밤하늘에 여운을 길게 남기고 달리는 기적소리와 레일과 바퀴가 규칙적으로 부딪치는 마찰음은 지상최대의 연주로 거듭나면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했다. MP3에서 빠르게 흐르는 곡보다 경쾌한 마찰음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혼자서 감상할 수 있는 야간열차의 백미였다.
기차가 한참을 달려서 네온사인이 보이는 어느 큰 역에 도착했다. 마침 어깨에 검은 견장을 찬 20대 여승무원이 지나가기에 손짓발짓으로 물어보니까 "좌이층"(장춘)이라고 했다. 기차는 장춘에서 물을 공급받기 위해 30분 가까이 정차하다가 출발했다.
우리의 60년대 비슷한 만주의 농촌풍경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가, 장거리 기차여행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통로 의자에 앉았다. 다른 칸 손님들도 하나 둘 일어나 통로를 오갔고, 일찍 일어나 독서하는 일행도 있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오니까 염소들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모습에서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마을의 농가들까지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신령스러운 산봉우리,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옥수수밭, 경운기 1대에 10여 명이 타고 가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은 빈곤 속의 풍요를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