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사법부가 국민 신뢰얻는 건 가시밭길"

이용훈 대법원장의 임기 중 마지막 전국법원장회의 열려

등록 2010.12.03 17:55수정 2010.12.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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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의 독립은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수호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입니다. 사법권의 독립은 재판의 주체인 법관 개개인의 독립을 그 핵심으로 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3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최근 언론, 정치권, 법조계, 시민단체 등 외부에서 하급심 판결을 계속적으로 합리적 근거 없이 비난하고, 심지어 법관의 집 앞에서 집단시위를 하는 등 실력 행사도 서슴지 않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그러나 법관들이 차분히 감정을 추스르면서 외부의 영향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재판에 임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줘 감동받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엄정하고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재판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임기 6년 중 5년을 넘겨 이번이 마지막 전국법원장회의을 개최하는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한 변화를 강조하면서, 잘못된 재판 관행과 법관의 자세를 보다 세심하게 지적했다.

 

그는 "오늘의 사법부 현실과 국민이 여망하는 사법부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어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도는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은 매우 어렵고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면서도 "그래도 반드시 가야만 하고,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국민의 신뢰라는 바탕 없이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구현이라는 사법의 목표도 실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의 여망을 담은 사법부의 변화와 혁신의 물결은 그 누구도 되돌리거나 거스를 수 없다"며 "'법정 중심의 재판 운영'과 '민원업무의 혁신'이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국민이 사법부에 맡긴 권한과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고,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법원장은 특히 "그동안 국민이 납득하고 승복할 수 있는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구술주의와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한 법정 중심의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으나, 아직도 국민들은 재판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며 "국민참여재판은 공판중심주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일반형사재판은 실질적 증거조사는 소홀히 하는 경우 많아 이런 재판은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위배될 뿐더러 자칫 법정 중심의 재판을 형해화시킬 수도 있어 지양돼야 한다"고 재판 관행을 질타했다.

 

그는 "법관은 법정에서 말로써 사건의 주요 쟁점을 정리하고, 그 쟁점과 현출된 증거에 관해 실질적인 공방을 벌이게 함으로써 당사자 스스로 '이 재판은 이렇게 결론이 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한 토대 위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재판이 구술주의를 구현한 재판다운 재판이고, 이렇게 해야만 법관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사건의 종국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조정·화해를 유도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되고, 그러한 조정·화해는 사건의 근원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할 따름"이라며 "법관이 법정 중심의 재판을 통해 제대로 된 심리를 하는 것만이 당사자가 진정 승복하는 조정·화해에 이를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이 대법원장은 "법정 중심의 재판을 구현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사건의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으나, 법관이 처리하는 분쟁이나 사건은 당사자들 모두 사활을 걸기에 어느 하나라도 가벼운 것이 없다"며 "국민들은 모두 일생에 한두 번 법정에 나올 뿐인데도, 법관들의 사무처리 편의상 자신의 사건이 그 선택과 집중에서 누락됐다고 생각하면 그 당사자가 납득할 리가 없는 만큼, 법관들은 어느 사건 하나라도 그 심리와 처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앞에 놓인 사건은 법관이 하는 단순한 사무 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들의 아픔을 치료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도록 하는 통로라고 생각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법정에서 법관의 언행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법원장은 "법관이 재판을 통해 당사자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기 위해서는 법정 언행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며 "법관이 국민을 무시하고 내려다보는 권위적 자세와 사고를 가지고 재판을 해서는 당사자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는커녕, 그 상처를 덧나게 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판사들의 무례한 언행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을 상기시킨 것으로 "국민들은 더 이상 법관의 권위적 재판 방식과 잘못된 언행을 용납하지 않는 만큼, 법관들은 진정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재판을 해야 한다"며 "법관의 진정한 권위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 속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거듭 법관의 자세를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이 피부로 사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민원업무의 개선에도 더욱더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동안 법원 민원업무시스템이 많이 개선됐으나 아직도 직원들의 친절도 면에서 국민들이 법원에 대한 신뢰나 호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법원에 오는 민원인들은 바로 사법부에 사법권을 위임한 주인이지 단순한 고객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사법부를 비난하고 시위를 주저하지 않는 국민들도 바로 우리에게 재판권을 위임한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그들마저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법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현재의 모습에 그냥 안주하다가는 21세기의 빠른 변화와 도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고, 자칫 법원이 쓸모없는 조직으로 도태될 수도 있는 만큼, 정말 위기위식을 느껴야 한다"며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진정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법원을 조속히 만들어 가자"며 "사법부가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것을 최대한 앞당겨, 후손들이 훗날 공법(公法)이 물같이,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사회에 살면서 그들이 누리는 것들이 우리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자"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0.12.03 17:55ⓒ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이용훈 #대법원장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 #법원장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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