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삽질을 막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리영희 선생이 남긴 꿈 저버리지 않기를

등록 2010.12.07 11:31수정 2010.12.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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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에서 출판기념회에서 절필을 선언하시는 리영희 선생
출판기념회에서출판기념회에서 절필을 선언하시는 리영희 선생이명옥
▲ 출판기념회에서 출판기념회에서 절필을 선언하시는 리영희 선생 ⓒ 이명옥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어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 <우상과 이성> 서문 중

 

고통과 압제에 무릎 꿇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글쓰기로 우상의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로 인식의 평형을 잡아주던 시대의 지표이자 희망, 리영희 선생이 영면했다.

 

4대강 삽질을 막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리영희 선생은 2006년 출판기념회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선생이 절필 후 크게 관심을 보인 분야 중 하나는 바로 공동체 삶이다. 선생은 이상적 공동체로 알려진 '오로빌'에 관한 책을 보시느라 안경을 새로 맞췄을 만큼 공동체 삶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상적 공동체 사회야말로 부패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퇴임 후 고향 봉하로 내려가 생태마을을 일구고 자전거 뒤에 손녀를 태우고 마을 나들이를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박한 꿈과 너무도 닮은.

 

모임에 오신 리영희 선생님 유토피아 독서토론 모임
모임에 오신 리영희 선생님유토피아 독서토론 모임이명옥
▲ 모임에 오신 리영희 선생님 유토피아 독서토론 모임 ⓒ 이명옥

절필 2년 뒤인 2008년 10월 18일. 대학로 민들레 영토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였다. 예약된 방 이름은 '유토피아', 리영희 선생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고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토론 자리였다.

 

"유토피아를 꼭 읽어보라고 다시금 당부하시고, 이런 식의 자본주의가 어찌 백년을 갈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군요. 현명한 대중은 자기 스스로 대안을 찾아가게 된다면서..."

 

당시 리영희 선생님과의 <유토피아> 독서토론의 자리를 마련했던 고은광순씨의 말이다.

 

선생은 그날 수첩에 곱게 접어 간직한 (Utopia Fact or Fiction  by Lorainne Stobbart)   Guardian Weekly, 1992. 6. 21에 리처드 고트(Ricahrd Gott) 편집자가 쓴 글을 꺼내 보여주셨다.

 

그 기사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마야에 실재했던 사회 형태다. 멕시코에 실던 Lorainne에 의하면 모어에게 유토피아의 이야기를 해 주었던 라파엘은 1498~1519년 사이에 최소한 16명의 마야인들과 함께 살았던 유럽인 중 곤잘로 드 코엘료(1503년, 베스푸치의 마지막 항해에 함께 했던 배의 선장)였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1516년에 출판되었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라파엘이 직접 겪었던 이야기였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유토피아 사회가 실제로 마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는 1519년에 마야를 공격했다. 1520년 마야는 점령당하고 1523년 총독이 된 코르테스는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스페인으로 빼돌리다가 1540년경 스페인으로 귀국하고 마야 문명은 사라지게 된다.

 

<유토피아>가 1516년 쓰여졌으니 마야에 실재 모델이 존재했다면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다. 어쨌거나 당시 영국의 귀족들과 자본가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착취했다. 토마스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빌려 가난한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부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국가로부터 최대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것만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본적으로 부정의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런 착취에 법의 이름을 들이대면서 더욱 정의를 왜곡하고 타락시킵니다. 즉 그들은 부정의를 '합법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여러 공화국들에서 내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이익만을 더욱 불려나가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

 

그들은 사악하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를 가능한 헐값에 사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것을 두고 부자들이 공화국의 이름으로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인 양 주장하면 곧 법이 됩니다. 도대체 공화국에 빈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까?"

- <유토피아> 중에서

 

마치 현대 신자유주의 사회에 법을 등에 업은 부자들의 음모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피할 수 없는 가난이 법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노동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소수 자본가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국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가?

 

4대강 삽질 예산 저지 범국민 집회 5천여 명이 모여 4대강 죽이기 예산 저지를 결의했다.
4대강 삽질 예산 저지 범국민 집회5천여 명이 모여 4대강 죽이기 예산 저지를 결의했다.이명옥
▲ 4대강 삽질 예산 저지 범국민 집회 5천여 명이 모여 4대강 죽이기 예산 저지를 결의했다. ⓒ 이명옥

대법관이던 토마스 모어가 자신이 살던 1516년 당시 현실세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 비판을 토대로 이상사회를 그려보인 <유토피아>가 5세기 이상 시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토마스 모어가 날카로운 시각으로 짚어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기 때문일 것이다. 

 

리영희 선생  영원한 스승
리영희 선생 영원한 스승이명옥
▲ 리영희 선생 영원한 스승 ⓒ 이명옥

사회는 늘 발전과 퇴락을 거듭하며 사회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변증법적인 형태로 발전해 나간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을 찾아내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것은 현명한 대중이 해야 할 일이다. 분명 건강하고 소박한  공동체는 자본주의의 고삐를 틀어쥐고 미친 질주를 멈출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사상적 통제에 맞서 고난을 무릅쓴 리영희 선생의 역정이 우리에게 희망이었다면 이제 선생이 못다 이룬  공동체 삶을 일굴 건강한 터전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시대의 스승을 진심으로 기억하는 길이 아닐까. 4대강 삽질을 막아 내야하는 또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우리에게 더해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라디오 21에 송고합니다.

2010.12.07 11:31ⓒ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라디오 21에 송고합니다.
#리영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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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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