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2011년부터 0교시를 허하라?

김태희 기자의 <2011년부터 '0교시 체육' 시작해볼까요?> 기사에 대해

등록 2010.12.13 18:44수정 2010.12.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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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0교시 체육'이란 타이틀이 눈에 확 뜨였다. 혁신학교에 대한 소모임을 하는 선생님이, 소모임에 새로 참여한 체육선생님의 제안을 다른 이야기에 섞어 이야기 한 것이었다. 난 체육선생으로서 누군가가 체육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면 우선 반갑다. 그러니 더 애정을 갖고 들여다 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2011년부터 '0교시 체육' 시작해볼까요?)

그런데 이 글을 읽고 한편으로 많이 아쉬웠다. 당초에 0교시가 등장한 것은 결국, 이 허접한 입시교육에서 주지교과 보충수업을 위한 것이었다. 학생들을 아침도 먹지 못하고 오전 일곱 시를 전후해 등교하게 만들어 자율학습을 시키다가, 특기적성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충수업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도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 0교시 보충수업이 있었다. 진보교육감이 들어서고 반년 가까이 가서야 이 0교시를 없애라는 지침이 시달되었을 때 얼마나 웃겼겠는가. 그리고 결국 마찬가지. 등교시간은 그대로인 채 0교시가 방과 후로 밀리고 1교시가 올라오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혁신학교들이 만들어지고 교사들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교사들 스스로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교육력을 창출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새로이 당선된 전교조 위원장이 전교조 출범 직후인 90년대 의 10년, 2000년대의 십년을 나누고, 다시 십년의 희망을 이야기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지금이다. 학생들의 기본권에 관심 없이 이른 등교시간을 강요하며 일과를 진행하는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더 낳은 십년을 기대하기 힘든 것은 자명하다. 혁신학교라는 것도 큰 틀에서 제도교육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제도교육의 다른 이름은 이제 허접하게도 공교육이라는 말로 불린다. 그 공교육의 모순에 대한 처방과 대안의 역사는 강준만의 '입시전쟁 잔혹사'로 얼룩져 있다. 

<2011년부터 '0교시 체육' 시작해볼까요?>라는 글은 의문부호까지 사용하여 눈길을 끌었다. 물론 나와 같은 체육교사에게…. 그런데, 체육과 관련한 내용이 아니다. 고삼의 수능 후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서 느닷없이 0교시 체육을 끼워 넣었을 뿐이었다.

우선 '새로운 제안-수능 후 인턴십, 0교시 체육'이란 꼭지의 글에서 수능 후 인턴십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수능이 시작되면서 수능 후 프로그램도 많이 진화해 왔다. 고3 담임을 겪어 보고, 고삼 수업을 해 본 교사들은 다 안다. 어쨌든 현행 입시제도에서는 수능이 끝났다는 것은 졸업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어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입시 시스템에서는 정직하게 말해, 수능을 보고 난 이후에 학교나 교사가 학생들을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하루라도 더 빨리 독립적인 주체로 만들어 자립시켜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인지도 모른다.

애지중지 수능에 올인하도록 숨 죽이며 돌보아 온 아이들인데, 수능이 끝났으니 확 풀어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입시, 수능에 이르기까지 유보되거나 미루어두었던 것들에 대하여, 학생들 스스로 진지하게 탐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고민을 자신만큼 하는 아이들이 없을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의 고민을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고민을 졸업하는 날까지 끌어안고 가야되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학교를 떠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미 뒤돌아선 애인에게 잠시만 더 머물러 달라고 강요하는 것과도 같이 그건 사랑이 아닌 집착일 뿐이다. 아이들을 졸업시켜 내보내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교정에서 또다시 만난 아이들을 뒷모습을 보고, 얼핏 졸업한 어떤 아이의 빛나던 이마와 환한 웃음을 생각하며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이 교사들이다. 이 글에서 보이는 수능 후 인턴십에 대한 논의 같은 것은 현행 수능제도의 변화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0교시 체육'에 대한 제안이 참신하다고 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0교시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이 없이 현행 제도에 복무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0교시를 하지 말자는 것은 학생들의 삶을 옥죄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든 0교시를 하겠다는 것은, 보충수업으로 이루어지던 0교시를 체육으로 때우거나 끼워 넣기 하면서 주지교과 보충수업을 강화하겠다는 혐의가 짙다.

"PAPS의 측정 자료'를 기반으로 해서 '0교시 체육'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내년부터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라고 필자도 언급했지만, 이는 참 위험한 발상이다. 아이들에게 정과체육수업에서도 1교시 체육수업도 커다란 부담이다. 특히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대부분의 학교에서 체육교과와 함께, 블럭 수업교과나 이동수업 시간을 먼저 배정하고 여타 교과들의 수업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상례다.

이 글을 쓴 선생님이 경험했는지 모르지만, 학력고사와 체력장이 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에 바로 이 체육 보충이 새벽에 이루어졌다. 나도 첫 발령 받은 학교에서 새벽 여섯시 반에 학교에 나가 다른 체육선생님들과 검사종목을 나누어 일종의 스테이션 수업을 했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과 함께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어쨌든 누가 무어라고 해도 'PAPS'는 변종 체력장일 뿐이다.

또 한 가지, PAPS는 정과체육에서 교과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PAPS를 고안해 내고 현장에 적용시키는 이들은 정과체육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PAPS는 정과체육을 크게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실제로 강원도 교육청에서는 시행도 되지 않은 PAPS를 핑계로 고입선발고사에서 체육을 제외한 일도 있었다.

PAPS는 체육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유용한 수업 도구가 된다. 건강한 시민을 육성하는 하는 것이 체육교육의 목표라고 단순화 하면 그렇다. 그러나 평가의 개념을 체력에까지 확장시킨다는 것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체력 평가의 이면에는 체육의 과학화라는 기능적 세계관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우선하기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신체를 평가하여, 인간의 몸을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으로 규정할 위험이 있게 되는 것이다. PAPS를 개발하고 주창하는 이들은 이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한국식 엘리트스포츠 시스템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PAPS는 운동선수들이 아닌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해 이를 적절히 이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체육수업이나 활동을 무비판적으로 PAPS로 대체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상급식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천만 원대가 넘는 PAPS 장비를 전국의 모든 학교에 투입할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PAPS로 체육수업이나 활동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발상 자체가 전통적 기능주의적 신체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체육을 인간교육이 아닌 '신체 교육' 정도로 전락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전통적인 체육의 가치나 목표는 7차교육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학생운동선수들은 새벽운동과 오전, 오후, 야간으로 이어지는 과운동에 시달리고 있다. 일반계 학생들도 보충수업 자율학습으로 이어지는 과학습에 내던져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PAPS를 0교시에 시행하게 된다면 과학습에 던져져 있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얹게 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논의와 발상이 독서교육이나 토론수업과 같은 논의 과정에서 툭 불거져 나온 것처럼 비쳐진다는 것이다. 독서교육이나 토론수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거 교사들 뜻대로 되는 거 아니다.

가령 독서와 스포츠는 어느 면에서 똑같다. 학생들의 자발적이며 자기결정권을 갖고 행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여러 선생님들의 토론 과정에서 0교시의 체육활동에 대한 발상을 공론화 한다면, 독서교육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만큼의 진지한 성찰이 따랐어야 마땅한 것이다.

어쨌거나 학부모나 교사들 할 것 없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사고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어떻게 되었든 학교에서 잡아놓거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사들이란 모든 아이들의 성적을 학부모나 아이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향상시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성적이 뒤쳐진 아이들을 고무 격려하며, 공부 못한다고 버려지거나 소외되는 아이들의 서러움을 나누어 갖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덜 된 교사일수록 자신만이 학생들을 가장 잘 가르친다는 착각, 전문가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십상이다. 학부모들은 성적보다 아이들의 행복을 가꾸는 교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성장과 발전의 판타지에서 매몰되어 있다. 다른 이들보다 한 푼이라도 더 투자하고, 1분 1초를 아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유보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내가 쟁취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탐욕과 공포만이 지배하는 세상은 이미 아비규환이다. 그렇게 교육현장을 아비규환으로 만들고 탐욕과 공포를 전파하며 무한 성장해 온 것이 소위 SKY를 비롯한 명문대학들 아니던가.

그렇게 허접한 성장신화에 휘둘리며 살아 온 것이 한국사회 입시교육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메이저 대학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경쟁 논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중등교육현장을 식민지로 확보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 된 중등교육현장은 SKY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야 한다는 개똥철학들이 판을 치는 곳이 된다. 거기에는 정의나 인권, 자유와 같은 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나는 혁신학교라는 것이 이러한 제도 교육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신학교 #0교시 체육수업 #P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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