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코코아 생산국의 쓰디 쓴 현실

코트디부아르, 현 대통령 선거 불복으로 내전 위기

등록 2010.12.18 16:02수정 2011.01.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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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에 불복... 코트디부아르 유혈 사태

대통령 선거 후 정세 불안을 겪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영어명 아이보리 코스트)의 최대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아비장에서 지난 16일 정부군의 발포로 최소 2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라 사망자 수가 18명에서 30명까지 다르게 추정되고 있지만 정부는 정확한 숫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 유혈 사태는 선거 결과에 굴복하지 않고 있는 현 대통령 측의 보안군이 이에 저항해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행진하던 야당 당선자 측 지지자들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발생했다.

지난 10월 31일 10년 만에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다수의 표를 얻은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과 야당인 공화당의 알라산 와타라 후보는 11월 28일 2차 결선 투표를 치렀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와타라가 54%의 득표율로 46%를 얻은 그바그보를 이겼다고 선언했지만 하루 후인 12월 3일 헌법위원회는 그바그보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했다. 다음날 그바그보가 취임식을 강행했고 와타라 후보도 취임선서를 하면서 2명의 대통령이 공존하게 됐다.

UN, 아프리카 연합, 유럽 연합, 미국 등 국제사회는 와타라의 승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바그보는 와타라의 근거지인 북부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선거 결과를 부인했다. 국제사회는 그바그보에게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정치적,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강제로라도 그바그보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바그보가 군을 포함한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있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16일 발생한 유혈 사태 후 와타라 지지자들은 강경 저항을 다짐하고 있고 국제사회와 아프리카 주변국가들은 2007년 평화협정으로 휴전 상태인 내전이 재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코트디부아르에는 평화협정 이행을 감시하고 북부와 남부의 충돌을 막기 위해 1만 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초콜릿의 달콤함 뒤에 감춰진 쓰디 쓴 현실

 짙은 녹색으로 돼 있는 곳이 코트디부아르
짙은 녹색으로 돼 있는 곳이 코트디부아르위키미디어 커먼스

15세기 이후 유럽의 노예와 상아 무역 식민지였다가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코트디부아르는 초콜릿의 주원료가 되는 코코아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비롯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전 세계 코코아의 70%를 생산하며 코트디부아르의 생산량은40%에 달한다. 코트디부아르의 주요 수입원이자 세계인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하는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는 초콜릿의 맛조차 알지 못하는 현지 주민들에게는 만연된 폭력과 아동 노동이라는 비참한 일상과 관련돼 있다. 초콜릿의 달콤함 뒤에 감춰진 이런 쓰디 쓴 현실을 초콜릿의 유혹을 즐기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알지 못한다.


2009년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코코아 농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동 노동에 대한 공식 입장을 담은 문서를 발표했다.

"코코아는 대부분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되며 바쁜 시기에는 아동들이 가족 농장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동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조사에 의하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의 아동 노동자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고, 비료나 농약을 뿌리고, 나무를 베는 등의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인신매매를 통해 다른 지역이나 주변국에서 팔려온 아동 노예들이다. 이것은 국제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이 문서는 아동 노동은 코코아 농장은 물론 모든 농업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만성적 빈곤과 실업, 열악한 교육제도, 아동노동에 대한 무관심 등 만연된 사회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알자지라(Al Jazeera) 방송은 2009년 4월 "뜨거운 초콜릿(Hot Chocolate)"이라는 제목으로 코트디부아르 코코아 생산과 북부를 장악하고 있는 포스누벨(Forces Nouvelle) 무장세력과의 관계를 보도했다. 2002년 내전 이후 북부를 장악하고 있는 포스누벨은 처음엔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폭력, 재산갈취, 부패 등으로 지금은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보복을 우려해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포스누벨의 행패를 증언했다.

"형의 시체가 시장 뒤편에서 발견됐는데 왼쪽과 오른쪽 다리에 총 자국이 있었다. 강제로 포스누벨에 가입시키기 위해 총을 쐈는데 마지막에는 머리를 쏴 죽였다. 이 땅에는 정의라는 것이 없다."  

"처음엔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라고 협박하고 있다. 그들은 돈과 보석을 빼앗아 간다."

"돈이 없다고 하니까 부인과 딸을 강간하고 나를 폭행했다."

이 보도는 코코아가 코트디부아르 분단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코코아 거래는 대부분 불법으로 이뤄지는데 전체 거래의 10%를 포스누벨이 장악하고 있다. 이런 불법 거래를 통해 포스누벨은 매년 3천만 달러(한화 330억)의 수입을 얻고 있으며 이 수입은 포스누벨을 유지하는 주요 재원이 되고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데 사용된다.

북부 장악한 무장세력... '평화도 전쟁도 없는' 불안한 상태

포스누벨과 남부 정부와의 평화협정이 2007년 체결된 이후에도 분단이 계속되고 정정이 불안한 이유는 포스누벨이 남부와 연합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부와 연합하고 정치권에 통합될 경우 수입원을 잃게 될 것이므로 "평화도 전쟁도 없는"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북부에서 군림하고 코코아 수입원을 유지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포스누벨은 이주노동자와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북부에 대한 남부의 차별에 저항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2002년 내전을 시작했다. 2007년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남과 북의 정치적 단절은 계속되고 있고 포스누벨은 여전히 북부 전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이런 정치 불안을 종식시키고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바그보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2005년 10월로 종료됐지만 6차례나 대선이 연기됐다. 2007년 정부와 반군 세력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 정치적 통일의 희망이 보였지만 반군의 무장 해제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는 전 국토의 절반에 차지하는 북부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해왔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와타라는 북부 출신의 무슬림으로 포스누벨 세력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2000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 온 그바그보는 남부 출신 기독교인이다. 북부 지역의 이익을 대표하는 와타라는 총리를 지낸 경력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부루키나 파소에서 온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그 동안 대선 출마를 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선이 치러지고 정권교체의 기회가 왔지만 그바그보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음으로써 코트디부아르의 분단 종식은 어렵게 됐다. 또한 대선 후유증이 내전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게 됐다.

국제단체와 국제기구의 관심과 감시 절실 

다수 전문가들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한동안 충돌과 긴장이 계속되다가 연합정부를 구성함으로써 문제가 종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와타라를 지지하고 북부의 이권을 쥐고 있는 포스누벨 세력이 단독 정권 대신 연정을 원할지는 미지수다.

코코아 생산 및 수입을 위해 폭력과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북부 주민들과 아동 노동자들에게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의미가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바그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현재의 폭력적 일상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와타라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정세 불안 속에서 포스누벨의 지지가 필요한 그가 막대한 코코아 거래 수입의 유지를 원하는 포스누벨의 폭정을 당장 중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과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국제단체와 국제기구의 관심과 감시 뿐일 것이다.
#코트디부아르 #아이보리 코스트 #코코아 #아동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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