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117조 공기업의 '대책 없는' 구조조정

LH,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 알맹이 빠지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 기대

등록 2010.12.29 16:01수정 2010.12.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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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10월 19일 오전 경기도 분당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해양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29일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밑 빠진 대책이라는 비판이 크다.

경영정상화 방안의 핵심인 사업 구조조정 방안을 뜯어보면, "재무역량 범위 내에서 사업을 축소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담겼다. 이런 상황에서 LH는 주택·토지 판매를 위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 무책임한 경영정상화 방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LH 스스로도 이번 방안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LH는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재무개선의 전기는 마련할 수 있지만,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정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정부 지원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LH는 알맹이 없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업 구조조정 방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지송 LH 사장은 당초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LH 본사에서 직접 배경설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할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경영정상화 방안은 보도자료로만 배포됐다.

구체적 계획 빠지고 상식적인 원칙만... "알맹이 빠졌다"

LH의 부채는 지난 6월 기준으로 117조3천억 원(부채비율 523%)에 이른다. 이는 2009년 말 국가채무 360조 원의 30%, 공기업 전체 부채 212조 원의 51%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 규모다. 현재 금융부채는 84조 원으로 하루 이자만 99억 원이다.


또한 LH는 이미 55조 원의 채권을 발행한 상태로, 시장에서 LH의 채권 인수를 기피해 지난 7월 이후 채권 발행을 포기했다. LH는 "매년 계획된 45조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 채권 발행을 통해 매년 25조~30조 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해야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업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LH 재무구조 악화의 주범이 신도시 개발, 보금자리주택 사업 등 무분별한 '개발 사업 벌이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사업 구조조정이다. LH 역시 현재 계획돼 있는 사업을 계속 진행할 경우, 2018년에는 부채가 325조 원으로 증가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LH가 29일 발표한 경영정상화 방안에는 구체적인 사업 구조조정 방안이 빠졌다. 6월 현재 LH가 맡고 있는 425조 원 규모의 414개 사업에 대해 "재무역량 범위 내에서 사업 속도를 늦추겠다", "주민, 지자체 협의를 거쳐 다양한 조정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상식적인 수준의 원칙만 발표했다.

LH는 현재 진행 중인 282조 원 규모의 276개 사업에 대해서는 공정률을 조정하거나 수지개선을 도모한다는 원칙을 밝혔고, 앞으로 진행 예정인 143조 원 규모의 138개 사업의 경우 수요·사업성·공익성을 감안해 사업 조정 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국토해양부가 "처음 사업을 진행할 때 수익성이 있으니 진행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을 진행할 것"(박상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이라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말로만 구조조정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와 관련,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강기갑 의원실 관계자는 "사업 구조조정을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고 단순히 수익이 나는 사업 위주로 하겠다는 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다"라면서 "28일 이지송 사장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사업 구조조정 방안을 설명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의 입김에 알맹이가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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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가 117조3천억 원(2010년 6월 기준)으로 하루 이자 비용만 99억 원에 달하는 가운데, 국정감사가 진행됐던 지난 10월 19일 낮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주택공사 구내식당에 부채를 낮추기 위한 캠페인 구호가 적혀 있다. ⓒ 권우성


부동산 경기 활성화되면 부채 문제 해결?... "무책임한 일이다"

이번 경영정상화 방안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있다. 이날 LH는 28조6천억 원 규모의 토지·주택을 팔아 빚을 갚겠다고 밝혔다.

박상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LH의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년 부동산 경기가 얼마나 살아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업 구조조정에 대해 미적거리면서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기대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LH는 2012년까지 전체 직원(7367명)의 1/4인 1767명을 감축하고, 내년 전 임직원의 임금 10%를 반납하는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 중대형 분양주택건설 등 고유 목적 외 사업정리 ▲ 과도한 투자 억제를 통한 원가절감  ▲ 구분회계 도입, 보상제도 개선 등 사업시스템 개선 등에도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LH는 "이번 경영정상화 방안으로는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정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경영정상화 방안이 시행돼도 6월 현재 84조 원인 금융부채가 2018년에는 150조 원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LH는 "단기적인 유동성 애로와 임대주택의 구조적인 문제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 2월까지 학교용지·시설 부담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LH 지원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용지·시설 부담 완화의 경우, 교육과학기술부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국토부와 LH의 주장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의 기업인 LH의 구조조정을 하는데 제대로 공론화를 거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며 "LH가 보금자리주택 사업 등 정치적 과제들을 계속 맡게되는 상황을 막지 않으면, 본질적인 구조조정 방안이 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지송 사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염려와 걱정을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말로만 하는 형식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이 아닌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혁의 성과가 나오도록 최선을 다해 실천해 나가 생존을 넘어 진정한 친서민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이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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