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인에게 목장갑 한 켤레를 선물 받고

등록 2011.01.06 17:23수정 2011.01.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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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순 할머니는 살아가기 어려운 입장에 있는 분입니다. 아들이 재활용품 수거해서 생활을 해 오다가 그 아들조차 병으로 몸져 누워 있기 때문에 당장 생활에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분입니다. 제가 전도를 해서 지금 교회를 나오고 있지만 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으니 빠지지 않고 나와야 목사님의 사랑에 값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한 관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도 매일 만나다시피하는 목사님을 더 의식하고 있습니다.


한두 달 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수요 낮 노년부 예배 준비로 할머니들을 모시고 교회로 오던 중 김두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대뜸 그분을 제 차에 타게 했습니다. 교회에 파지 등 재활용품이 나올 때 한 동네에 있는 그분의 집 마당에 갖다 드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얼굴은 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차를 타면서 교회에 오는 건 이번 한 번 만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나오고 두 번 나오니 노년부 예배 분위기가 너무 좋아 그 시각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교회로 향한다고 합니다.

예배도 예배이지만 그 뒤 함께하는 점심 식사가 아주 맛있다는 평입니다. 이건 김두순 할머니뿐 아니라 참여하는 노년부 회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걸게 차려서 맛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르는 반찬으로 치자면 보통 서민들의 식탁을 밑돌 수준일 것입니다. 반찬 두세 가지에 밥과 국, 이것이 노년부 예배 뒤 공동식사의 내용물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맛있게 드실까? 그건 정성과 사랑과 이해와 소통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들이 집에서 반찬을 하나씩 가지고 오십니다. 김장철에는 김치를, 상추와 시금치를 가지고 올 때도 있고, 호박·가지·오이 등 자급자족용으로 텃밭에 기르는 야채류들을 하나씩 가지고 오실 때면 식탁이 더 풍요로워집니다.

그런데 김두순 할머니가 문제입니다. 이분은 농사를 짓지 않으십니다. 지을 땅이 없을 뿐더러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아들이 앓아누워 일손을 충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괜찮다고 해도, 그냥 나오시기만 하면 된다고 해도 노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헌금도 많이 하지 못해 늘 목사님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안심시켜 드리나 하고 고민합니다. 마음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서 말해도 쉬 이해가 가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입니다. 주일 낮 예배 뒤 공동식사를 하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중에 김두순 할머니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목사님, 손 시릴 것 같은데 이 목장갑 껴요. 목사님 드릴 것이 없을까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선물 될 만한 것이 없고 목장갑이 눈에 띄더구먼. 이것 새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손에 끼어요."


저는 갑자기 목이 울컥하며 무언가 올라오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할머니는 연세가 팔십 중반이십니다. 노동력을 상실한 지가 꽤 됩니다. 아들이 박스, 병 등 재활용품들을 모아 팔아서 근근이 생활해 왔으나 지금은 그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혼자인 아들도 지금 병고로 몸져누워 지냅니다. 말이 좋아 재활용 수거이지 예전 말로 하면 고물 장수입니다. 고물을 수거하려면 작업용 목장갑이 필요합니다. 아마 그 때 쓰던 목장갑이 좀 남아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일부러 그 목장갑을 끼고 운전을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운전에 썩 어울리는 목장갑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빠지지 않고 사용하려는 것은 그의 마음이 고마워서입니다. 무엇이든 목사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것이 없던 중에 '그래도 이 목장갑 정도면!'하고 선물한 것이기 때문에 꼭 챙겨 착용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부자의 큰 연보 뒤에 두 렙돈의 동전을 죄스런 마음으로 헌금하는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으스대며 뭉칫돈을 연보 궤에 넣은 부자가 아닌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십니다. 김두순 할머니에게서 공사장에나 사용되는 실이 굵은 목장갑을 선물로 받고 더 감동되는 것은 바로 두 렙돈의 보잘 것 없는 돈을 헌금함에 넣은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저런 분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없는 중에도 기쁨으로 보람된 삶을 영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주 예수님 붙들고 신앙 생활하다가 천국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못합니다. 목회를 장거리 경주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경주의 꼴찌 그룹에 낄 수밖에 없는 둔재입니다. 그것이 이 사회의 소외받고 있는 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팔십 중반의 김두순 할머니에게서 목장갑을 선물로 받고 일어나는 감동도 그런 정서일 겁니다.
#목장갑 선물 #고물장수 #노년부예배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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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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