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피자 프랜차이즈 점포 앞에 세워진 배달 오토바이
박솔희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다. 넘어져서 찰과상을 입는 정도의 자잘한 사고는 이미 여러 번 겪었다. 윤석씨도 뼈가 부러져서 입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배달 일을 계속 하는 건 "익숙해서"라고 진표씨는 말했다.
"갖다 주고 오면 그냥 끝이고. 다른 것보단 편한 거 같은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표씨는 아예 월급제 직원으로 치킨집에서 일하고 있다. 일은 편하다. 종일 서 있을 필요도 없고, 배달이 없는 시간에는 가게에서 TV를 보며 쉬기도 한다. 사장님이 젊은 분이라 말이 잘 통한다. 심적으로도 부담이 덜하다.
"어릴 때부터 배달만 해와서 다른 일 한다고 생각하면 겁부터 나요, 어려울 것 같고"라는 진표씨도 다른 일을 시도해 본 적이 있기는 하다. 대형 인터넷서점의 물류창고에서 책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2주 만에 그만뒀어요. 못 해먹겠더라고요."일주일 5일, 하루 13시간씩 오토바이를 탄다동네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박정진(19)씨는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뒀다. 노는 게 더 좋아서 그랬다. 부모님은 처음엔 잔소리를 했지만 이제는 간섭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5일, 하루 13시간 동안 피자 배달을 한다. 가게는 새벽 0시면 닫지만 돈 계산을 하고 나면 1시가 다 돼서 집에 도착한다. 가게는 늘 바쁘다. 배달 알바생이 셋이나 있지만 늘 주문이 밀린다. 몸은 피곤하지만 가족 같은 가게 분위기가 즐거워서 계속 일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날에도, 섣달 그믐에도 일을 했다. 피자가게에서 연말연시의 공휴일은 대목이다. 누군가의 휴일이 즐겁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 아주 바빠야 한다.
모두들 흥청망청하는 때에 못 놀아서 "섭섭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일 끝나고 놀았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어차피 친구들도 다 일을 해서 특별히 부러울 사람도, 아쉬울 것도 없었단다.
일하기 싫을 때는 없을까. "눈 오고 추울 때는 하기 싫죠. 비 올 때도." 날씨가 궂은 날은 사고 위험이 더욱 높은데, 오히려 그런 날일수록 배달 주문은 더 쏟아진다. 눈비를 뚫고 갔는데 늦게 왔다고 싫어하면 화가 난다. 동네 가게다 보니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하는 '30분 배달제' 같은 것은 없지만 빨리 갖다 줘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늦게 왔다고 마음대로 값을 깎는 경우도 있었어요. 주소 입력이 잘못 돼서 옆 동으로 갔다가 다시 찾아 가느라고 늦었는데, 원래 3만1000원인데 늦었으니까 3만 원만 받으라고 막."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그냥 욕하는 거죠, 사장님하고 둘이서"라고 체념한 듯 웃으며 말하는 정진씨. 그가 일하는 가게는 그나마 인간적인 가게인 듯했다. 일부 악덕 점포의 경우, 30분 안에 배달을 못해 할인해 줘야 하면, 알바생이 그 비용을 물어내기도 한다고.
정진씨는 언젠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일 뿐이다. 지금은 일하는 게 재미있다. 우선 어느 정도 더 일을 하다가 영장이 나오면 군대에 가게 될 것이다. 도로 위의 삶을 살던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새해 소망은... 사고 안 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