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104병동'. 60대 간병인 성병주씨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뇌졸증집중관리실(Stroke Unit)'이다. 성씨는 저산소증으로 뇌세포가 손상된 10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점심시간을 넘긴 6일 낮 12시 50분에도 그는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성씨는 하루에 네 번 환자에게 미음을 먹인다. 300cc의 미음은 관을 통해 들어간다. 이렇게 '피딩 백(feeding bag : 환자가 먹는 미음이 담겨 있는 용기)'이 비워지는 데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안타깝게 아들을 바라보던 환자의 어머니가 성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씨는 계속 선 채로 미음이 관을 통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자가 안쓰러워 "앉으세요"라고 권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성씨는 이렇게 24시간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일을 하고 있다. 그가 하루에 자는 시간은 많아야 4시간 정도. 세 번의 식사시간에 들어가는 30여 분을 뺀다면 그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병실에 있는 한 잠자는 시간조차도 편하지 않다.
성씨의 얘기처럼 간병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절대적인 수면부족'이다. 24시간 환자 곁을 지켜야 하고, 짧은 수면조차 좁은 보조침대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에 보호자에게 교대해 달라고 해서 집에 가요. 집에 가서 24시간 잠만 자요. 잠을 안 자고 못 배겨요. 안 쉬면 제가 병나는데요…."
옆에 있던 환자의 어머니가 그런 처지가 충분히 이해된다는 듯 "보호자는 간병한 지 3일 만에 병나요"라고 말했다.
공공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본부 간병분회 사무국장이 병실에 잠깐 들렀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일부 병원들에서는 '간병인노조'가 설립돼 있다. 간병인인 그가 한 마디 거들었다.
"환자가 표현만 못 할 뿐이지 말하는 것을 다 듣는대요. 그래서 보호자 등이 좋은 말씀만 해주셔야 해요."
"그럼요. 말을 가려서 해줘야죠."
"이 분(성씨)은 간병한 지 오래됐어요. 외모와 나이만 보고 안 쓴다고 하는데, 한번 써보신 분들은 아주 좋다고 얘기해요. 아는 사람들은 (성씨를) 안 놓치려고 해요."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죠. (환자를 바라보며) 얼른 정신이 돌아오면 좋겠어요."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배선실에 서서 밥 먹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성씨가 지하1층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그는 부인을 만났다. 알고 보니 '간병인 부부'였다. 다만 부인은 다리골절로 잠시 간병일을 쉬고 있다. 간병인 부부의 대화가 시작됐다.
"나도 중환자를 많이 간병했지. 그런데 서울대병원은 전국에서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이 많이 온다고. 그래서 서울대병원 간병인은 기술이 좋아야 해. 우리 남편 간병기술이 아주 좋아."
"남이 인정해줘야지(웃음). 그래도 힘은 들지만 보람도 있어. 돈도 돈이지만, 내가 돌보는 환자가 좋아지면 정말 기분이 좋아."
"잠이 부족한 게 제일 힘들어. 좁은 침대에서 자니까 근육통 등 직업병까지 생기고."
"당신은 폐렴이 와서 응급실에 들어간 적도 있잖아. 또 간병인은 구부려 일하니까 허리나 어깨에 무리가 가서 통증을 호소하는 분이 많아."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어야 하고, 배선실에 서서 밥 먹어. 편하게 앉아서 못 먹어."
"밥도 빨리 먹어야 하고, 어떤 때는 밥 먹는 것도 놓쳐."
"걸어 다닐 수 있는 환자는 일당이 5만5000원, 대·소변까지 치워줘야 하는 환자는 6만5000원이지. 봉사정신이 없으면 간병일을 할 수 없어. 그것(일당)을 돈이라고 할 수 있나? 밥 세끼 사 먹으면 1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고. 게다가 아주머니들은 밥값 아끼려고 냉동밥을 싸와서 전자레인지에 해동시켜 먹어. 시간으로 따지면 일당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도 이렇게 늙어서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해."
"각박한 세상인데 돈도 받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직업이 간병인이야. 살려줬다고 정성껏 인사하는 걸 보면 보람을 느껴. 특히 간병을 잘하면 간호사들이 좋아해."
먼저 간병일을 시작한 쪽은 부인이었다. 성씨는 부인의 간병일을 돕다가 간병인의 길로 들어섰다. 부부의 간병경력을 모두 합치면 20년이 넘는다.
"일을 여러 가지 했지. 회사도 다니고, 장사도 하고, 차 운전도 하고…. 그런데 나이가 많으니까 밀리더라고. 결국 병원에 봉사하러 다니다가 간병일을 하게 된 거지."
"내가 간병일을 시켰어. 남편이 오전에는 봉사하고, 오후에는 내가 보호하는 환자를 도와줬거든."
"병원에서 봉사하다 제대로 (간병일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옛날에는 적십자에서 간병인 교육을 시켜서 배출했지. 요즘에는 서울에만 관련협회가 아주 많아. 그런데 변두리 병원은 대부분 조선족(중국 동포)이 와서 간병하고 있대."
"교회 쪽에서 조선족을 모아놓고 간병인 교육시킨다고 하더라고."
"간병은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수술한 환자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 간병해야 한다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돌본 적이 있어. 1주일간 변만 치웠지. 남들은 변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나는 못 느꼈어. 부모들이 그런 것처럼 변이 더럽다고 안 느끼지더라고. 그 환자가 좋아져서 지방으로 내려가는데, 나보고 일당 8만 원과 비행기 왕복표를 줄 테니까 같이 가자고 해. 그런데 내가 못 견딜 것 같아서 안 따라갔어."
성씨는 "그 이후 혹시나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 전화를 못했다"며 "진짜 돌아가셨으면 내가 안 따라가서 그랬을 거라는 죄책감이 들 것 같아 그랬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4대보험 혜택도 없어요"
그런데 전국 24만여 명(추정)에 이르는 간병인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4대보험과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않고 있는 사각지대다. 24시간 근무하고 받는 일당은 5만5000원~6만5000원이다. 시간당 임금으로 약 2300원-2700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이 4320원인데, 그것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우리에게는 4대보험 혜택도 없어요. 당연히 산재보험도 안 되죠. 노동자로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겁니다.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인 셈이지요. 허허…."
간병인들의 처지를 헤아리면 '4대보험-최저임금 적용' 요구조차 사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옷을 갈아입을 탈의실도, 편안하게 밥을 먹거나 잠을 청할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24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몸이 피곤할 때가 많아요. 특히 중환자실에서 올라온 환자를 맡게 되면 4~5일 정도는 잠을 거의 못 자요. 1주일에 딱 한 번 집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교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식사도 제공됐으면 좋겠죠. 그런데 이건 꿈이겠죠?"
옆에 있던 부인이 "옷을 갈아입고, 잠자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며 "가져온 짐을 놔둘 데가 없는데 보관함도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그동안 감추어온 바람을 쏟아냈다.
"24시간 근무하는 데 근무조건이 아주 열악해요. 특히 힘든 환자를 보다 보면 나쁜 균이 전염될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씨는 "24시간 병실에 있어야 하니까 운동을 할 수 없다"며 "그래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뒤 지하1층에서 10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큰 병치레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감기에 걸렸는데 20일간 안 떨어졌어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알레르기내과에 갔더니 천식기가 있어서 약 먹으라고 해요."
성씨는 얼음팩 교체, 음식물 투입(피딩, feeding)뿐만 아니라 석션(suction, 가래빼내기)과 네블라이저(nebulizer, 호흡기 치료), 위액 빼서 소화 정도 확인하기 등 거의 '의료행위'에 가까운 일까지 일상적으로 도맡아 하고 있었다.
차승희 공공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간병분회장은 "간병인 활동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곳은 병원"이라며 "간호사나 의사가 해야 할 일을 간병인들에게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딩, 석션, 네블라이저 등 의료행위조차 간병인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도 간병인들은 시간당 임금은 2300원~2700원밖에 못 받고 있다. 게다가 환자를 돌보다 환자가 다치거나 간병인이 감염되더라도 모두 간병인 책임이다. 물론 산재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차 분회장이 간병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일화를 들려줬다. 한 병실에 근무하던 간호사와 간병인이 모두 MRSE균(표피포도구균)에 감염됐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간호사만 치료해주고, 간병인은 약만 처방해주었다. 이에 간병인이 "왜 간호사만 치료해주고 나는 안 해 주냐?"고 항의한 끝에 그도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차 분회장은 "휴식공간도 없고 식사도 제공하지 않는다"며 "아르바이트도 밥은 먹여서 일 시키는데 간병인은 그런 대우도 못 받고 있다"고 간병인의 열악한 처지를 꼬집었다.
"구내식당에서 한 끼 먹는 데 3000원이 든다. 그걸 내고 나면 일당 4만5000원이 되기 때문에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밥을 얼려 오고, 반찬도 싸온다. 하지만 식사공간이 없어 배선실에서 서서 먹어야 한다. 식사도 환자에게 밥을 먹인 뒤에서야 해야 한다."
"간병인을 병원에서 직접 고용하고 간병료 보험급여화해야"
현재 간병인노조 쪽에서는 ▲병원의 직접 고용 ▲산재보험 적용 ▲간병료 보험급여화 ▲3교대제 ▲탈의-휴식 공간 및 식사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차 분회장은 "서울대병원에서도 간병인을 뽑아서 쓰다가 관리·비용문제 등 때문에 파견·용역업체에 맡겨 버렸다"며 "하지만 병원에서 간병인을 직접 고용하고 교육도 시키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차 분회장은 "용역업체의 경우 간병인들에게 입회비 10만 원과 월회비 6만 원뿐만 아니라 명절 때에도 돈을 걷고 있다"며 "심지어 간병 일을 알선하면서 뒷돈까지 받고 있어 간병인노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 분회장은 "정부는 간병료를 의료보험으로 적용해줄 만한 돈이 없기 때문에 파견법으로 비급여하겠다고 한다"며 "그랬을 경우 월 140만 원의 간병료 중에 40만 원이 파견업체로 가고 간병료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 분회장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더 간병인이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모든 국민이 간병인 제도화를 통해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씨도 "(간병인 제도화가 이루어지면) 아무래도 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잘 할 것"이라며 "당연히 간병의 질이 올라가기 때문에 환자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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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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