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호통치던 의원들 어디갔나

정동기 떠났지만... 퇴직관료 로펌행 막는 법안 4년째 '심사중'

등록 2011.01.12 16:57수정 2011.01.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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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하며 "부족한 사람이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되어 각종 논란이 제기된 데 대해 그 진상이 어떻든 간에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하며 "부족한 사람이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되어 각종 논란이 제기된 데 대해 그 진상이 어떻든 간에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권우성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자진 사퇴하기까지 국민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이었다.

야당들은 대통령 측근인 정동기 후보자가 감사원장을 맡을 경우에 생길 독립성·중립성 침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정작 국민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정 후보자가 로펌에서 7개월 동안 받은 7억 원의 봉급이었다.

그러나 정동기 이전에도 판·검사 출신 공직후보자의 거액수임료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대법관 퇴임 후 5년간 60억 원 수입)과 박시환 대법관(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퇴임 후 22개월간 19억 원), 2008년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고검장 퇴임 후 6년간 48억 원) 등이 인사청문회 때마다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김 전 법무장관은 청문회에서 "(상대 검사에게) 전화로 한두 번 사안을 설명하고 억울함이 없도록 잘 좀 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한 전력을 실토하기도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1년간 6억 원),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15개월간 5억 원) 청문회에서 드러나듯 최근에는 대형로펌들이 법조인들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관료들까지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정동기 후보자의 경우 2007년 12월 대통령직인수위 간사로 발탁되자 월급이 4600만 원에서 1억8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대형 로펌들이 영입인사의 실무 능력보다는 정·관계 영향력을 더욱 감안해 고액 봉급을 책정한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오랜 관행'으로 자신을 합리화한 정동기 후보자


a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떠나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떠나고 있다. ⓒ 권우성


정 후보자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30여 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와 변호사를 막 출발한 사람의 급여는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용인할 것"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그의 낙마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전관예우를 법조계의 오랜 관행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퇴직 검사가 개별사건 변호를 맡지 않고도 거액의 봉급을 챙김으로써 전관예우의 관행이 더욱 음성적인 방식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국민이 전관예우를 용납할 수 없다면 법률적으로 이를 근절할 대책은 국회에서 내놔야 하는데, 여야 정치권 모두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미약하다.


한나라당에서는 정동기 논란이 불거지자 "전관예우는 퇴임 이후에 금전적 이득으로 유혹하는 명백히 잘못된 관행"(서병수 최고위원), "정 후보자가 대검차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중요 직책을 맡지 않았다면 그런 대우가 불가능했을 것"(주성영 의원)이라는 비판론이 나왔다. 그런데 정 후보자의 공직 결격 사유로 전관예우를 꼽으면서도 전관예우의 수술 얘기는 나오지 않는 식이다.

정 후보자를 공격하는 논평을 6일부터 10일까지 8건이나 쏟아 부은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없애야 할 특권이자 감사원이 앞장서서 근절해야 할 사항"(이춘석 대변인)이라고 전관예우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했지만, 정부·여당에 당장 타격을 주려는 일회성 공격 이상의 의미는 없다.

정 후보자와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전관예우 관행을 이해하려는 뉘앙스의 발언도 있었다.

천정배 의원은 10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정 후보자는 공직생활은 청렴하게 해온 분이다. 전관예우는 시정돼야 하지만 법조계의 일반적 관행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와 천 의원은 사법연수원 동기로서 정 후보자가 영국에 유학 갔을 때 천 의원이 그의 차를 인수해서 몰았고, 아내들끼리도 굉장히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천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거리가 되자, 11일 CBS 인터뷰에서 "아무리 친한 친구지만 그런 내용(7억 소득)까지 다 알고 두둔한 건 아니다"며 "이번 기회에 전관예우와 같은 전형적인 반칙·특권을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 전관예우' 근절 위한 법안, 4년째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

a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떠나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떠나고 있다. ⓒ 권우성


퇴직 고위관료들의 로펌 행을 막고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에 메스를 대는 법 개정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권과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이들 법안들은 4년째 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

2008년 7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고위공직자가 퇴직일로부터 2년간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박영선 안은 같은해 1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갔지만, 4년째 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행안위 검토보고서는 "개정안이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법무법인 등에 고위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 발의자인 박 의원이 행안위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법안 처리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는 김동철 민주당 의원과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낸 변호사법 개정안이 병합 심사되고 있다.

"판·검사로 재직했던 변호사는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할 때까지 근무한 법원 또는 검찰청이 관할하는 사건을 퇴직 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다"는 손범규 안과 "판·검사로 재직했던 변호사는 퇴직 전 3년의 기간 중 최근 1년 이상 근무한 법원 또는 검찰청의 형사사건을 퇴직 후 1년간 수임할 수 없다"는 김동철 안은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여야가 큰 틀에서 합의를 본 상태다.

김동철 안에는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채 사건에 개입해 보수를 수령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대형 로펌으로 간 퇴직 법조인들이 특정 사건을 맡지도 않으면서 음성적인 로비의 대가로 거액을 챙기는 관행에 철퇴를 내리자는 게 법안의 취지다.

사개특위, 오는 6월 활동 동료... 전관예우 논의, 갈 길이 아직 멀다

사법제도개혁특위는 작년 12월 7일에도 회의를 열어 법 개정안을 법사위에 넘기는 문제를 논의했지만, 다음날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사태가 빚어지며 활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사법제도개혁특위는 오는 6월 활동이 종료되는데, 관할범위가 훨씬 넓은 고등법원 판사들과 대법관들의 전관예우에 대한 논의는 시동도 걸지 않았기 때문에 갈 길이 아직 멀다.

정동기 사건이 터진 마당에 전관예우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여야 지도부에 답답해하는 의견들도 있다. 이러한 의견은 야당에서 특히 많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참에 판·검사들과 고위관료들이 대형로펌에 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원내 지도부조차 '전면 규제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며 "당 지도부가 민심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개혁특위 실무지원단장을 맡은 최재천 전 의원도 "민주당이 정동기 사건을 매우 편협하게 다루고 있다"며 "당이 전관예우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정동기 #전관예우 #박영선 #김동철 #손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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