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세계 낭만의 섬. 그곳은 신혼 부부들이 꿈꾸는 곳이다. 헌데 그곳에서 낭패를 본다면 어떨까? 친한 척, 온갖 호의를 베푸는 척하다가, 나이프를 들고 돈을 내 놓으라고 한다면? 그런 곳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배낭 메고 갈 곳이라 아니라고 모두를 말릴 것이다.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손수진은 국제현금카드에서 더 이상 돈을 내 뱉지 않을 때까지, 다 털리고 나서도 안간힘을 쓰고 세계여행을 이어나간 고집스런 여성이다. 간 큰 남자도 소화하기 힘든 기간을 1년 넘게 버텨갔다. 정말로 간 큰 여성?
헌데 그녀가 정말로 담력이 큰 것은 또 다른 사건에 있다. 바로 빅토리아 폭포 앞. 그곳에서 번지 점프를 할 줄이야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헌데 그것은 5년 전의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듯 하다. 그 때 터키를 여행할 당시 산 절벽 아래로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딩까지 탔다고 하니까. 허니 111m나 되는 세계 3대 폭포 그 앞에서 그녀가 힘차게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녀가 쓴 <서른 살의 일요일들>(씨네21)은 배낭 하나 메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을 훑고 다닌 기록들을 담고 있다. 그곳에서 낯선 길을 뚫고, 낯선 사람을 만나 친해진 1년하고도 10일이 넘는 대장정의 기록이다. 간 큰 남자들도 덤비기 어려운 여행길을 그녀 혼자서 꿋꿋하게 정복한 쾌거였다.
그녀는 말한다. 세계 공용어가 영어인 듯하지만 그건 1% 뿐이라고. 광활한 중국 지역을 돌아다닐 때는 그 쉬운 '굿모닝'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는 게 그녀의 설명. 중국의 윈난성의 수도 쿤밍에서도 무엇 하나 시키고 먹으려 해도 모든 게 손짓 발짓으로 통해야 했단다. 더 민망했던 것도 있다. 그 성의 시골길에서 겪은 푸세식 볼일 보기. 물론 칸막이조차 없는 허허벌판에서 볼일 봐야 했던 때를 생각하면···.
"기차에서 내려 처음 만난 성추행범은 그런 의미에서 좀 운이 없었다. 엉덩이를 만지는 손을 그러쥐고 나는 고래고래 '폴리이스! 폴리이스!'소리 질렀다. 금세 몽둥이를 든 경찰이 달려오고 주변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좋은 구경 났다며 둘러 쌌다. '와츠더매터'라며 인도식 억양으로 묻는 경찰에게 이놈이 날 만졌다고 설명한다. 그래 어디 너 한 번 당해봐."(87쪽)
만일 그 정도였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당연히 그 놈을 경찰서로 데려갔을 것이다. 헌데 그녀가 인도에서 본 모습은 생경했다. 그곳의 경찰들은 그 놈의 손목을 메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거였다. 물론 그런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해서 생각해 둔 게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남자들의 가운데를 걷어 차는 것. 하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되는 게 있을까? 더군다나 해외 여행길에서 그런 대범함이 솟구칠리 있을까? 그런 일에는 그녀도 여성이기는 마찬가지였을 터다.
이란?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고만...
이란에서는 어땠을까? 사실 이란은 모든 이들에게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테러 뉴스'가 심심찮은 까닭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한국인 승무원 네 명은 하나같이 테헤란을 그녀에게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헌데 그녀가 이란 국법에 따라 히잡을 쓰고, 긴 하의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때, 그건 진정이었다고 한다. 사람들 모두가 정성스런 친절로 그녀를 환대해 주었던 게 그것.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어디가 가장 아름다웠느냐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 그 사람들이 꿈꿀 만한 각기 다른 곳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의 대답은 늘 같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나를 향해 쿠바의 햇살보다 더 환하게 웃는 당신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풍경이라고, 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야 그걸 알게 되었다고."(397쪽)
배낭으로 세계여행을 하면 뭘 챙겨야 할까?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바로 국제현금카드.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속옷과 여벌 옷. 그리고 메모장 정도.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것도 강조한다. 고추장과 김. 그것 두 가지면 먹는 문제는 어디서나 해결되는 까닭. 그러고 보니 2002년 월드컵이 한 창이던 2주 동안, 전주의 여행객들 틈에 끼어 내가 바깥 구경을 할 때도 그걸 챙겼던 것 같다. 아-, 나도 가고 싶다, 배낭여행.
서른 살의 일요일들 - 372일간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일주
손수진 지음,
씨네21북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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