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학자 김원익(51)이 두 번째 신화 에세이 <신화, 인간을 말하다>(바다출판사)를 펴냈다.
이종찬
"왜 루벤스를 비롯한 수많은 미술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겠는가? 왜 프로이트를 비롯한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신화로 인간 심리를 설명했겠는가? 왜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한 글을 즐겨 썼겠는가? 그 이유는 바로 신화가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김원익신화에 포옥 빠져 사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와 로마신화뿐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신화도 놓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신화는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는 저수지"와 같다. 그는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울고,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감정도 신화와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가 신화학자 김원익이다. 그가 지닌 눈빛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신화 속에 나오는 여러 신들과 영웅들 속내를 단칼에 베고 말겠다는 투다. 신화를 모르는 사람과는 아예 말조차 섞고 싶지 않다는 투다. 그와 나는 인사동에 있는 남도음식주점 '시인'에서 자주 만난다. 딱히 약속을 해서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 집에 가면 늘 그가 있다. 그가 없는 날, 홀로 막걸리를 마시며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 즈음이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난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1960년생이며 나는 1959년생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형님이라 부른다. 그냥 벗으로 지내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겨우 나이 한 살 차이일 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런 그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몹시 살갑다. 그가 말하는 신화 속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이 세상 속내를 단숨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며 '신화=현재=미래'라고 말한다. 그는 신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살이가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로 겹쳐져 있음을 꼬집어낸다.
"신화는 인류의 어린 시절이다""세상은 바야흐로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갖가지 이야기가 쏟아진다. TV 예능 프로그램의 초대 손님들도 입담이 뛰어나야 인기가 있다. 자고 나면 그들이 경쟁적으로 토해낸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하나의 나무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오듯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그 원류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신화이다."-'들어가는 말' 몇 토막 지난 2009년 <신화, 세상에 답하다>를 펴낸 신화학자 김원익(51)이 두 번째 신화 에세이 <신화, 인간을 말하다>(바다출판사)를 펴냈다. 지난번에 펴낸 책이 신화와 세상을 저울질한 것이라면 이번에 펴낸 책은 신화와 인간을 '원시=욕망'이란 현미경을 들고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자갈등을 시작으로 라이벌, 사랑, 분노, 광기, 모험 등 사람이 부딪치는 19가지 '갈등의 뿌리'를 신화에 빗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19가지 갈등은 부자갈등, 라이벌, 부부의 사랑, 적과의 사랑, 동성애, 정신적 스승, 분노, 광기, 모험, 구출, 탈출, 추격, 전쟁, 괴물, 거짓말과 속임수, 숫자3, 지하세계 방문, 갈림길, 이상향이다. 한 가지 특징은 19가지 제목마다 그 갈등을 문장 하나로 쥐어짠 듯한 작은 제목들이 길라잡이처럼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적과의 사랑-모두를 거는 사랑은 위험하다"처럼 말이다.
김원익은 14일 낮 전화통화에서 "신화는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고갱이(풀이나 나무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연한 심)이자 원형이요, 본"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화는 인류의 어린 시절"이라며 "신화에는 인류가 풀어낼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씨앗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선천적으로 신화에 익숙해 있다"고 쐐기를 박는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수강생들로부터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귀띔한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사람들 이름을 쉽게 외우는 비법이 뭐냐는 거다. 그는 이에 대해 "신화에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려운 이름일수록 초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철수나 영희 쯤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그 신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사랑 지키려면 사랑하되 모두 주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