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는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마련중이고, 민주당에서는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의 '3+1 무상복지론'이 거론되었다. 복지는 사회발전의 핵심적 목표이므로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목표든 그것을 달성하는 데는 수량적 제약이 작용한다. 문제는 돈이고 경제인 것이다.
한국형 복지모델은 지금 형성 중에 있다. 그런데 복지모델을 만들어가는 데는 환경조건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는 향후 10년간 중대한 환경 변화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삼각파도에 부딪힐 것이다. 세 갈래 파도가 함께 충돌하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삼각파도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적절한 복지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첫째는 인구의 파도다. 10년 후면 생활수준 또는 복지의 개선에 필요한 재원 문제를 둘러싸고 세대간·가족간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구구조의 변동에 따른 것이다. 이는 회피할 수 없는 압력이므로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구통계를 보면, 현재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일본이며, 한국과 중국, 러시아는 2020년부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다고 한다. 현재의 추세라면 한국의 총인구 중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IMF의 추계에 따르면, 현재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참여율을 20%가량 올리거나 이민을 총인구의 30%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10년 후 닥쳐올 고령화의 파도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크게 압박하게 되어 있다. 교육과 실업수당 부문에서는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연금, 의료비, 장기요양, 장애수당 같은 부문의 비용은 늘어난다. 고령화로 인한 저축 감소로 투자에 제약이 생기고 생산성 증가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세금을 인상하거나 다른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정부부채를 함부로 늘리거나 조세개혁을 회피하면 안 된다. 재정건전성을 경시하면 어느 순간 국가가 파산하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성장 한계와 중국이라는 변수
둘째는 성장 한계의 파도다. 복지의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성장을 통해 형성된 개인과 기업의 소득 및 재산에서 나온다. 10년 후에는 노동력과 개인저축 감소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요소 투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외연적 경제성장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개인과 기업의 부를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재원을 마련하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은 중국시장의 덕을 크게 보았다. 특히 2007년 글로벌 위기에도 서구에 비해 영향을 덜 받았던 것은 중국의 고도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국내총생산 증가율 4.2% 가운데 중국으로의 수출의 기여도가 2.2% 포인트를 기록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비율이 무려 52%에 이른 것이다. 총수출에서 대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글로벌 위기 이전의 27%에서 31% 수준으로 높아졌다. 총수출 증가에서 대중(對中)수출의 기여율은 134%에 달했다.
지금까지는 한국경제와 중국경제가 행복한 동행을 해왔지만, 이러한 밀월관계가 앞으로 10년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앞으로 도농간 격차, 환경문제, 민주주의의 요구에 대응하는 비용을 훨씬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5∼10년 안에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추세로 전환될 것이다. 앞으로는 중국도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으로 성과를 얻기 어렵다. 이미 20∼29세의 젊은 농촌노동자 수는 1억2천만 명을 밑돈다. 지금은 1억 명 이상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데, 귀향자가 늘어나는 반면 과거와 같은 저임금 노동자가 공급될 원천은 사라지고 있다.
중국 역시 요소 투입에 의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으므로 결국은 생산성 증가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추세라면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계속 좁혀질 것이다.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교육부문, 지역간 격차, 노동시장 분단 등 생산성의 병목 문제를 얼마나 신속히 정비하는가가 관건이다. 권력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수량적 기준에 의해 자원배분을 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간 경제통합의 가능성
셋째, 남북간 통합의 파도이다. 10년 후까지 현재와 같은 분단체제가 유지되기는 힘들다고 판단된다. 지금의 북한경제는 자기재생산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요소 유입이 필수적이다. 북한에 식량이나 자본 요소를 공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곳은 한국과 중국 정도이다. 중국이 계속 비용을 부담한다면 북한체제가 유지될 수 있겠지만, 중국도 적절한 수준에서 비용 분담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우연과 광기가 겹쳐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그 합리성이 꼭 완벽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당사자들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사자들이 최선의 선택을 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경제적 교류를 통한 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북의 경제통합은 정부재정에 압박 요인이 될 것이지만, 잘 대처하면 그 정도를 줄일 수 있다.
경제통합의 마지막 단계는 노동시장통합인데, 남북의 통합은 값싼 젊은 노동력을 유입하여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도 많다. 늘어난 인구는 또한 피부양자를 만들어낸다. 상당수의 노동력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실업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다. 유입된 노동인구가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면 그들이 내는 세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복지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10년 후의 비용을 줄이려면 정책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북한주민이 적절한 숙련도를 갖출 수 있게 하는 교육훈련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역사에는 항상 극적인 장면이 있다. 동서양이 부딪친 751년의 '탈라스강 전투'나 1757년의 '플라시 전투' 같은 사건이 그렇다. 그러나 동서양의 운명을 결정한 그런 사건의 이면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누적된 인구와 경제의 압력이 작용했다. 한국도 역사적인 '대역전'(great reversal)의 길목에 서 있다. 압축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복지모델을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량(數量)은 반드시 발언권을 행사할 것이다. 삼각파도가 만들어내는 수량적 제약을 인식하고 그 한도를 성실하게 넓혀가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편집자주]
* 탈라스강 전투: 당나라와 이슬람세력이 중앙아시아 패권을 놓고 겨룬 전투로, 이슬람세력이 승리함.
* 플라시 전투: 벵골 지역에서 동인도회사와 토착세력이 벌인 싸움으로, 영국이 승리해 인도 식민지의 교두보를 마련함.
2011.2.16 ⓒ 창비주간논평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쓴 이일영 기자는 한신대 경제학 교수입니다.
2011.02.16 14:35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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