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공부,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팔십을 바라보는 노구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 수석 졸업한 이근후 박사

등록 2011.02.22 19:58수정 2011.02.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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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을 바라보는 최고령 나이로 고려사이버대학을 졸업한 이근후 박사 ⓒ 한보경

2011년 2월 19일 오후 2시,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려사이버대학교(총장 김중순) 2010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장에는 사각모를 쓴 수많은 남녀노소 졸업생들이 모여 들었다.


그 졸업생 중 훤칠한 키에 머리가 하얀 노인 한분이 유독 눈에 띠었다. 1125명의 졸업생 중 최고령 졸업생인 이근후(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 76세) 씨. 그는 이화여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을 하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늦깎이로 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김중순 총장님으로부터 성적우수상 수상자로 호명되어 문학사학위증을 받을 찰나 인촌기념관은 요란한 함성과 우레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최고령의 나이에 문화학과를 1등으로 졸업한 그는 인기도 짱이었다.

축하 꽃다발을 받아야할 졸업생인 이근후 박사는 학위증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갈 때 꽃다발하나를 들고 올라갔다. 그가 총장님으로부터 학위증을 건네받고, 총장님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전하자 장내에는 폭소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30년 넘게 이화여대 의과대학에서 교수신분으로 후학들을 가르치기만 했던 이근후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하여 늦깎이로 공부를 하게 된 사연과 변을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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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수여식에서 김중순 총장과 악수를 하고 있는 이근후 박사 ⓒ 한보경


학위증을 받고 총장님께 꽃다발까지 선물한 기이한 졸업식 


- 우선 최고령 나이로 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1등으로 졸업을 하게 된 것을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대단하시군요.
"감사합니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칭찬을 받고나니 괜히 고래처럼 춤을 추고 싶어지는군요(웃음)."

- 춤을 추면 그만큼 젊어지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의학박사로서 30년 넘게 교수직에 계신 분이 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뒤늦게 늦깎이로 공부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평소에 학생을 가르치면서 방편으로 시각적 효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만 강의하기보다는 시각적 집중력을 모아 듣게 한다면 학습효과도 크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컴이 없었기 때문에 OHP나 슬라이드로 만들어 강의를 즐겼습니다. 정년퇴임이 가까워 파워포인트로 강의를 해 보니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정년을 맞았습니다.

손녀를 유치원에 내려주고 삼청동 사무실을 가는 감사원 앞 중앙고등학교 후문이 있습니다. 그 후문에 한국디지털대학교란 돌 간판이 놓여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본 이 학교표지가 현역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사이버로 배워보자. 가르치는 시기가 지나버렸으니 배워보자고요.

기왕 배울 일이면 무엇을 배울까. 단숨에 네팔이 떠올랐습니다. 다문화 글로벌 등의 단어가 연상되었습니다. 네팔과의 인연이 30년인데 일방적인 것 보다 상호적 교류 봉사란 생각을 가졌지만 기실 나의 일방적인 점을 깨닫고 네팔문화 이해를 체계적으로 해 보기 위해 문화예술학과를 선택했습니다.

강의 자체가 네팔문화를 강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이해의 넓은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면 수준 높은 네팔문화의 이해와 더불어, 같음을 공유하고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으리란 목표를 가졌습니다. 마음의 울타리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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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증을 받고 총장님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이근후 박사 ⓒ 한보경


- 아, 그런 특별한 사연이 있었군요. 그런데 수십 년 동안을 가르치기만 하시다가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이버로 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힘들기도 하고 힘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힘이 든다는 것은 첫째 젊었을 때처럼 에너지가 적고, 열정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오프라인 모임이 종종 있습니다. 1차를 끝내고 2차쯤 따라가야 마음 터놓고 이야기판이 벌어지는데, (힘이 달려) 9시를 넘기지 못하여 일찍 집에 돌아와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내 건강을 염려하여 2차에 따라 다니면 등록금을 안 대어 준다고 위협(?)했습니다(웃음).

그러나 학업은 즐거웠습니다. 하고 싶은 동기가 뚜렷했으니 공부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 이름을 아는 교수나, 나한테 배운 적이 있는 교수들로 부터는 여러 번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등록을 했으니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나의 전공과목(정신의학, 상담, 복지 등)과 연관이 있는 교수님들은 특히 더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수강신청을 하면 폐강하겠습니다'란 말도 했습니다. 나쁜 뜻이 아니라 그만큼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저의 진정한 마음을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정년을 맞기 까지는 내가 열심히 공부하여 선진지식과 경험을 잘 다듬어 여러분들께 주지만, 내가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여러분이 잘 다듬어 내가 했듯이 나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이 말은 진정으로 한 말입니다. 이는 교수시절에도 평소에 제자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책을 보는 시간이 줄고 신지식을 접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공부를 해서 나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간곡히 청해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모르는 다른 과의 젊은 교수님들도 내 나이를 알아보고 '처음에는 생소한 과목이라 어려우시겠지만 열심히 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나의 전공과 연관이 있는 과목이 공부하기가 더 어려웠고 다른 과목은 쉬웠습니다. 전공과목과 유사과목이 어렵다는 것은 새로운 이론이기도 하지만 내 경험이 강의 진행에 혼돈을 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과목은 백지상태에서 교수님의 강의를 100% 믿고 소화했으니 앵무새처럼 따라하니 쉬웠습니다. 내 일생동안 공부한 여러 단계를 놓고 보면 이번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단지 즐겁게 공부하면 되는 것 외에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요인이 없었기 때문에 제일 즐거운 학창시절이었습니다."

- 대부분의 노 교수님들은 자신의 학문과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 제자들의 신학문을 겸허하게 받아드린다는 자세는 참으로 의미가 깊은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학점을 따기도 버거울 텐데 문화학과 수석졸업까지 하셨는데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하셨기에 장원까지 하시게 되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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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기념관 학위수여식장의 이근후 박사 ⓒ 한보경

"문화학과 수석이란 말을 듣고 좀 창피하기도 하고 우쭐한 치기도 느꼈습니다. 창피하다는 것은 남 보기에 노인이 얼마나 용을 썼으면 톱을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치기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때 전교 일등을 한번 해 보고는 이번이 처음입니다(웃음). 작심한 것은 아닌데 마음 놓고 즐기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자님이 놀듯이 공부를 하라는 뜻을 알고 실천한 덕분이랄까. 그러나 성적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성적 갖고 누가 뭐랄 사람이 없고, 또 성적을 근거로 취직을 해야 할 스트레스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혼자 분석을 해 본다면 즐거운 것도 즐거운 것이지만 공부하는 습관이 주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른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버 공부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집중했습니다. 교안을 인쇄해서 한번 읽고 영상강의를 듣고, 다시 한 번 교안을 정리해 보는 습관을 드렸습니다. 모르는 부분이나 관심 있는 부분은 게시판이나 질문 답변 란을 활용했습니다. 규칙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영화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이근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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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공부 힘은 들지만 재미있어요" ⓒ 최오균


-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운동도 힘이 들어가지 않고 매일 규칙적으로 집중해야 잘 된다는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공부 방법이군요. 사이버로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공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앞으로도 또 공부를 계속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있으시다면 어떤 학과를 도전 하시렵니까?
"(한 참 뜸을 들이다가)… 이제 나이가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야할 나이입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주변에 장애될 요건이 적어야 한다는 말인데, 저야 이제 흩어놓은 자국들을 정리할 나이 아닙니까? 그래서 정년이후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이 정리란 뜻은 내 신체건강과 나이에 적합한 일을 남기고 부담스러운 일을 줄였다는 뜻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공부를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유는 수명이 있는 한 전진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운이 떨어져 비록 젊은 이 같은 행동은 못하지만 내가 가진 여력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부단히 전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적절한 것이 나에게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영화공부를 해 볼까 합니다. 우선 영화는 그냥 보면 되는 것이고 보면 즐거울 것입니다. 기왕 보는 김에 공부해 가면서 보면…… 그런 생각입니다. 마침 막내아들이 영화 전문가라서 곁눈질로 좀 넘겨다보았는데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주관하는 실험영화 워크숍에 부지런히 참가하여 영화의 일단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들을 교수 삼아 늦깎이 공부를 해 보려는 계획입니다. 요즈음 영화가의  SF영화는 이해가 어렵고 스피디한 영화들이 많아 이번 1년 동안 공부할 영화는 흘러간 명화시리즈로 정했습니다. 혼자하기가 아쉬워 사이버 동아리와 가족 아카데미아 회원들과 공유할 예정입니다. 1개월에 1회 그리고 여름 겨울의 워크숍으로 기획을 이미 해 두었습니다. 3월3째 금요일부터 시작을 합니다. 첫 학습할 영화는 <닥터 지바고>입니다. 기자님도 아내 모시고 오세요(웃음).

저의 근간이 되는 관심과 학문의 주제는 인간심성의 이해입니다. 이번 일 년은 아들교수님을 모시고 열심히 공보해 볼까 합니다. 영화도 사람들의 갈등 사랑 등을 교묘히 조합하여 우리들을 홀리고 있는 제작물이기 때문에 인간심성연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든 배움이 가족 아카데미아에서 목표로 하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와 연결되도록 흐름을 잡고 나가려고 합니다."

- 명화를 감상하면서 영화공부를 한다니 아주 재미있는 공부가 되겠군요. 저도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참석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앞으로 아들 교수님으로부터 학점을 잘 받아 1등을 하시려면 또 밤새며 공부를 해야겠군요(웃음).
"아들이라고 학점을 그냥 주겠습니까?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학점을 받지요. 감사합니다."

정년퇴직후 봉사단체인 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근후 박사는 최근 사무실을 삼청동에서 평창동 자택 근처로 이사를 하여 매월 '나눔 & 소통의 예띠교실'을 열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100세 현역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 슈퍼 할아버지의 왕성한 활동과 '100세 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시집 출판으로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다.

고령사회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제 나이 들어가면서 보람 있게 살아가는 '노년 모델'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근후 박사야 말로 우리가 바라는 노년의 모델이 아닐까?
#이근후 #2010년 고려사이버대학 학위수여식 #가족아카데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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