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관점에서 개발을 다시 생각하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 경쟁이 놓치고 있는 것

등록 2011.02.22 19:44수정 2011.02.2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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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은 힘들었다. 7개월 된 아들의 장거리 여행을 걱정했으나 정작 여행이 고역스러운 건 나였다. 아들은 간만에 쐰 콧바람에 신이 났건만 난 멀미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으로 뛰었다. 바깥바람을 마시니 살겠다 싶은데 그때부터 눈이 고역이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 현수막 때문이다. 부산역 광장에서 시작된 현수막의 행렬은 택시를 타고 시댁으로 이동하는 20분 내내 한 번도 끊이지 않았다.

부산에 현수막이 내걸린 건지, 아님 현수막이 부산을 삼켜버린 것인지 도통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설날 아침 남편의 본가가 있는 밀양으로 들어갔는데, 이곳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다만 부산의 현수막이 '가덕도가 최적지'라고 적고 있었다면 밀양의 현수막은 '밀양이 최적지'라 선전하고 있었다. 동남권 신공항 건립 부지를 둘러싸고 영남권 전체가 부산 대 비부산(울산, 대구, 경북, 경남)으로 나눠져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내려와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동남권 신공항 건립사업은 2007년 대선에서 이를 공약화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가정책으로 지정됐다. 그 후 신공항 건립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필두로 국내 14개 공항 중 11개 공항이 적자인 상황에서의 경제성 논란, 건립 부지를 둘러싼 갈등 등의 문제가 붉어졌다. 하지만 부지 선정이 3월로 성큼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제기된 문제들이 해소되긴커녕 더욱 첨예화된 상태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인권활동가에게 더욱 안타까운 건, 신공항 건설 논란 어디에도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발과 인권이 함께 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웅변하는 듯 해 씁쓸하다.

신흥 시민종교가 된 개발

'개발=경제성장=발전'*)의 공식은 쉽게 부인되지 않는다. 국민총생산 및 개인소득의 증가, 산업화 또는 기술진보 등을 통한 경제․사회적 발전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한국 현대사를 지배했다. 모든 발전 정책은 물질적 부의 축적과 생산의 증가에 맞춰졌으며, 개발은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자 동력이었다. 개발은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주문이었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종식시키고 사람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새로운 시민종교였다.

그러하기에 지난 역사 속에서 개발은 인권과는 절대 조우할 수 없는 평행선을 그어왔다. 군부독재정권의 출현과 집권,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빈부격차, 인권의 유보 및 침해, 생태계의 파괴 등이 개발을 통한 경제성장, 그리고 발전이란 미명하에 자행되었다. 하지만 개발과 인권은 항상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인식이나 역사적인 경험과는 달리, 개발과 인권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으며 궁극적으로 동일한 목표를 갖는다. 즉 사람들의 삶의 존엄성을 고취시키고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는 인권적 관점에서 개발과 발전을 새롭게 정의하는데서 출발한다. 기존의 개발이 경제성장을 의미했다면, 인권적 관점에서의 개발은 사회 전 영역에 걸친 포괄적인 발전의 과정이다. 이는 개발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빈곤에 대한 재정의로부터 보다 뚜렷해지는데, 기존의 빈곤이 사회적 자원 및 물리적 부(富)의 부족을 의미했다면, 인권적 관점에서 빈곤은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따른 결과적 현상으로, "인간에게 가해진 것"이다. 빈곤은 의식주의 결핍을 넘어 교육과 문화, 보건 등 경제∙사회∙문화적 영역 전반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이로 인해 발생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은 시민∙정치적 영역에서의 권리 행사마저 방해한다.


즉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기회와 참여의 제한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고착화시키면서 빈곤의 심화와 세습화, 인권의 전반적인 부정을 낳는 것이다. 빈곤계층을 비롯해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여성, 노인, 아동 등)가 개발에서 소외되며 계속 빈곤화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따라서 개발을 바라봄에 있어 견지해야할 가장 중요한 관점은 사회적 자원의 증가나 고용창출, 경제 활성화가 아닌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로잡는 과정으로서 개발이 위치할 수 있는가이다.


인권에 기반을 둔 개발

1990년대 중반부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권에 기반을 둔 발전(개발)접근(Human rights based approach to development: HRBAD)'은 개발의 기준을 제공해주는 좋은 나침반이다. 발전권 선언(발전의 권리에 관한 선언 Declaration on the Right to Development. 1986년 유엔 채택)의 실천적 접근법인 HRBAD는 개발의 목적이 인권의 실현, 자유의 신장에 있음을 전제하고, 이를 위해 국제인권법의 적용, 참여, 책무, 자력화(Empowerment), 반차별 및 소수계층에 대한 주목 등을 원칙으로 갖는다.

이에 따라 '필요(need)에 대한 충족'으로 여겨지던 개발은 개인과 공동체의 권리로 재구성된다. 필요는 개발을 가능케 하는 유효하고 정당한 주장이 될 수 있지만, 개발이 수용되느냐, 개발과정에 관련된 모든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정부 혹은 지자체의 결정에 달려있다. 하지만 개발이 권리로 재구성될 때,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받아들여야할 책무를 가지며, 개발과정에 관련된 모든 주체들은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참여의 의미 역시 달라진다. 이전까지의 참여가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관리'의 맥락이었다면, HRBAD가 제시하는 참여란 개인과 공동체의 세력화가 가능한 "적극적이고(active), 자유롭고(free), 의미있는(meaningful)" 것이어야 한다. 특히 발전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소수자 및 취약계층의 참여는 차별과 배제 등을 양산하는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바로잡고 이들의 저항권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강조된다.

인권적 맥락에서 참여의 재구성은 중앙집중식 정책에서의 탈피를 요구한다. 탈중앙화된 의사결정과정에 기반을 둘 때만이 개인은 물론 소수자와 취약계층의 의미 있는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여의 방법 역시 공식화된 범주를 뛰어넘어 시위 및 피케팅, 항의방문 등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모든 방법들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권과 정보 접근권 등을 보장해야한다. 이런 과정들은 서로 다른 발전의 주체들이 권력을 공유할 것과 불평등한 관계를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참여는 개인 및 공동체의 자력화와 직결된다.

결국 개발은 새로운 사회적 자원의 발생을 촉진시키는 수단이 아닌 현재의 자원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하고 소외된 집단이 사회적 자원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나의 선택만 허락된 신공항 사업

이제 다시 동남권 신공항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신공항의 건립은 사회구성원들, 좁게는 영남권 사람들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증진하는데 기여하는가? 정치권, 지역토호들이 아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참여는 온전히 보장되고 있으며, 공항건립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완전히 공개되고 있는가? 빈곤계층을 비롯한 취약계층, 나아가 생태계의 목소리는 주목받고 있는가? 신공항 건립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혹시, 땀으로 농사지어 '빚'만 수확해야하는 농부의 탄성이, 비정규직도 모자라 일용직으로 날품을 팔아야하는 노동자의 설움이, 급등하는 물가와 전세 값에 허리가 휜 사람들의 아우성이,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에서 그리 '전환'돼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서 제시된 개발이라면, 그래서 이 개발이 권력에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인권의 이름으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로, 동남권 신공항 건립은 재고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은 신공항 건립은 당장의 고용창출과 경제활성화란 황금알을 낳을지 몰라도, 불평등한 사회적 권력관계를 한층 더 고착화시키면서 멀지 않은 훗날 '불행'이란 열차의 승차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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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과 발전의 사전적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으며, 특히 외국문헌을 번역하는 경우 둘(Development)은 혼용돼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개발이란 단어는 도시 개발, 개발 사업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토지의 사용 및 건축 등을 통한 '물리적 성장' 혹은 '경제적, 가시적 성장' 등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해 사용한다. 개발은 물리적 성장, 단편적 성장에 국한된 의미로 사용된다면, 발전은 질적 성장, 종합적 성장 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써 사용된다.

덧붙이는 글 | 유해정 님은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유해정 님은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발 #발전 #동남권 #신공항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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