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미국 일극체제가 파탄 나는 '또 하나의' 파열구

중동의 인민항쟁을 보며 드는 몇 가지 단상

등록 2011.02.25 11:43수정 2011.02.25 11:43
0
원고료로 응원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인민항쟁이 정말 심상치 않다. 튀니지 중부 소도시에서 노점상을 하던 청년이 생계에 대한 비관으로 분신자살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튀니지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죽음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화약고에 떨어진 작은 불씨였다. 이미 민생파탄이라는 객관적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불씨가 발생하더라도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중동의 인민항쟁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들 대부분은 상황을 중동의 독재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 물론 중동의 인민항쟁이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지향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시각에서만 사건을 분석하면 더 큰 세계사적 변화의 움직임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이번 중동 지역의 인민항쟁을 접하면서 느끼는 몇 가지 단상을 얘기하겠다.

첫째, 중동의 인민항쟁은 미국 일극체제가 파탄 나는 '또 하나의' 파열구이다.

그동안 미국은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식 삶의 방식을 강요했다. 때로는 IMF를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력을 동원하기도 하면서 미국이 세계 각 나라에 강요한 신자유주의는 엄청난 빈부격차와 대규모의 실업 및 복지축소라는 생지옥을 낳았다. 물론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서방의 독점자본들은 자신들의 배를 계속 불려 나갔고 그에 기생하는 각 나라의 기득권층도 떡고물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그들이 엄청난 부를 누리면 누릴수록 다수 대중들은 점점 더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부 자체가 대중의 가난에 기반을 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헐값에 쓰면서 누리는 부, 자신의 돈벌이에 필요 없다고 수많은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면서 누리는 부, 제3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 노동착취를 통해 누리는 부, 부동산 투기와 금융 투기를 통해 벌어들이는 부, 단언컨대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이 행복할수록 다수 대중의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시스템이 계속될 수 있는가? 당연히 지속불가능하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 미국 일극체제가 파탄 나는 최초의 파열구는 중남미이다. 1998년에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2002년 브라질의 룰라, 2003년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2004년 우루과이 타바레 바스케스, 2005년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2006년 칠레의 미첼 바첼렛,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2008년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 이들이 색깔의 차이는 있지만 명백하게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어 선거에서 당선된 좌파 대통령들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내세운 슬로건은 다름 아닌 변화(Change)였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자민당 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파산한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로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세계를 지배한 초강대국 미국을 추종하는 삶의 방식이 명백하게 한계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남미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미국 일극체제의 파열구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번 중동의 인민항쟁은 바로 그런 세계적인 변화의 '또 하나의' 파열구이다. 이번 중동의 시위들이 대부분 민생파탄에 의한 불만에서 비롯됐으며, 그것은 미국식 삶의 방식, 즉 신자유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둘째, 새 시대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요구한다.

미국 일극체제의 첫 파열구 중남미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선거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세력이 집권을 했다. 예컨대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AD(민주행동당)과 기독사회당(COPEI)라는 보수 양당체제가 무너지고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다른 중남미 나라들에서도 기존의 보수 정치세력들이 몰락하고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새로운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벗어나 국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서 서민들의 삶을 직접 보듬어주고 챙기는 복지국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해서 뭔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듯 보였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기존 보수 양당 체제라는 한계 속에서 제대로 된 개혁을 펼치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인기를 잃고 있는 상황이다. 자민당의 수십 년 지배체제가 끝난 일본의 경우, '동아시아 공동체'를 내세우며 야심차게 등장한 민주당 하토야마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부패 스캔들과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지면서 간 나오토 총리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간 나오토 총리 역시 미국 중심의 질서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이 파탄 나고 대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올라오더라도 그 요구를 받아 안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변화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회를 성공적으로 열어나가는 중남미의 경우 기존의 보수 양당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정치세력의 역량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향후 중동에서 인민항쟁의 에너지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낼 지는 결국 각 나라에서 새 시대를 열어갈 새로운 정치세력의 역량에 달렸다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셋째, 대중 주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발달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주류 미디어들이 아무리 선무방송을 해대도 개인들이 휴대하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그 소유자를 게릴라 전사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개개인에게 이런 능력이 부여된 적이 있는가? 게다가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비밀문서들이 대중들에게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현실을 이전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는가?

이런 흐름에 거역하기 위해서 각 나라의 기득권세력들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인터넷 공간을 탄압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결국 그런 몸부림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을 겨눌 뿐이지 않은가? 세상을 바꾸는 주체도 인민대중이고 세상을 바꾸는 힘도 인민대중 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민항쟁은 그 명백한 진실을 준엄하게 가르치고 있다.
#아랍 #중동 #리비아 #카다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