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나쁘게 검정색 뽑았네요, 굶으세요"

[동티모르 봉사기 ③] 세계의 빈부격차와 오브리가두 정신

등록 2011.03.07 17:17수정 2011.03.0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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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언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으로 알려진 그곳에 경원대학교 해외봉사단인 아름샘이 지난 2월 10일 열흘간 봉사를 다녀왔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봉사단원들은 2010년 11월 선발돼 3개월간 준비기간을 가졌다.

봉사단 이름인 '아름샘'은 아름다운 샘을 뜻한다. 아름샘의 모토는 '마르지 않는, 샘솟는 사랑'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름샘이 동티모르에 남겨놓은 것이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까지는 못 되더라도 현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그리고 이 글이 동티모르 소식에 목말라 하는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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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원 모두들 당황하게 만들었던 '빈곤의 식탁'프로그램. 운좋게 흰색을 고른 이원범군과 양미연양이 이날 맛있는 저녁만찬을 즐기게 되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하루의 모든 활동이 끝나고 저녁식사 전 갖는 휴식시간. '지구촌 나눔운동' 간사님께서 우리가 식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마다 종이를 한 장씩 붙이고 계신다. 종이엔 '노란색', '검정색', '흰색', '파랑색'이라고 쓰여 있는데 '검정색' 종이는 테이블도 아니고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 붙어있다. 단원들이 간사님께 "이게 도대체 뭐예요? 힌트라도 주세요"라고 간청해도 빙긋 웃기만 하실 뿐 기다리라고만 하신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식사 시간! 간사님께서 우리더러 제비를 하나씩 고르라고 하신다. 망설이며 제비를 뽑아 펼쳐보니 제비마다 테이블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 색깔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어진 간사님의 말씀.

"노란색은 평소대로 식사하시면 되고요, 흰색을 고르신 분은 뭔가 특혜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파랑색과 검정색을 뽑으신 분은 저녁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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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나쁘게 검정색을 뽑아서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고 저녁식사도 못할 뻔 했던 이지형군. 하지만 이지형군은 단원들의 십시일반으로 그 누구보다 배불리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노란색을 고른 단원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식사를 하는데 파랑색을 뽑은 단원들에게는 딱딱한 빵 한쪽만이 주어졌고 검정색을 뽑은 이지형군에게 주어진 건 물 반컵이 전부였다. 반면 흰색을 뽑은 이원범군과 양미연양의 테이블에는 스테이크와 수프, 그리고 봉사단이 가장 마시고 싶어하던 콜라가 놓였다. 흰색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이 부럽기도 했지만 저녁식사에서 제외된 이지형군이 안쓰러웠다. 결국 노란 테이블에 있던 최예슬양과 효진양이 식사를 덜어서 이지형군에게 가져다주었고 다른 사람들도 파란색 테이블의 단원들과 밥을 나눠 먹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지구촌 나눔운동에서 봉사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빈곤의 식탁' 프로그램이었다. '빈곤의 식탁'은 빈곤과 부에 대해 체험해보는 것으로서 우리가 몸소 빈부격차를 겪고 있는 지구촌을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봉사단 17명이 식사하는 도서관 전체가 하나의 지구가 되었고 테이블은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흰색의 테이블은 선진국, 노란색 테이블은 중소국, 파란색 테이블과 검정색은 약소국과 개발도상국을 뜻한다. 그리고 각 테이블마다 식사를 덜어 이지형군에게 나눠주는 모습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에 지원해 주는 이른바 '원조 공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의 축소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빈곤의 식탁'이 끝나고 나서 흰색을 뽑은 사람과 검은색을 뽑은 사람의 소감이 궁금해졌다. 흰색을 뽑아서 저녁만찬의 특권을 누렸던 이원범군과 검정색을 뽑아 졸지에 개도국 역할을 맡게 된 이지형군을 짧게 인터뷰했다.

- 이번 '빈곤의 식탁'에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며 저녁만찬을 즐기게 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이원범군 : "가시방석이었어. 다들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스테이크가 나왔는데도 미안해서 맛있게 먹질 못했어. 그래도 오랜만에 마신 콜라는 맛있더라. 하하하!!"


- 지형군은 검정색을 뽑아서 저녁식사를 못할 뻔했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이지형군 : "난 처음엔 간사님을 도와서 테이블 세팅을 했었어. 그래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검정색이라고 쓰인 종이를 붙일 때 '검정색을 뽑는 사람은 정말 운이 나쁘겠다'고 생각했었지. 근데 그게 내가 될 줄이야… '검정색'이라고 적힌 제비를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니까. 그래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어. '내가 지금은 신문지 위에 앉아 있지만 나한테 제일 맛있는 저녁식사를 주실지도 몰라'하면서 반전을 기다렸지. 그런데 간사님이 갑자기 내게 물 반컵을 내미시더니 "이게 끝이야"라고 하시는 거야.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 

그런데 남들은 나보고 기분 나빴겠다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반전이 일어날 거야'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효진양이나 최예슬양이 조금씩 밥을 덜어서 나한테 가져다주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웠어. 근데 그렇게 도움을 받고 나니까 간식으로 온 초코파이도 누가 대신 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기다렸는데 초코파이는 아무도 안 주더라. 하하하."

'무릎 굽히고 눈 맞추기'... 교육활동 중 이건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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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대할 때는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과장되게 행동하되 질서정연하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교육활동 내내 잊지 않았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저녁 식사 후 일정은 하루 동안 있었던 활동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 간사님들과 교수님, 모든 단원들이 둘러앉아 그 날 교육활동 중에 있었던 일, 개선해야 할 점이나 주의해야 할 점을 논의한다. 다들 "율동을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활동을 섞어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는 "아이들과 친밀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라며 한 마디씩 의견을 내놓는다. 그렇게 의논을 하던 중, 동행한 교수님께 중요한 조언을 들었다.

"오늘 여러분이 교육활동 하는 걸 봤는데 대체적으로 잘했어요. 다만 제 경험을 통해서 배운 걸 말해주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교육활동을 할 땐 오버하되 질서정연하게 하라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활동 첫 날이라 그런지 부끄러워하는 걸 봤는데 아이들은 선생님이 민망해하는 걸 보면 더 움츠러들어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약간은 과장되게 행동하되 아이들의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게 질서를 지키면서 교육활동을 하세요.

그리고 아이들 옆에 있을 땐 무릎을 굽히세요. 여러분이 아이들 옆에서 작업을 도와주는 걸 봤는데 무릎을 굽히진 않고 허리만 숙이더라고요. 아이들은 자기보다 큰 사람이 허리를 숙여서 쳐다보면 더 무서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과 대화하거나 옆에서 도와줄 때는 무릎을 굽혀 앉아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건, 아이들과 아이컨택(eye contact)을 하세요. 오늘 여러분을 보니까 준비해 간 영어 대본을 읽느라 아이들과 눈을 맞추지 않던데, 아이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눈을 보면서 대화하지 않으면 이 사람이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지 못해요. 그러니까 아이들과 대화할 땐 꼭 눈을 보면서 이야기 하세요."

사소한 행동의 변화는 바로 그 다음 날부터 효과를 십분 발휘했다. 우리가 교육활동 내내 무릎을 굽히고 웃으면서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자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었다. 게다가 봉사단원들 중 최장신이라 아이들이 조금은 무서워했던 양승진군은 "허리를 굽히는 것과 무릎을 굽히는 것의 차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컸다"며 몸소 체험한 놀라운 변화에 대해 감탄했다.

동티모르에서 배운 '오브리가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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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교육이 끝나고 잠시 쉬는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던 꼬리잡기 게임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활동평가 시간이 끝난 후, 간사님께서 "여기까지 오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각자 한 명씩 지목해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가장 먼저 봉사단의 단장을 맡은 강정근군이 부단장인 이소희양을 지목했고, 이소희양은 이승훈군을, 이승훈군은 이지형군을, 이지형군은 용호군을, 용호군은 이원범군을 지목했다. 그러다 보니 지목받은 사람이 감동해서 울고, 또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서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던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는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갑자기 단원들이 훌쩍거리자 당황하신 간사님이 "얘들아,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니야. 왜 벌써부터 울고 그래" 하신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지목한 결과 모두들 한 번씩은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 고마운 일들이 한 가득이다. 우선, 이렇게 봉사단에 선발되어서 좋은 단원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인천에서 로스팔로스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도, 포로스 초등학교의 예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이 우리가 준비해 간 활동에 즐겁게 참여해 준 것에도 감사하다. 비가 오지 않아 야외활동하기 적합한 날씨도, 충분하진 않지만 깨끗한 물로 샤워할 수 있다는 것도, 크진 않지만 우리를 지켜줄 모기장이 있다는 것도, 울타리 심는 활동 중에 간식으로 나온 사과 한 알과 땡볕 아래서 일할 때 불어온 시원한 바람 한 점에도, 차가운 콜라 한 캔을 마실 수 있다는 것에도, 늘 숙소 천장에 붙어있는 도마뱀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는 것마저도,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단원들이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과 이렇게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소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여기 와서는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나를 돌아보고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날들이다. 동티모르에서 쓰는 떼뚬어로 '오브리가두(Obrigadu)'는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오브리가두 정신을 가르쳐 준 동티모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Obrigadu, Timor-Leste !" (고맙습니다, 동티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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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스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날마다 기대된다.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거리와 희망을 주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덧붙이는 글 |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덧붙이는 글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아름샘 #동티모르 #해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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