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정육점책표지입니다.
문학과 지성사
일반적으로 성장소설이란 소녀 혹은 소년이 성인이 되어가면서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세계의 주체로서 정립되는 각성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을 지칭한다. 그래서 그것은 일정한 서사 구조를 가지게 된다. 예컨대 한 소녀 혹은 소년이 시련을 겪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성장하는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출 아닌 가출을 하고 세상을 보고 느끼고 다시 돌아오고 그러면서 성장을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장소설들은 때때로 독자들로 하여금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여전히 성장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우리네 인생이란 한 번의 성장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겪고 콩알만큼 성장하고 다시 시련을 겪고 메추리알만큼 성장하기 마련인지라 이런 성장소설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며 공감하고 위로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성장소설은 청소년전용소설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는 소설인 것이다.
성장소설을 주로 씀에도 불구하고 어른 독자들 팬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리버보이>의 저자 팀 보울러는 이와 같은 맥락을 잘 읽어내고 있다. 어른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있으며 저자 스스로도 종종 청소년 소설이 아닌 청소년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있을 뿐이라는 말로 소설의 독자층을 대폭 확대하고 있으니까.
이와 같은 성장소설의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과 그것이 가진 매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출판시장에 나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성장소설은 여전히 그 수용층이 좁기만 해 안타까운 마음이 종종 든다. 성장이란 화두가 어찌 청소년의 전유물이겠는가? 세상에 아직도 미성숙한 인자는 넘치고 흘러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마치 성장은 청소년의 전유물인 양 청소년 문학도서는 죽도록 성장담론만을 꿰고 있고 그도 모자라 식민지 시대에나 본 듯한 가족로망스에 대한 열망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도 많으니 가끔 갑갑할 노릇이다.
이와 같은 와중에 만난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 그래서 더욱 반갑다. <이슬람 정육점>은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한국으로 와서 정육점을 하는 터키인과 전쟁고아가 만나 가족이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이야기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그 시기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 먹고 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그때의 모습을 소설은 충실히 재연하는 것이다.
정육점이 있는 동네에 사는 사람은 전부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전쟁으로 인해서 기억을 잃은 사람, 전쟁 때문에 전쟁으로 도망친 사람 등등 그들은 모두 결국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때로는 욕을 하지만 결국 이들을 치유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가끔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술주정을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가족이 아니라 이웃이 그들을 보듬는다. 그야말로 대안가족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손홍규는 기존의 성장소설에서 이야기하던 가족로망스에 대한 열망을 제거하면서도 대안가족 안의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고 그 안에서 성장을 말한다. 또한 이와 더불어 전쟁이라는 집단적 광기가 남긴 상처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이 소설은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살려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대안가족으로서의 기능을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기존의 성장소설에서 주인공 화자가 혼자 성장하는 것과 달리 공동체 전체가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성장소설을 진일보한 성장소설이라 평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또한 이러한 주제의식뿐 아니라 소설 속의 묘사나 표현 역시 소설 읽는 맛을 잘 살려주고 있으니 문학적으로도 괜찮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화자의 성장이 아닌 공동체의 성장을 말하는 손홍규의 성장소설은 어쩌면 그간 개인의 성장만을 바라고 기대했던 우리의 사회에 또 다른 성장대안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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