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채권법과 개신교 갈등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종교의 정치개입을 비난하기보다는 무너진 도덕성을 지적해야

등록 2011.03.06 16:02수정 2011.03.0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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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채권에 대한 과세 감면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일명 수쿠크법 또는 이슬람채권법) 논란이 종교의 정치참여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정부가 이슬람채권법을 계속 추진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 청와대가 뒤로 한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하자 종교의 과도한 정치개입 아니냐며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2월 28일자 기사 3면에서 '개신교가 이슬람채권법 찬성 인사들에 대한 낙선운동 시사에 이어 대통령 하야 발언까지 공공연히 할 정도로 종교가 정부의 입법 활동을 제지하는 것은 정교분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하며 이에 청와대가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여권이 침묵하는 이유로 '개신교 표심'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가뜩이나 불교와 천주교로부터 당이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 개신교 표심까지 흔들리면 이 정권이 급속히 어려워질 수 있다"(11.02.28 월요일 3면 "이슬람채권법 파장 '정교분리' 거스른 하야발언에도")는 한 재선의원의 말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 역시 3월 4일자 기사 1면에서 '최근 종교계는 교리와 교계 이해에 반한다는 이유로 국가 정책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양태를 보여 과도한 정치 개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11.03.04 금요일 1면 "종교의 정치개입 '수위' 넘었다")며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정교분리 원칙을 망각하고 세속적 이해 요구에 매달리는 교계의 일탈을 비판했습니다.

 

원래 기획재정부가 이슬람채권법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8월이었습니다. 당시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이슬람 채권에 대해 달러 표시 채권과 마찬가지로 이자소득에 대한 이자소득세 등을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유는 지극히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부동산 등을 취득하고 운용해 얻은 이익을 채권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식으로 설계한 것이 이슬람 채권입니다. 소득세 면제 등과 같은 세제혜택이 없으면 지나친 세금부담 때문에 발행이 불가능한 것이 이슬람채권인 것입니다. 형식상으로는 특혜지만 실질적으로는 혜택으로 보기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논리가 정치논리로 변질되더니 종교적 논란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신문들의 미묘한 논점 차이입니다. 앞에서 봤듯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해 한국일보는 종교의 정치참여 그 자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세속적 이해에 대한 종교의 지나친 이해 요구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의 논조는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3월 1일자 사설을 보면 '종교가 현실정치로부터 초연해야 한다는 통념은 종교와 정치에 대한 그릇된 이해의 산물이다'라고 말합니다. 종교계도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조용기 목사의 발언을 소개한 이후 '결국 집권세력은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 기독교계의 이탈을 우려해 법안 처리를 4월 재보선 뒤로 미루기로 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이고 편협한 태도는 종교간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현실 정치를 준엄하게 꾸짖는 종교의 용기 있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라고 마무리합니다.(11.03.01 화요일 사설 '이슬람채권법과 종교계의 비이성적 논란')

 

한겨레신문의 논점도 이와 유사합니다. 3월 3일자 정의길 편집장의 칼럼은 보수적 개신교의 도덕성을 지적했습니다. 개신교가 하고 있는 '바퀴달린 십자가를 매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소개하며 '한국의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은 눈앞에 죽음이 기다리는 예수의 고난은 고사하고 한순간의 하찮은 육체적 고통도 짊어지기 싫은 모양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어 '뉴스앤조이'의 말을 빌어 '퍼포먼스 뒤에는 화려한 고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전합니다.(11.03.03 목요일 '바퀴십자가에 못 박힌 이슬람)

 

종교의 정치참여 그 자체를 비판하는 논조와 정치참여의 문제와 종교의 도덕성, 배타성 문제를 구분해서 지적하는 논조의 차이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4대강사업에 대한 종교단체들의 반대성명과 집회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작년, 4대강 사업을 반대하던 천주교 사제단에 대한 중앙일보의 지적은 단호합니다. 김진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쇠고기 문제처럼 '4대강 사업도 논리와 과학의 문제'(10.03.29 월요일 '김진의 시시각각 주교들은 완벽한 존재인가')라며 7~80년대와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의 정치참여를 정당화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세속과 종교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경향신문은 적극적으로 종교단체들의 반대집회와 성명 등을 소개하며 종교의 정치적 목소리를 옹호합니다. 작년 8월 20일자 신문에서는 '종교와 시민사회 사이의 소통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시민사회의 주요한 주체이자 구성원인 종교가 시민사회와의 원활한 대화와 이해, 나아가 다양한 협력을 통해 건전한 시민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국가적 의제가 천주교회의 사회교리, 사목 방침에 어긋날 때 자발적으로 소통을 시도'(10.08.20 21면 금요일 "종교와 시민사회 '소통'은 시대적 필연")해야 한다며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움직임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양쪽의 의견 모두 옳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누가 옳다 누가 틀리다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동안 종교가 한국사회의 발전과 민주화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도 사실이고, 종교가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변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교를 정치에서 오롯이 배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2월 7일자 한겨레신문에 소개된 함세웅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일에서 떠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적 발언과 정치행위를 동일시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인간의 삶과 사회는 정치를 떠나 존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치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인간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제의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자 하는데 어떻게 세상일에 눈 감은채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겠습니까"(11.02.07 월요일 '현실 눈감은 채 어떻게 빛과 소금 되겠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정치라는 것인 인간다운 삶을 구현해내기 위한 하나의 사회적 행위라면 종교와 실상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가 정책으로 이루어진다지만 전문가들만이 국회의원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이익집단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로 종교인들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부조리를 지적할 수 있다면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에서 안타까운 점은 한국의 종교계가 특히 개신교가 급격히 대중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교이지만 김수환 추기경과 신부님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삶과 행동, 말과 의지가 인생에 있어 많은 귀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도덕성을 잃게 되면 대중을 설득하거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개신교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사건들은 많은 실망을 던져줍니다. 봉은사 '땅 밟기'나 소망교회의 권력다툼, 이슬람을 향한 배타성 등은 다종교사회인 한국에 종교 갈등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칼럼에서 '21세기 한국판 카노사의 굴욕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파문당한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에게 용서를 빌고 복권되었던 사건이 카노사의 굴욕입니다. 정부 여당이 이슬람채권법 논의를 연기한 것을 두고 중세 교권이 속권을 누른 사건인 '카노사의 굴욕'에 빗댄 것입니다.(11.03.01 화요일 '분수대 카노사의 굴욕')

 

중세시대와 현재를 일률적으로 비교한 것은 재미는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극단적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 들어 개신교의 영향력이 일정 부분 더 커진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종교에 속박될 수 있는 상황이나 시대가 아닙니다.

 

개신교는 여론의 비판 혹은 조언을 잘 새겨들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개신교가 실제로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되어 속세를 속박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큰 어른 같은 종교가 진짜 종교이며 대중이 기대하는 종교의 역할입니다.

2011.03.06 16:02ⓒ 2011 OhmyNews
#개신교 #종교개입 #정교분리 #논조 #이슬람채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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