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한 <중앙>, 자기자식 죽어도 그럴 건가

[주장] '잇속 계산한 언론'과 '감동을 준 언론'의 차이

등록 2011.03.16 15:53수정 2011.03.1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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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2일 자 <중앙일보>와 <서울신문> 1면
3월 12일 자 <중앙일보>와 <서울신문> 1면중앙일보·서울신문

우리가 인간이라면 타인의 불행을 보고 숙연해져야 한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원수의 죽음일지라도 애도해야만 한다. 하물며 이번 지귀(地鬼)와 수마(水魔)에 희생된 일본인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타인의 불행과 무관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원수의 죽음 따위를 애도하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이웃나라의 선량한 사람들이 가공할 자연의 횡포에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갈 때, 그들을 저주하고 짐짓 기롱해 보거나 아니면 자기 잇속을 차리려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바닥 드러낸 한국 언론인의 인간적 자질

한국의 저명 목사가 일본인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은 것이라는 식의 '천벌론'을 제기하여 희생자들을 저주한 데 이어, <중앙일보>는 14일 자 칼럼에서 난데없이 '국가 운명론'이라는 말장난으로 희생자들을 기롱했다.

"일본 강진과 대형 쓰나미. 지금까지 사망 실종자가 1700여 명에 달하고 1만여 명이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거나 실종될 운을 타고 났을까… 이를 두고 '수퍼문(supermoon)' 현상과 연관 지어 종말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수퍼문과 연관되는 자연재해는 1974년 호주, 200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다. 그렇다고 종말이 오진 않았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일본일까? 정답은 하나다. 바로 '국가의 운명'이다." - 이정일 칼럼 "수천 명이 한날한시 죽을 운이라는 게 있을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이 참사로 비명횡사했을 때도 '이것은 내 자식의 운명'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타인의 죽음은 나와 무관하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개념 없이 작동한 배일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와 <서울신문>은 쓰나미 참사 다음 날인 12일 자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똑같이 '일본 침몰'을 걸었다. 이웃의 엄청난 재앙을 생생히 목도하고도 그들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고작 한 편의 영화 제목이었나 보다.


이것은 한국 종이 신문 편집진의 의식구조가 동일한 수준으로 이미 하향 평준화됐음을 시사한다. 일본 침몰이라니. 이것은 영화처럼 일본 국토가 전부 또는 거의 물에 잠겼을 때나 써야 하는 말이 아닌지. 이토록 심각한 대형 오보(?)를 남발하고도 건재할 수 있다는 점이 다만 놀라울 따름이다. 

<서울신문>은 4면에 "140년 만에 최악 강진…'일 열도 절반 침몰' 전조인가", "영화 '일본 침몰' 현실화되나"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런 기사는 일본의 침몰을 내심 기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특히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진 일본인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경박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식 기사를 한국의 독자들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독자와 누리꾼들의 비판과 분노를 야기했다. 단지 종이신문 특유의 근시안적 사고와 상업적 선정주의를 노출했을 뿐이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자기 잇속만 계산한 언론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자기의 잇속만 계산하는 것은 천박하고 이기적인 행태다. MBC와 <중앙일보>가 이런 보도 행태를 보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MBC는 11일 저녁 일본 지진 속보 끝부분에 돌연 "일본 한류 열풍 타격"이라는 리포트를 냈다. MBC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류 스타들은 일단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이 일본 내 신한류 열풍에도 큰 타격을 주지 않을까 우려됩니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MBC는 이어 아이돌 그룹 '초신성' 소속사 대표 강찬이씨를 통해 "다음 주에 일본 텔레비전 출연이 예정돼 있는데 일본 현지와 아직 전화 연결이 안 돼서 일정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지진 때문에 일본 활동에 지장 받을까 걱정"이라고 전하면서 "이번 지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 신한류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연예계는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3일 야후 재팬에 등록된 <중앙일보> 인터넷판의 기사는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등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반사 이익"이란 제목과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사는 "현재 일본은 정유업계 4위 업체인 코스모석유 정유시설에 30m의 불기둥이 오르는 등 석유화학, 정유업계에 타격이 크다"는 내용과 함께, 한 증권연구소 관계자의 말을 빌려 "정유 마진이 커져 국내 정유 회사의 반사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안타깝게도' 이 기사는 일본어로 번역, 전송돼 일본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먼저 MBC 보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의 엄청난 인명 피해보다 한국 일부 연예인의 '영업'을 챙기는 행태로 비칠 수가 있다. 또한 <중앙일보>의 기사는 이 신문이 과연 언론인지 재벌이라는 이름의 '장사꾼'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불행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런 보도는 소아적 국가이기주의의 발상에서 빚어진 것이다. 타국의 큰 불행도 자국의 작은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게 보는 것은 인류적 균형 감각이 심각하게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해낼 수 있어 일본, You shall overcome 日本

 13일 일요일판 <인디펜던트> 1면
13일 일요일판 <인디펜던트> 1면인디펜던트
부끄러운 한국 언론과는 달리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보도는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이 신문은 일요일 자 1면 머리기사로 일본 지진 소식을 다뤘는데, 이례적으로 1면 전체에 일본 국기를 싣고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안에 일본어로 '주저앉지 마 일본, 주저앉지 마 도호쿠'라는 구호를 실었다. 붉은 원 바로 아래 일본 국기 여백에 영어로 'Don't give up, Japan  Don't give up, Tohoku'라고 큼지막하게 쓴 것이다.
이 신문은 사실보도와 신속보도보다 중요한 것은 재앙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인류에 대한 위로와 격려라는 인륜적 가치를 우선시한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인륜적 가치이자 동시에 진정한 언론적 가치가 아닐까?

필자가 시민기자로서 글을 쓰는 <오마이뉴스>에 제안한다. 남이 먼저 했던 것이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모방해도 괜찮다고 생각 들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도 <인디펜던트>와 같은 기사를 한 번 내 보자.

"해낼 수 있어 일본, 해낼 수 있어 일본"
You shall overcome 日本, You shall overcome 日本

지금 일본인들은 쓰나미라는 자연의 횡포와 원자력이라는 문명의 공포가 주는 전대미문의 참혹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들을 생각하는 우리는 지금 존 던(John Donne)의 시 한 수를 읽어 볼 시간이다. 이 시는 '세상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우리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領地)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주저앉지 마세요, 해낼 수 있어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일본인, 재일동포 유족들, 집과 고향을 잃은 재난민 여러분에게 뜨거운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주저앉지 마세요, 해낼 수 있어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일본인, 재일동포 유족들, 집과 고향을 잃은 재난민 여러분에게 뜨거운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일본 대지진 #한국언론 #일본침몰 #인디펜던트 #존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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