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일본으로 쌀을 반출하기 위해 창고에 쌓아놓은 쌀가마.(세관청사 전시실에서)
조종안
수탈의 창구였던 당시 세관은 조선 백성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으며 어쩌다 들어오더라도 몸수색을 당했고, 일인들이 벌이는 연회를 몰래 구경하다 경비원에게 붙잡혀 뭇매를 맞기도 했다고 하자 그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었느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피죽, 아니면 콩깻묵으로 끼니를 연명할 때 일제는 호남의 기름진 쌀로 배를 불렸으며, 농민이 피땀 흘려 거둬들인 쌀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환호작약하며 잔치를 벌였다는 설명에 손님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디 그럴 수 있느냐며 탄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산교육의 장소가 되고 있는 구 세관 청사는 엊그제도 일본인이 다녀갔다고 했다. 필리핀을 거쳐 왔다는 일본 방문객은 최근 일본은 지진으로 곤경에 처해있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한국을 부러워했단다. 방명록엔 서툰 영문으로 'JAPAN'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도봉희(64세)씨는 울릉도에도 일제의 착취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울릉도에도 옛날에 일본 아들이 많이 살았어요. 한국 사람을 상대로 돈놀이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간스미'(통조림) 공장도 해서 돈을 숱하게 챙겼지만, 해방이 되고 즈그 나라로 갈 때는 빈 몸으로 돌아갔다, 아입니까"라고 말했다.
생각잖게 '군산 알림이' 되다 세관 청사에서 일제강점기에 쌀을 쌓아놓기도 하고, 배에 선적하던 내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터졌다. 울릉도에서 온 손님 중에 한 분이 갑자기 배가 아프고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했던 것. 해서 이 해설사가 모시고 침 맞으러 다녀오는 사이에 안내자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관광 해설사 교육을 받지 못한 터여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담을 중심으로 내항에 남아 있는 부잔교(뜬다리)와 구 조선은행 건물에 얽힌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다행히도 손님들이 관심을 표해주어 보람을 느꼈다.
또한, 한국전쟁 때 사용했던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 등이 전시된 '진포해양테마공원'과 최무선 장군이 개발한 화포와 해전 자료 등이 진열된 '위봉함 676'(LST) 내부를 둘러보고 군복무시절 추억을 회상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