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호텔비 파격 할인?... 참 친절한 중국 공안

[구이저우(貴州) 여행기2] 빈관 대신 호텔 추천하는 공안

등록 2011.03.23 16:59수정 2011.03.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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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의 안개 안개 자욱한 싱이. 산봉우리도 안개에 깎인 것일까? ⓒ 최성수


한밤중의 호출

싱이에서의 첫 날 밤, 낯선 곳에서의 나른한 행복에 젖어 막 잠이 들 무렵이었다.

"주무세요? 주무세요?"

방 밖에서 누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다. 운남에 사는 후배다.

"지금 빈관 주인이 와서 하는 말인데요, 공안국에서 여권 가지고 오래요."

그런 말을 하는 후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왜?"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며 묻는다.

"공안국에 보고했더니 외국인이 이런 열악한 빈관에서 묵을 수 없대요. 대표를 오라는데, 저랑 같이 가시죠."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여태 열 몇 번이 넘게 중국 여행을 했어도 빈관에서 묵는다고 문제 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일행들의 여권을 모아들고, 의아한 생각으로 빈관 로비로 내려간다.

로비에는 빈관 직원 두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권 다 가져오셨지요?"

빈관 직원 중 하나가 후배 손에 두툼하게 들려 있는 여권을 보며 빠진 것이 없느냐는 투로 묻는다. 열 한 개의 여권이 확인되자 그는 우리를 데리고 싱이 시내로 차를 몬다. 밤 늦은 시간이라 시내에는 차도 별로 없다.

그런데, 차가 시내를 벗어나더니 이상한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아무리 둘러봐도 경찰서거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건물을 짓다 말아 폐가 같은 골목을 지나고, 좁은 길을 돌아 집이 부서져 폐허가 된 곳으로 접어든다. 얼마를 더 달리더니 이번에는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이 뒤엉켜있는 곳도 지난다. 길가로 늘어선 풀들이 툭툭 차에 부딪히기도 한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이다.

'이런 곳에 공안국이 있을 리가 없어.'

내 마음속에 점점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한다. 옆을 흘낏 보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후배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중국어가 능통한 후배라 직원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긴장 때문인지 아무 말이 없다. 아무래도 공안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여권을 뺏으려는 수작인 것 같다는 의심이 마음속에 먹구름처럼 몰려든다.

'이놈들이 갑자기 차를 세우면 우선 내 앞에 앉은 녀석을 손목당수로 쳐서 쓰러뜨리고 운전수를 발로 차 차 밖으로 내친 뒤 운전을 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두 직원의 뒷퉁수를 노려본다. 곁눈질로 보니 옆에 앉은 후배는 여권을 잔뜩 움켜쥐고 여차하면 내뺄 태세다.

그런데 길 같지 않은 길을 휘돌던 차가 어느 구비를 돌자, 갑자기 눈앞에 제법 번듯한 건물이 나타난다. 숲 속에 숨어있기라도 한 것 같은 집인데, 공안국이라고 적혀 있다. 정말 공안국에 오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황당한 곳에 공안국이 있어도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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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빈관 결국 이 빈관에서 쫓겨났다. ⓒ 최성수


혼나는 직원, 도도한 공안

공안국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 둘은 우리 여권을 받아들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한다. 그러자 제복을 입은 공안이 우리를 한번 흘낏 훑어보더니 형식적으로 여권을 뒤적이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너희 빈관 같은 데 외국인을 왜 받은 거냐?"

고압적인 자세다. 빈관 직원은 어쩔 줄 모르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

"외국인은 우리지역에 온 손님인데, 너희 빈관 같은 데 묵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야?"

곧 삿대질을 할 것 같은 윽박질이 이어진다.

"괜찮은 줄 알았어요."
"안 돼. 당장 옮겨야 해."

중국어에 서툰 나는 대체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없는데, 후배가 옆에서 그런 말이라며 작은 소리로 설명을 해 준다.

"당신 중국말 할 줄 알아? 이리 와 봐."

공안이 후배를 부른다.

"그래, 왜 우리가 이 빈관에 묵으면 안 되는데?"

후배가 항의하듯 공안에게 말을 건넨다. 역시 내국인이 아니라 당당할 수 있는 것이리라.

"외국인이 빈관 같은 데 묵으면 우리나라 인상이 좋지 않다. 더구나 빈관은 아주 위험한 곳이다. 그러지 말고 호텔로 옮겨라."
"우리는 이미 방값도 다 지불했고, 짐도 다 풀어놓았다."
"며칠이나 싱이에 머물 생각인가?"
"내일까지 묵고 모레 아침에 떠날 예정이다."
"그럼 오늘은 빈관에서 묵고 내일 꼭 호텔로 가야 한다."

마침내 공안과 합의를 본 후배가 다가와서 내게 그런 대화 내용을 알려준다. 여권을 돌려주고 난 공안이 다시 직원을 불러 몇 차례 더 야단을 치고 한마디 한다.

"지금 이 사람들 데리고 하이위(海鈺) 대주점(大酒店)으로 가서 예약해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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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쌀국수. 아침 요기로 그만이다. ⓒ 최성수


공안의 말에 직원 둘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을 준다. 역시 중국은 경찰 권력이 막강한 나라인가보다. 우리 같으면 인권 침해라고 당장 문제 제기를 할 텐데, 변명조차 한 마디 없다.

하긴 불과 십수 년 전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복 경찰은 대학 안에서 학생들을 감시했고, 길가던 사람은 불심검문에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신분증을 꺼내야 했고, 말 한 마디 잘못한 죄로 잡혀 들어가 얻어터지고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 암울했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벗어나 온 것일까? 어쩌면 다른 형태로 변화된 억압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폭력이 이제는 상업적이고 자본화된 폭력으로 바뀐 것일 뿐이지 않을까? 자본은 지능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가면서, 결코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는 무한경쟁의 소모전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무한경쟁의 시간에서 도태될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물리적 폭력이 자본적 폭력으로 대체된 우리의 현실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끼?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시 빈관 직원이 모는 차에 오른다.

"나는 아까 차가 멈추면 여권을 들고 튀려고 했어요."

후배가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는 듯 씩 웃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다.

바들바들 떨던 그 손

차를 몰아 공안국 마당을 나서자 비로소 안심이 된다는 듯, 빈관 직원들 표정이 풀어진다. 공안국 내에서 계속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렸던 표정이 그제야 사라진 것이다.

"어디로 가냐?"
"하이위 대주점으로 가야지. 가서 예약해야 한다."

웬만하면 그냥 빈관으로 돌아가 모른 체하고 내일까지 묵을 생각이었는데, 빈관 직원들은 단호하다. 공안에게 더 이상 시달림을 받을 수 없다는 의지가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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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의 거리 풍경 촉촉히 젖은 싱이 거리 ⓒ 최성수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하이위 대주점은 우리가 묵기에는 너무 호화로운 호텔이다. 로비부터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고, 프런트의 아가씨들은 친절하기 그지없다. 빈 방이 있긴 있는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방 하나에 380위안이다.

'380위안이면 1위안에 170원만해도 우리 돈으로 6만 4000원 가량 되는데, 지출이 너무 크네.'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빈관 직원이 사정 설명을 하면서 깎아줘야 한다고 부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프런트로 걸려 온 전화를 받는 아가씨 표정이 갑자기 친절을 넘어 공손해진다.

"공안국에서 온 전화인데요. 우리가 예약하러 왔나 확인하는 전화예요."

전화를 엿들은 후배가 내게 알려준다.

"공안국에서 238위안에 해주라네요."

전화를 끊은 아가씨가 어쩔 수 없다는 듯 238위안을 내란다. 세상에, 공안이 호텔 가격까지 결정해 주다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만다. 내 웃음을 흥정에 대한 합의로 받아들였는지, 아가씨가 여권을 달라고 한다.

여권을 맡기고 체크 인을 하는 사이, 빈관 직원 두 명과 후배가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는 빈관 사장의 동생인데, 낮에는 싱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며, 다음에 오면 자기가 싱이를 잘 안내해 주겠다고,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이 호텔에서 묵고 가라고 하며 씨익 웃는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그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계속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같이 있는 또 한 명의 빈관 직원도 종이를 들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린다. 아직도 공안국에서 당한 공포가 가시지 않았나보다.

물리적 폭력은 즉각적인 두려움을 가져오지만, 자본적 폭력은 당하는 사람조차 그것이 폭력인지 깨닫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을 나는 그 손을 보며 한다. 어느 것이 더 무서운 폭력일까? 폭력이라는 이름에 더하고 덜한 것이 있을까?

문득 어제 아침 풍경이 되살아난다. 아침 일찍 쿤밍 역으로 기차표를 끊으러 갔을 때였다. 중국 기차는 출발 열흘 전부터 예약이 되기 때문에 구이저우의 카이리에서 다시 쿤밍으로 돌아오는 표를 끊기 위해 간 것이었다. 

쿤밍 역은 이른 아침부터 그야말로 사람의 산이고 사람의 바다였다. 표를 끊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역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줄을 서도 앞에서 새치기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점점 뒤로 밀릴 뿐이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겨우겨우 매표창구 앞까지 왔는데 갑자기 모든 창구가 문을 닫아 버렸다. 삼십 분, 아침 식사 시간이란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일제히 문을 닫고 밥을 먹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 삼십 분 후 매표창구가 열리긴 했지만, 줄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앞에 가보니 웬 남자가 수십 장도 넘는 표를 혼자 다 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나중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던 사람인데, 새치기를 해서 말이다. 마침 질서 유지하는 직원이 오기에 새치기라며 왜 그냥 두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그 사람에게 다가가 뭐라뭐라하더니 돌아와 냉정하게 한마디 하고 간다.

"군인이야."

아무도 항의하지 않고, 아무도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 바로 경찰과 군인인가 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웃음기 하나 없이 그저 줄을 서 있을 뿐이다. 마치 입과 심장이 굳어버린 동상처럼.

하긴 거대한 땅덩어리를 통치하려면 제도적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중국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땅에, 숱한 민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이 어딘가에는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제도 속에서 개인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앞줄이다. 두 시간 가까이 줄을 서 마침내 표를 사게 되는구나, 하며  창구에 다가가 '카이리에서 쿤밍'이라며 날짜를 대자, 냉정하게 돌아오는 한마디.

"메이여우(없어)!"

그 소리를 들으려고 두 시간을 사람들 발길에 이리저치 채이며 기다렸다니!

"그냥 가지요. 구이양에서 한 번 사 보지요 뭐."

후배가 할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벌리며 씽긋 웃는다. 중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는 표정이다. 빈관 직원들이 공안국에서 맞닥뜨린 두려움도 아마 쿤밍 역에 서있던 사람들의 무표정과 같은 것 아닐까? 내면화된 공포가 빚어내는 무관심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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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는 안개에 젖어 싱이에는 늘 안개가 끼어있다. 안개는 도시를 적시고, 사람들 마음까지 적신다. ⓒ 최성수


하이위 대주점에서 예약을 끝내고 빈관으로 돌아오니, 일행들이 한 걱정을 하며 모여 있다가 비로소 반색이다. 일행들 역시 납치된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나는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싱이에서의 첫 밤, 국가와 폭력, 제도와 인간이라는 단어들이 온 밤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싱이 #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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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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