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경로당 폰팅 사건> 연극 <경로당 폰팅 사건> 포스터
극단 드림
장수아파트 경로당. 두 할아버지와 세 할머니가 매일같이 얼굴 맞대고 놀고, 이야기 나누고, 다투고, 하소연하고, 춤도 배우고, 정보를 주고 받고, 효도관광 다니고, 다른 사람 흉도 보고, 마을 일 걱정도 하고 그러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새로온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슬쩍 얼굴 붉히기도 하고, 택배 총각만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장기를 두며 티격태격 하다가도 금세 화해하고, 자식 자랑에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살갑게 굴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금방 목소리가 높아지고 드잡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수경로당에 사건이 생겼다. 경로당 전화요금을 아파트 부녀회에서 대신 내고 있는데, 어느 날 300만 원에 가까운 요금 청구서가 날아온 것. 전화국에 알아보니 누군가 폰팅을 해서 그렇게 거액의 전화요금이 나왔다는 게 아닌가. 범인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데 모두 조금씩 수상하다. 아무래도 의심이 간다.
소극장에 들어서니 건양대 디지털콘텐츠학과 1학년 학생들 50여 명이 단체로 와서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재기발랄함은 연극 관람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찌나 반응이 빠르고 적극적인지 연극도 연극이었지만 스무 살 젊은 사람들의 하는 양을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무대 위 할머니 할아버지의 몸짓과 대화에 한마디로 빵빵 터졌다. 덩달아 내 웃음소리까지 저절로 커졌다. 중간 중간 할머니 할아버지의 개인사가 밝혀질 때를 빼놓고는 연신 웃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연극은 재미있다. 젊은 배우들의 노인 연기가 그리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자식들이 짐스럽게 여기는 것 같아 돈벌이에 나선 할머니,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한 달 후에 모시고 가겠다던 아들과 연락이 끊겨 가슴이 타들어가는 할머니, 오래 자리 보전하고 있는 아내 간병에 지친 할아버지, 일찍 세상 떠난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할머니, 빚 때문에 거리를 떠도는 자식 생각에 애가 끓는 할아버지.
이 연극이 대학 신입생들 웃고 울린 까닭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사에 나란히 앉은 젊은이들이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나보다 먼저 눈가를 훔치고 코를 훌쩍이는 것이었다. 한창 신이 나 있을, 그래서 붕붕 떠다닐 것만 같은 대학 신입생들의 어디를 어떻게 건드린 것일까.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과 사진 찍느라 바쁜 학생들을 붙잡고 물었다. 대답이 간단명료하다.
"재미있어요...가슴이 뭉클했어요...엄마 아빠 생각이 났어요...할머니 할아버지가 엄청 귀여워요...마지막이 대박이에요. 폰팅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 될 줄 생각도 못했는데, 진짜 감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