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12일 오후 국회 교과위 긴급 현안보고가 끝날 때까지 의원들의 사퇴 촉구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는 경쟁강화를 근간으로 하는 자신의 대학 개혁에 대해 "학생을 사랑해서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은 "인간은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힘을 합치고 존중하는 존재"라면서 "사람을 격려하는 차원의 장학금이라면 학생들이 절망하지 않겠지만 (차등등록금제는) 거꾸로 됐으니 절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 총장은 "나는 학생들을 사랑한다"며 "학생들을 유혹하는 게 많아서 그걸 막으려던 것"이라고 자신의 경쟁 개혁 취지를 설명했다. 서 총장은 이어 "학생들이 다른 데 시간을 안 보내게 하기 위해 한 것"이라며 "자꾸 여기에 '경쟁' '징벌'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나쁘게 보이는데, 나는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서상기 한나라당 의원이 사퇴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서 총장은 "일단 사태 수습이 급하다, 학생과 교수들이 참여해서 문제를 풀어내고 있고, 밖에서 지적하는 문제들도 고치고 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도 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학부생들이 교수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학점을 0.01점만 올려달라고 호소하는 기막힌 현실을 들어봤느냐,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질책하자 서 총장은 "자살에는 복잡한 사안이 많이 있다. (등록금 차등제가)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의원들의 거듭된 사퇴요구에 서 총장은 "당면 문제 해결이 가장 급하다. 아직 학교가 안정되지 않았다"고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서 총장의 개혁정책이 옳았다 하더라도 사퇴하는 것이 맞다"며 "(교수 1명을 포함한) 소중한 생명 5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자리를 지키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고 일침을 가했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 대해 여야 교과위원 다수가 서남표 총장의 책임을 물으며 사퇴요구를 한 반면,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단순한 자살문제로 서 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카이스트 학비가) 기본적으로 무료인 정책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 의원은 카이스트 졸업생 중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18%나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5명 중 1명인 셈인데, 이 정도면 설립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조 의원의 지적은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 목표하에 전액 장학금이라는 혜택을 받고 있지만, 졸업생 상당수가 이공계가 아닌 쪽으로 진출하고 있어 사실상 세금이 낭비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조 의원은 이어 "그런 부분에 국민세금을 많이 투여해서야 되겠느냐"며 "(이공계) 인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선별적으로 (혜택을 부여) 해야지, 먹고 튀는 데에도 국민세금을 넣어주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의원은 20~30%에 이르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휴학 비율과 정규 4년 기간 내 졸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의 비율을 언급했다. 이에 서 총장은 "(휴학 등으로 졸업을 미루는 학생이 많아) 기숙사도 모자라고, (졸업자들이) 빨리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해서 그 해결책의 하나로 (졸업 연기자에게) 수업료를 받아야겠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조 의원은 "'경쟁 위주로 해서 문제가 생겼다''서 총장 한 사람의 잘못이다'라고 몰아가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며 "내 개인적으로는 서 총장이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차등 등록금제 때문이 아니라 학교 운영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서 사퇴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단순히 이런 자살 문제로 (사퇴 요구를) 하는 부분은 우리나라 전체 시스템과 관계돼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또 "2011년 졸업생 중 99.3%가 A나 B를 받았다. '학점 인플레'가 보통 높은 수준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켜서 그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인지, 사회 분위기가 정말 자살을 권장하는 사회인지, 이런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놔야지, 서남표 총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정치적인 접근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2신: 12일 오전 11시 33분]
"등록금차등제, 영어강의가 일부 원인 제공... 사퇴 고민 안 해"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차등 등록금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자신의 사퇴 여부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최근의 잇따른 학생 자살 사태에 대한 향후 대책을 보고하면서 서 총장은 "성적에 관계없이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개선하겠다"며 "조만간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총장은 이날 등록금 차등제와 영어강의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박보환 한나라당 의원이 "등록금 차등제와 영어강의, 이 두 제도가 사고의 원인이라는데 동의하느냐"고 물은 것에 대해 서 총장은 "일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카이스트 구성원과 국민은 총장님께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용퇴를 하는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정직한 대응은 총장님이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용퇴해서 새로운 카이스트의 재출발에 동기를 부여하는 게 최선"이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김춘진 의원은 "카이스트가 학생들을 성적으로 압박하고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예전에도 했는데 전혀 반영이 안됐다"며 "(총장의) 리더십을 바꿀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서 총장은 "학생들을 위해 바꾸겠다"고 답했다. 이어 김 의원이 "총장직 수행을 잘해왔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잘했지만 고칠 점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내부 외부에서 비판이 있다는 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총장직에서 물러날 건가, 계속하겠는가"라고 다그쳤다. 이에 대해 서 총장은 "지금 여러 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사퇴까지 고민하고 있는 거냐"고 묻자 서 총장은 "그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1신: 12일 오전 10시 40분]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린다"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이하 카이스트) 총장은 12일 최근 4건의 연이은 학생 자살과 관련,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보고에서 "최근 본교 학생들과 선생들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깊은 슬픔과 함께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이후 10여 초간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서 총장은 "일반 대학과는 달리 카이스트는 영재고·과학고 등의 젊은 인재들이 모여 있어 상대적으로 인격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최근의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다"며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카이스트 교수와 학생, 직원 모두 힘을 모아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위원님들과 국민 여러분의 애정 어린 질책과 조언을 부탁드린다"며 "다시 한번 최근 카이스트의 안타까운 일로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위원님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소중한 자식들을 떠나 보내신 유족 분들에게 카이스트를 대표해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카이스트의 잇따른 자살 사태 더불어 교과부 감사에서 학내 비리가 불거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서 총장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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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학생 사랑해서 한 것, 사퇴 고민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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