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1995년 7월, 항소심 패소 이후 법원 앞에 모인 피해자의 지원자들.
한국성폭력상담소
1993년 10월 가해자인 교수, 대리감독자로서의 감독을 소홀히 한 서울대학교, 국립대의 설치운영자로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7년간에 걸친 길고 긴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소송사건이 시작되었다. 조교의 변호는 박원순, 이종걸, 최은순 변호사가 무료 변호인단으로 무려 7년 동안 열정을 다 쏟아 이 사건을 승소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1994년 4월 5차에 걸친 법정 공방전을 거쳐 1심 재판부는 피고 교수에 대해서만 30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공대위와 여성계에서는 학교와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판결은 환영했다. 하지만 여전히 별일 아닌 것에 과하다는 교수 동정론도 존재했고, 판결을 한 재판부에도 격려와 비난의 전화가 교차했다고 한다.
교수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하였고 A도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대리 감독자로서의 서울대학교와 설치 운영자로서 대한민국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항소를 하였다. 다시 10차례에 걸친 항소심 법정 공방이 있었고 1995년 7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 A씨에 대한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공대위와 여성계는 여성운동을 50년 퇴보시킨 판결이며 판사는 즉각 사퇴하라고 성명서를 냈고,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법원 앞 도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서울대 학생들은 가해자 교수의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1995년 8월 A씨는 상고장을 접수하였고 1998년 2월 10일 상고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시켰다. 실제적인 상고심에서의 승소였다. 그러나 상고심 재판부도 학교와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원심과 같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지 1년 4개월 만에 환송심 재판부는 교수에게 원고 A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A와 교수 모두 1999년 7월 대법원에 재상고하였다. 결과는 1999년 11월 대법원에서 양측에 기각 판결을 내려 교수가 A에게 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유지되어 실질적으로 이 재판은 A의 승소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피해자를 향한 따가운 시선 "보복성 대응 아니야?'"긴 소송이었지만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논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발생한 성희롱의 정도가 문제 삼을 만한 일인가? 그 정도의 행위는 친밀감의 표현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왜 피해 당시 문제제기하지 않았는가? 왜 해임 당한 후에야 제기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실제로 A가 성희롱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해임에 대한 보복으로 전임 조교들이 당한 성희롱 사실을 듣고 자신도 당한 것처럼 위장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쟁점은 법정에서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크게 논란이 되었고 특히 '왜 성희롱 당시 문제 제기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은 이 사건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연구와 실태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성희롱은 인간적 모욕감과 절망감으로 인해 일할 의욕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장애로 남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더욱이 성희롱은 근무환경을 악화시켜 노동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인권 침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5년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직장 상사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하급자에게 행한 성희롱이 63.8%로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성희롱은 성별 권력 관계의 불균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바로 거부의사를 밝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