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권우성
- 지난해에는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때도 재밌는 일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 사회에 조사차 왔다고 하면 인권위원장은 자기 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UN이라는 국제기구가, 인권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에,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가 질식되고 있으니까 특별보고관을 보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서 인권위가 책임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현 위원장은 오히려 비아냥거렸다.
현 위원장이 보고관에게 말하기를, '내가 알기로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만 4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그 애정의 조금만이라도 북한에 대해 보여주셨으면 좋겠다'(웃음)고 했다. 보고관이 웃더라. 현 위원장으로서는 아마 '왜 너는 번듯한 한국에 대해서는 욕보이려고 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냐'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 라 뤼 보고관과 현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이 외부의 유출되자 현 위원장이 김형완 소장을 의심했고, 그때부터 위원장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부터라기보다는, 저는 사실 현 위원장 취임 초기에 이 분이 전문성이 전혀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었고 법학 교수들조차도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더라. 이 사람은 강의를 안 하고 보직만 했다고 하니까. 그런데다가 논문 몇 편이 있는 것마저도 표절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그래서 이 분이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오는 분에 비해서 옆에서 잘 보좌를 해 드리면 제대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권에는 보수·진보가 없으니까.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꽤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국회에서 벌어진 해프닝. 예컨대, 인권위가 사실상 행정부의 일원이라고 답한 거라든지 일련의 언동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거다."
- 김형완 소장 사퇴 이후로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 등 수많은 인권위 인사들이 줄사퇴했는데."지금 (인권위에) 계신 분들에게는 야속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큰 틀에서 보면 인권위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이런 몸부림들, 흔적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씀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걷어붙이고 나와라 이런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문제제기하고 나와서 또 다른 대안을 찾아서 나가는 거고 일부는 남아서 그 안에서 투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제가 나오고 난 다음에 줄사퇴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우선은 안타까웠다. 인권위 10년의 역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무너진다는 것이 단순히 인권기구가 제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 문제보다 더 본질적으로 국민들에 대한 (인권위의) 신뢰와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사퇴를 포함한 '줄사퇴'가 사실상 자해행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인데,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굉장히 안타까웠고. 안타까운 만큼 나와서 다른 대안을 빨리 세워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 인권정책연구소에 인권위를 나온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창국 인권위 초대 위원장이 고문을 맡았고, 10명의 이사 가운데 김 소장을 포함한 7명이 인권위 인사다. "인권위를 나온 60여 명에 달하는 정책 자문위원들도 제가 개별적으로 접촉을 몇 분 해봤는데 연구소에 관심이 많으시고 애정을 보이셨다. 이 연구소가 정상화되는 대로 정책 전문위원으로 전부 모시려고 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인권분야의 전문가는 우리사회에서 그렇게 자원이 많지 않다. 굉장히 한정된 분들인데 이분들이 인권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그릇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인사들이 인권위를 나오면서, 인권위를 개혁할 수 있는 내부동력이 약해진 거 아닌가."저는 사태를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게 무슨 노선의 차이나 이념, 진보·보수 이념의 갈등에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고 인권위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독립성 문제와 관련해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식 있는 직원들이라면 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분히 공감대를 가질 거다. 일부가 나오긴 했지만 나온 사람만큼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안에서 재생산할 거라고 본다. 인권위의 최고 수장이 말도 안 되는 운영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 확산됐지 오히려 위축되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인권위가 안에서 내부동력이 생겨서 위원장의 문제를 지적하고 인권위 본연의 역할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들을 한다고 하더라도, 바깥에서 인권시민사회 진영의 견제 없이는 관료화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안에서 열심히 싸우시는 분들은 싸우시고, 거기에서 별 의미를 못 찾고 다른 비전을 성취하시겠다는 분들을 저와 같이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권위 10년, 뼈아픈 고백 담긴 '대국민 성찰보고서' 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