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투표 직장인엔 '그림의 떡'

밤 10시나 11시까지 연장해야

등록 2011.04.25 19:10수정 2011.04.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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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코앞이다. 투표율이 당선자를 결정할 것이란 말이 돈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수요일 평일에 열린다. 투표시간은 오전 6시에서 오후8시까지다. 그래서 어떤 회사는 직원들에게 2시간 유급휴가를 주어 직원의 투표 시간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평일 투표는 정말 그림의 떡이다.

재작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평일에 치러졌다. 투표율이 낮을까 걱정된 나는 주변에 열심히 선거를 알렸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는 미혼의 선배에게 전화해 투표 안내를 했다. 그 선배는 교육감 선거 투표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투표 마감시간이 오후 8시까지거든요."
"나 그 시간에 퇴근 못해."
"그러니까 그 날은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투표하고 출근 하세요. 투표시작 시간은 6시부터 거든요."
"정민아, 선배가 장담은 못하겠고, 노력은 해볼게."

한숨과 함께 돌아온 대답이다.

직장인에게 아침시간 10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잘 안다. 직장인들은 그 10분을 벌기 위해 버스 대신 비싼 택시를 타기도 하고, 그 10분을 더 자기 위해 아침을 굶기도 한다. 그런 바쁜 시간을 내어서 투표를 해 달라고 했으니,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투표시간이 평일일 경우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로 법에 정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우리나라 직장이 6시 칼퇴근 문화인가?' 의문이 들었다. 국회에서 평일 투표시간을 정하면서 유권자들의 상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고 본다.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8시에 집에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직장인은 선생님이나 사장님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없다.

'내 주변만 늦게 퇴근하나?'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OECD국가 중 가장 길다는 기사를 읽고 국민 대부분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무시간이 긴 우리나라에서 투표시간만은 유럽식을 따른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들의 참정권은 어느 나라에 가서 행사하란 말인가?


평일에 하는 투표든 휴일에 하는 투표든 전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낮은 투표율의 일차 원인은 국민들의 정치무관심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낮은 투표율로 소심한 복수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민의 소심한 복수 따위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또한 국민들이 정치의식 없다며 나무란다. 투표한 국민들은 투표하지 않은 국민들의 낮은 정치의식을 책망한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국민들의 낮은 투표율의 문제는 분명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의식만 바꾸면 되는가? 그것만으로 안 된다. 참정권이 현실의 권리가 되게 하는 제도 개선도 반드시 이뤄야 한다. 정치권은 왜 국민들이 투표를 못 하는지, 어떻게 제도 개선을 하면 투표를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표 시간의 경우엔 여론조사 한 번이면 그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투표시간을 10시나 11시까지 연장한다면, 시간의 제약으로 투표를 못 하는 사람의 수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 된다.


평일 투표 시간을 연장한다고 투표율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투표율이 얼마나 늘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의식개혁과 제도개선은 같이 가야 한다. 국민들의 의식 개혁이 없기 때문에 제도 개선을 못 하겠다고 해선 안 된다. 의식개혁과 제도개선은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도 흑인에게 투표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투표율이 여전히 낮았다. 흑인에게 있어서 참정권은 형식적인 권리에 불과했다. 흑인들이 투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투표권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백인들도 있었다. 당시 흑인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또한 주정부는 투표하려는 흑인에게 인두세를 요구하고 까다로운 시험을 보게 해 흑인들이 투표하는 것을 방해했다. 물론, 흑인들의 정치의식도 낮았다.

흑인민권운동이 일어나면서 미연방정부는 흑인투표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1964년 민권법과 1965년 투표권법을 만들었다. 1870년에 법률상 권리였던 흑인의 투표권이 100년 만에 민권법과 투표권법의 도움으로 실질적인 권리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제도 개선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평일 투표시간 연장은 재보궐선거보다는 주민소환투표 때 더 중요하다. 지자체의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도 평일에 실시된다. 이 경우 개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투표율이다. 투표율이 33.34%를 넘어야만 개표를 한다. 33.34%를 넘지 않으면 개표 자체를 하지 않고 그 주민소환이 원천 무효가 된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평일 오전6시에서 오후8시까지 하는 투표가 33.34%를 넘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선거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한 2008년 총선의 투표율이 46.0%였는데, 쉬지도 않는 평일에 그것도 겨우 오후 8시까지 투표하면서 투표율은 33.34%를 넘어야지만 선출직 공무원을 소환할 수 있는 법이 과연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평일 투표시간을 늘리지 않는다면 주민소환제는 아무 의미 없는 법에 불과할 것이다. 평일 투표시간을 연장하여 주민소환제도도 실현 가능한 제도가 되길 바란다.

국회는 이른 시일 내 평일 투표시간을 연장하도록 법 개정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국민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주민소환제도도 실현 가능한 제도가 되길 바란다.
#재보궐 선거 #투표시간 #주민소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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