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노래 포스터로 만든 바람개비소극장 앞 마당에 만들어져 있다.
김경미
죽어야만 볼 수 있는 뼈 아버지는 유일무이하게 마을에서 인정받는 뼈세공기술자다. 살아 있지만 죽음을 다루는 장의사 같은 역할이다. 죽은 사람들이나 마을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직업 때문에 큰딸 카오루는 진저리가 나서 18년이라는 시간을 떠나 지냈다. 카오루는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동생 시오리가 고향으로 왔기 때문에 다시 데려가려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픈 둘째 시오리가 자신의 뼈를 죽으면 세공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유언장과도 같은 말이다.
여전히 그녀에게 고향은 정붙이기 어려운 곳이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 소통이 안 된다. 아버지와 집은 그대로지만 고향조차도 시대를 쫓아 변해간다. 관광마을로 바뀌는 중이라 에뮤 마을과 같은 새로운 상품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과 현재의 뒤섞인 변화밝고 쾌활했던 둘째 딸 시오리는 자주 기억을 잊어버린다. 18년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시오리는 실명한 왼쪽 귀에서 자주 '뼈의 노래'가 들려 괴롭다. 시오리에게 변화란 존재는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뼈의 노래에 귀 기울이면서, 에뮤의 환영에 시달린다. 그리고 쓰러진다. 사랑하는 딸 때문에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시오리의 환영에 맞춰 광대 짓을 해야 했고, 아무것도 보이진 않지만 동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동화되어가는 카오루의 모습을 담아낸다.
변화는 아픔을 수반한다. 시오리 때문에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와 큰딸은 서로를 수용한다. 일단 카오루는 어렸을 때부터 잘 만들지 못했던 바람개비를 동생을 위해 천 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내가 아팠을 때는 아무것도 못해주었지만 시오리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애쓴다. 죽은 아내를 많이 닮은 딸이기에 더욱 마음이 애틋하다.
하지만 끝내 변화는 멈추고 만다. 세 명의 가족은 더는 못하겠다는 아버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뭐하는 거냐는 큰딸의 소리 그리고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환영에 지쳐버린다.
결국 시오리는 뼈의 노래에서 누누이 이야기했던 규센보의 신기루를 보기 위해 죽음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러므로 세 가족의 변화는 끝이 난다. 옥상에 올라간 시오리가 죽음을 맞는 순간, 없다고 믿었던 신기루를 큰 딸과 아버지는 함께 보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신기루를 함께 본 아버지와 큰 딸은 서로에게 미래를 의지한다. 아버지는 큰 딸 카오루에게 자신보다 더 오래 살아달라고 당부한다. 그 말에 큰 딸은 눈물을 꾹 참으며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풍습이나 전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지만 지키지 못할 뿐인 것이다. 전통이 없으면 현대도 의미가 없다. 현대가 있어도 전통이 없으면 그것 또한 힘이 없다. 전통과 현대는 적절한 조화 속에서 융화되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