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 주민, 왜 정몽준 의원 호소 외면했나

[분석] 4·27 재보선으로 미리 본 2012년 총선과 대선

등록 2011.04.28 18:47수정 2011.04.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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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 김종훈 당선자, 그의 부인, 권영길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손을 활짝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 김종훈 당선자, 그의 부인, 권영길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손을 활짝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임상우

4·27 울산 동구청장 재선거는 야4당 단일 후보로 나선 김종훈 민주노동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김 당선자는 전체 유권자 13만 2233명 중 6만 2782명(47.5%)이 투표한 가운데 2만9561표(47.30%)를 얻어 2만 6887표(43.02%)를 획득한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를 2674표(4.28%P)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김 당선자는 2010년 6·2지방선거에서는 정몽준 의원의 지지를 받았던 정천석 한나라당 후보에게 1999표차로 패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똑같이 정 의원의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를 2010년 표차보다 더 많은 차로 이겼다. 김 당선자는 2006, 2010년에 이어 2011년 세 번 도전한 끝에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특히 이번 김종훈 후보의 당선은 울산 동구지역이 정몽준 의원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라는 특성을 감안했을 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그 향방을 분석해 불 수 있는 잣대가 될 전망이라 큰 의미를 지닌다.

'울산 동구=현대중공업' 공식 사라져

울산 동구에서는 2002~2006년 세 명의 진보구청장이 당선됐지만 총선에서는 유독 정몽준 의원의 영향이 강했다. 이 지역 주력 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사주인 정 의원은 1988년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17대까지 5선을 연이어 했다. 그 바통을 이어 받아 18대 총선에서는 현대중공업 간부이자 정몽준 의원 사무국 출신인 안효대 의원이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4·27재선거를 전후해 동구지역에서는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역 민심이 과거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4·27 재선거의 결과는 이를 잘 말해준다. 47.5%의 높은 투표율에다 정몽준 의원이 총력 유세를 펼치고도 자신의 직계인 한나라당 후보가 고배를 마신 것이 그 증거다.

민심의 변화 배경에는 울산 동구만이 갖는 지역적 특성이 있다. 동구의 전체 인구 18만여 명 가운데 현대중공업 정규직이 2만 5000여 명이고 사내하청노동자가 2만여 명,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3800여 명, 사내하청 5600명 등 현대중공업그룹 관련 인구가 많다.


하지만 지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급속 향상된 현대계열 정규직의 처우 수준과 달리 현대중공업 직원 외 지역 주민들의 삶은 갈수로 팍팍해지고 있다. 동구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설문 결과도 있다. 2010년 민주당 울산시당이 울산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한 동구 지역 저소득층 대상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대상자 절반 가까이가 "저소득·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호소했다. 또한 "갈수록 더욱 힘들어 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기에다 비정규직 비율은 갈수록 늘고, 지난 2009년 경제 위기 이후 수천 명의 하청노동자가 해고 당하면서 남은 하청노동자 마저 임금이 삭감되는 등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동구의 높은 투표율은 이런 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한 반면, 각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는 등 과거 현대중공업이 이 지역에서 갖고 있던 호감도와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과거 노동자대투쟁으로 인해 처우가 개선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선거에서는 노동자대투쟁의 상징인 이갑용 전 노조위원장은 물론 당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지원하다 감옥까지 같던 김종훈 후보를 외면하고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런 점도 지역에서는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 

정몽준 의원의 빛바랜 '색깔론'... 변화하고 있는 지역정서

여기다 정몽준 의원의 철지난 색깔론 제기가 주민들을 식상하게 했다는 여론도 나온다. 정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후원하는 한나라당 후보 지원 유세를 하며 야권연대 김종훈 후보는 물론 야권연대 자체와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색깔론까지 제기했던 것.

그는 동구 주민들을 향해 "김종훈 후보는 북한의 핵무장과 천안함사건, 연평도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하는가 하면, 야권연대 후보를 지원하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게는 "친북, 종북 입장이라 북한에 가면 큰 훈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야권연대를 지원한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와 그의 남편까지 싸잡아 "우리나라 안보상황은 심각한데 이런 친북, 종북 세력들이 나라를 휘젓고 다니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주민들이 이같은 빛바랜 색깔론을 외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울산 동구의 가장 큰 문제는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임명숙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되레 "신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지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서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번 동구청장 선거는 후보 구성원 간 역학관계 때문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약 1개월 전만해도 동구청장 후보는 야권연대 김종훈 후보와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 간 2파전이 기정사실화됐다. 김종훈 후보가 다소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동구청장을 지낸 노동계 인사 이갑용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돌연 출마를 선언한 것. 이갑용 후보는 1980년대 골리앗 투쟁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며 민주노총 산파역할을 한 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당시 정몽준 의원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저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노동계의 표 분산으로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가 쉽게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와 함께 지난날 정몽준 의원의 또 다른 직계였던 천기옥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것.

천 후보는 "결국에는 접을 것이다"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고 완주하면서 이번 선거 최대의 이슈 인물이 됐다. 그는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한 현대중공업 노조를 향해 "오종쇄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울산 동구는 현대공화국, 현대왕국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고 변화를 주창하기도 했다.

천기옥 후보가 TV토론회에서 "정경유착을 반드시 뿌리뽑고 동구를 현대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만든 지역구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주민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한 것은, 그가 정몽준 의원의 직계였던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동구 지역의 민심이 급격히 변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일년 앞으로 다가온 19대 총선은 과거와는 그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총선 결과에 따라 정몽준 의원의 대선가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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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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