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 사진 속의 구조물은 물에 술을 띄워놓고 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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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은 누구일까? 그가 경순왕일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신라 제56대 경순왕이 형식상으로는 신라의 마지막 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하는 군주를 실질적 의미의 '마지막 왕'이라고 할 때, 경순왕은 그런 왕은 아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경순왕을 왕위에 앉힌 것은 후백제 견훤이었다. 신라 수도 서라벌은 물론이고 왕궁까지 점령한 견훤이 경순왕을 괴뢰정권의 수장으로 임명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훗날 왕건 대 견훤의 시소가 왕건 쪽으로 기울자 경순왕이 견훤 대신 왕건에게 나라를 바침으로써 신라가 정식으로 멸망하기는 했지만, 그의 등극 이전에 신라는 이미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신라의 멸망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신라본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정해년 9월(927.9.29~10.28) 후백제 견훤이 신라 영천군(당시 고울부)을 침공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후백제를 당해낼 수 없었던 신라 측은 고려에 파병을 요청했다. 아래 내용은 그 직후의 상황이다.
"견훤은 (고려)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서 겨울 11월(927.11.27~12.26) 왕경을 기습했다. 왕과 비빈(왕후와 첩)과 왕족들은 포석정으로 놀러가 연회를 즐기면서 적군이 당도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창졸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후백제군이 왕경(도성)을 점령한 줄도 모르고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긴, 이 문제의 임금은 신라 제55대 경애왕이다. 이름은 박위응이다. 견훤이 서라벌을 이미 점령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유흥을 즐기고 있었으니, 신라군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총사령관인 경애왕의 정신상태가 극도로 나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후백제군이 기습공격을 단행했기 때문에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포석정에 후백제군이 들이닥치기 2개월 전에 신라와 후백제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고,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고려에 파병을 요청했다. 후백제가 이미 침공한 상태에서, 그것도 고려의 구원군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경애왕이 한가롭게 연회를 벌였던 것이다. 게다가 서라벌 주변에 경계병도 제대로 배치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이는 그가 평소에도 유흥에 깊이 빠져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상황에서 파티를 벌였을 리도 없고 신하들도 그런 그를 제지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가 평소에도 그런 무책임한 행동을 했기에, 신하들이 아예 포기하고 그를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자왕이 마지막까지 군사전략을 고민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의자왕은 싸우다가 망했지만, 경애왕은 놀다가 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