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거리, 주인 없는 리어카추석, 밤 9시 33분, 보름달 환한데 리어카 주인은 없다.
김민수
일제강점기 시절, 할머니의 남편은 집안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키는 작았지만 인물이 제법 있었던 남편은 돈 있는 여자들을 찾아 다녀 평생 9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 딸을 얻을 때부터 할머니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소개한 친정집을 무척이나 원망했을 것입니다. 둘째가 생겼을 때 남편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서울로 식모살이를 가려 했습니다. 경기도 양평에서 두 아이를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한편 할머니 친정집에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남편을 잊으라 종용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애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남자를 소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당시 철도 터널 공사 인부로 일하던, 아들 하나 딸린 최씨 성의 홀아비가 있었고 여차여차 해서 할머니와 최씨 할아버지는 같이 살게 됐습니다. 6~7년을 같이 살면서 둘 사이에 아들과 딸 둘이 생겼습니다. 철도 터널 공사가 끝난 후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강원도 철원의 금광 광산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최씨 할아버지는 억울하게 매를 맞아 돌아가셨고, 최씨 할아버지의 큰 아들도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명횡사한 최씨 할아버지는 화장을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 없는 궁핍한 삶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과 딸들을 호적에 올려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예전 남편을 찾았고, 그렇게 다시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 남편의 분탕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9살부터 머슴 살아 마련한 소를 팔아 계집질에 탕진했습니다. 집안일과 농사일 등 생계 역시 여전히 할머니 몫이었습니다.
9살부터 머슴 살던 둘째 아들이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아버지는 최씨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당신이 최씨 성을 갖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는 최씨 할아버지의 비명횡사와 뿌리에 대한 한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최씨 할아버지처럼 화장을 부탁하신 겁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누나가 병원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를 꿈에서 봤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꿈에서 아버지는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가셨다고 합니다. 누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모는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보여 다음날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보고 싶었던 자식들과 손자, 손녀, 지인들 모두를 꿈속에서 찾아 가셨을 것입니다.
지난 어버이날,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4남매 그리고 조카들이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또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합니다. 이번엔 좋은 옷을 입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며, 아버지가 좋은 곳에 가신 듯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 제 꿈에서도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깔끔한 옷을 입고 현관문을 들어오시기에 "아버지"라고 부르며 달려가 팔을 잡았습니다.
여전히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한 어리석음에 그저 죄송하고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아버지! 하늘에서 최씨 할아버지 만나셨나요? 그렇게 그립던 할아버지 만나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어리광도 좀 부리세요. 막내 아들이 어머니 잘 챙기고 모실게요. 요즘 왜 이리 아버지 생각이 날까요.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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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 배달' 아버지, 냄새나고 부끄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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