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순이는 집 근처에서는 볼일을 보지 않아요"

하동사람, 서울사람, 함양개... 한 집에 살다

등록 2011.05.13 11:17수정 2011.05.1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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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여자가 만나 지리산에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오순도순 살고 있는데 멀리 있는 친구가 괜찮은 개가 한 마리 있다며 선물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애완동물이라고는 전혀 키워보지 못한 서울내기는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개마저도 두렵습니다. 고마운 친구에게 미안하게도 사양을 하고 하루가 지나자, 산골 소년은 다시 서울내기를 설득합니다.

"내가 없을 때는 개가 지켜줄 겁니다. 개 한 마리가 사람 한 명과 맞먹거든요. 그러니 다시 생각해볼래요?"

결국 개를 키우기로 작정을 한 아내는 큰 결심을 합니다. 태어난 지 석 달이 조금 지난 개는 곧바로 경남 함양에서 하동까지 이사를 오게 됩니다. 강아지는 엄마 품을 떠났는데도 대견합니다. 엄마를 그리워 밤새 잠을 설칠 듯한데, 조용히 참고 있습니다. 검은 눈망울에만 왠지 눈물이 고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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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로 박스로 집을 마련했습니다. 어미 곁에 있던 수건을 깔아주니 엄마 생각이 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조금씩 잊혀져가겠지요. ⓒ 배만호


강아지의 처음 주인은 새 주인에게 강아지를 소개하는 글을 정성스레 적어주셨습니다. 간단한 강아지의 조상 내력에서부터 주의사항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그 마음 덕분에 강아지에게 더욱 애정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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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첫 주인이 보낸 강아지(흑순) 소개서입니다. 현재의 강아지를 기준으로 부모세대의 사진을 붙여 주었습니다. 강아지가 자라서 할머니 개가 될 때까지 저 소개서는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 배만호


서울에서 곱게만 자란 아내는 정말 황당해합니다. 애완동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는 키우기까지 해야 합니다. 강아지를 막 데려와서 만져보라고 했더니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키울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내 용기를 내어 강아지를 쓰다듬어줍니다. 강아지 역시 처음에는 경계를 하더니 이내 살갑게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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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강아지는 오후 한때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아내는 강아지의 이름을 '철복'이라 지어주었습니다. 철처럼 튼튼하게 자라고. 복을 많이 받는 강아지가 되라고 철복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 배만호


그렇게 강아지와 아내는 오후 시간을 마당에서 함께 보냈습니다. 강아지는 낮선 환경에서도 재롱을 부렸고, 그런 모습에 아내는 즐거워합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곧바로 블로그에 강아지 이야기를 올립니다. 전화를 해서 자랑까지 합니다.

낮선 농촌살이를 한다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강아지는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행여 남편이 잠시 없을 경우에는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도 하게 될 겁니다. 또한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 겁니다.
#산꽃농장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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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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