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청림출판
여행사 직원에서 딴지일보 기자로, 그리고 여행사 대표로 다양한 직업을 거친 윤용인씨는 베스트셀러 책도 몇 권이나 냈다. 여행사 대표라고 하면 왠지 딱딱할 것만 같은데 그의 책을 읽어 보면 감칠맛 나는 글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그가 이번에는 남자들의 심리학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다가섰다.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윤용인 저, 청림출판 펴냄)는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 세대의 남자들이 어떤 심리를 갖고 있을까에 주목하며 자신의 생활과 연결 지어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데 아주 재미가 있다.
서른아홉이 되면서 부쩍 "나 요즘 늙었어"라고 한탄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등장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꼭 내 남편의 모습 같아서 측은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요즘 아저씨들은 어쩜 이렇지? 독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남자 심리서를 쓰겠다는 음모를 꾸밀 때, 나는 가능한 한 외계인이나 외국인 남자를 등장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을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나와 내 친구, 내 선배와 후배 그리고 이웃집 남자만 등장시켜도 남자, 그 단순한 동물의 대개는 다 다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런 남자들의 심리에 여자들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다."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그래서인지 등장하는 남자들이 모두 마치 이웃 남자처럼 느껴지고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웬수 같지만 알고 보면 불쌍하고 착한 내 남편'만 같다.
첫 장의 제목은 '남자 심리를 노크하다'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오빠'라는 단어에 약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밥집에서 더치페이를 당연히 예상했던 김 대리는 장난스럽게 던진 신입 여직원의 '오빠' 소리에 아무 생각도 없이 지갑을 연다.
이런 남자들의 마음속에는 뭐 하나 제대로 잘 하는 것도 없고, 늘 남보다 뒤처지는 느낌에 콤플렉스만 눈덩이처럼 커지는 찌질한 자신을 '오빠'라고 추켜세우는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 남자들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고 칭찬해주는 여자에게 약하다.
불쌍하면서도 든든한 존재, 이 시대의 아저씨들'남자의 입장을 이해하시라'고 대놓고 쓰는 글이기에 책에는 남자를 위한 변명도 참 많다. 현관에 잔뜩 쌓인 분리 수거물들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는 남자들, 유모차 끌고 기저귀 가방 짊어 맨 아내가 옆에 있어도 무관심해 보이는 남편. 이들을 위한 변명은 대략 이렇다.
"여자와 다른 별에서 온 남자들은 늘 사소한 생각으로 땅콩만한 뇌를 꽉꽉 채운다. 남자들 생각 많다. 우주 평화와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소한 생각의 분량으로 따진다면 여자보다 더 많다. 트렁크에 짐을 쌓던 그 남자는 어제 본 축구 경기의 아쉬운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고,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자기 아이들을 잊어버린 남자는 주식 그래프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중략)그러므로 생각의 주화입마에 빠져 허깨비만 남은 남자를 향해 생각 좀 하며 살라고 구박들 하지 마시라. 그래봐야 쇠 귀에 경읽기다. 여자는 운전하면서 전화통화에 심지어 화장까지도 가능한 멀티 능력의 소유자지만, 남자는 그런 것이 안 되는 것을 어찌하랴."이 정도의 귀여운 하소연이면 여자로서 그냥 남자들의 그 복잡 단순함을 애교스럽게 너그러이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자의 글은 이렇게 읽는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최근 텔레비전 특집 방송 중에 '아저씨, 아줌마'에 대한 프로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아저씨는 피곤에 절어 있고 자기 관리가 안 되며 지저분하고 스트레스 속에 하루하루를 술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였다. 좀 과장되긴 했지만 이 프로에서 다룬 아저씨는 현대 아저씨들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많다.
이런 아저씨들에게도 꿈과 낭만이란 게 존재할까? 대답은 'YES'다. 아저씨들이 열광하는 '세시봉 열풍'도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꿈과 낭만의 표현이다. 아저씨들은 다중 인격자라고 할 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온갖 스트레스를 견디며 일하는 존재로, 집안에서는 커다란 기둥이자 나무인 가장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진한 관계로, 아저씨들은 그렇게 다양한 얼굴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꿈꾸는 로맨스가 있고 멋진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장일 때 나는 사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고, 퇴근 후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삶의 취향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라고. 물론 집에 와서도 회사 생각에 짓눌리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걸 떨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비극이다. 낮에는 돈 때문에 치사한 말싸움을 하지만, 밤에는 윤동주를 읽을 수 있는 낭만이 있어야 삶이 행복하다.
책을 읽다 보니 이 시대의 아저씨들이 불쌍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존재가 든든해 보인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같을 수는 없지만, 서로를 들여다보며 이해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가 이 글을 쓴 취지도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