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5.16 '수출'한 터키, 6.10항쟁 '열공'중

[현지취재] 한국-터키의 민주화 경험 비교

등록 2011.05.17 10:43수정 2011.05.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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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스탄불문화원과 루미포럼, 터키의 평등구현변호사회와 '법과 삶' 변호사회, 그리고 터키기자작가재단이 공동주최한 '한국-터키의 민주화 경험 비교'를 주제로 한 워크숍이 2회에 걸쳐 터키의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각각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과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언론'을 주제로 열린 워크숍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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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 1934년 터키 의회가 그에게 ‘터키의 아버지’를 뜻하는 ‘아타튀르크’라는 칭호를 헌정할 만큼 케말은 국민의 신망을 받았으나 죽을 때까지 공화인민당 일당독재체제를 고수함으로써 사후에 계속된 군부 쿠데타의 유산을 남겼다. ⓒ 김당

▲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 1934년 터키 의회가 그에게 ‘터키의 아버지’를 뜻하는 ‘아타튀르크’라는 칭호를 헌정할 만큼 케말은 국민의 신망을 받았으나 죽을 때까지 공화인민당 일당독재체제를 고수함으로써 사후에 계속된 군부 쿠데타의 유산을 남겼다. ⓒ 김당

'군사쿠데타' 혹은 '군사혁명'으로 일컫는 5.16 50주년을 맞이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답게 "5.16 혁명의 마스터플랜은 내 작품"이라면서 '이집트-터키혁명이 교과서'였음을 밝혔다.

 

- 군사혁명 때는 인쇄, 요인 체포, 중요기관 접수 같은 절차가 있을 텐데, 어디서 배웠습니까?

"매뉴얼은 없고, 이집트 혁명(1952년) 때 나세르가 나기브와 함께 정부를 장악하고, 나중에는 나기브를 쫓아내잖아요. 내가 그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어요. 또 케말 파샤(1923년 청년 장교들과 함께 터키 혁명을 일으킴)에 관한 것도 뽑아서 읽었죠."(조선일보, 5월 12일자)

 

- 이집트의 나세르, 터키의 케말 파샤, 버마(미얀마) 네윈 등 신생국 군사혁명을 참고했다는데요. 가장 강렬한 느낌을 줬던 롤모델은 누구입니까.

"나세르지. 시간적으로 많이 지나지 않았고(※이집트 혁명은 1952년 발생), 나세르가 함께 혁명을 한 나기브(※1인자)를 제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봤지."(중앙일보, 5월 13일자)

 

김종필은 36살의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았지만 평생 '넘버 2'(2인자)였다. 그래서 그는 케말 파샤보다 나세르를 더 흠모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3자의 시각으로 보면 박정희는 '케말 파샤의 후예들'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한국과 터키의 정치상황은 쌍둥이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형제국' 터키와 한국, 쿠데타 등 나쁜 점도 닮은꼴

 

터키 의회가 1934년 '터키의 아버지'를 뜻하는 '아타튀르크'라는 칭호를 헌정한 데서 알 수 있듯,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은 민족독립전쟁 영웅이자 정치개혁가로서 공화제를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어 정당정치를 확립한 터키의 국부(國父)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공화인민당 일당독재체제를 고수했다.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뤄진 것은 195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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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터키의 민주화 경험 9일 터키 앙카라 경제기술대학(TOBB)에서 열린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는 사회과학 전공 대학생들과 법조인들이 200명 가까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김당

▲ 한국-터키의 민주화 경험 9일 터키 앙카라 경제기술대학(TOBB)에서 열린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는 사회과학 전공 대학생들과 법조인들이 200명 가까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김당

터키의 민주당은 경제 분야 정부통제의 완화, 농업 발전정책 등을 통해서 집권초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정권의 정치적 탄압과 종교적 성향이 강해진 틈을 타 군부가 1960년 5월 27일 군사 쿠데타를 감행함으로써 헌정이 중단되었다. 한국에서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4.19 혁명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의 일이다.

 

4.19의 영향을 받은 터키 청년학생들은 그 무렵(4월 28일)에 이스탄불에서 한국 학생들의 희생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독재자 멘텔레스를 축출하기 위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그런데 한 달도 안되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한국보다 1년 앞서 발생한 터키의 5.27 군사쿠데타가 한국의 5.16 군사쿠데타에 영향을 줬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5.27과 5.16 쿠데타의 공통점은 군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당의 정치활동을 정지시켜 신헌법을 제정하고, 선거를 통해서 새 국회를 구성한 것이다. 다른 점은 한국에서와 달리 터키에선 군부가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한 점이다. 권력을 잡은 군부가 민간에 평화로운 정권이양을 한 것은 다른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나, 향후 터키 군부의 잦은 정치개입의 전례가 된 측면이 크다.

 

'쌍둥이 정치상황'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71년 터키에서 군사쿠데타가 발생했고, 1972년 한국에선 '10월 유신'이라는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어 1980년에도 터키와 한국(5.17) 양쪽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다른 점은, 그 이후 한국에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민주헌정질서를 회복하고 1997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민주정부를 수립한 반면에, 터키에선 1997년에도 쿠데타가 발생한 점이다.

 

터키 변호사회장 "한국의 경험은 터키에 좋은 교훈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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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에 쏠린 눈 지난 9일 터키 앙카라 경제기술대학(TOBB)에서 열린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는 사회과학 전공 대학생들과 법조인들이 200명 가까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김당

▲ 한국 민주화에 쏠린 눈 지난 9일 터키 앙카라 경제기술대학(TOBB)에서 열린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는 사회과학 전공 대학생들과 법조인들이 200명 가까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김당

서로 마주보고 깜짝 놀랄 만큼 닮았으면서도 다른, 바로 이 지점이 이스탄불(7일)과 앙카라(9일)에서 '한국-터키의 민주화 경험 비교'라는 워크숍을 하게 된 배경이다. 지난 9일 앙카라 경제기술대학(TOBB)에서 열린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는 사회과학 전공 대학생들과 법조인들이 200명 가까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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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측인 터키 ‘법과 삶’ 변호사회의 게넬 바쉬칸(Genel Ba?kan) 회장(위)은 “터키 민주화 과정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쿠데타 주도세력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경험은 터키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인사말을 했다. ⓒ 김당

주최측인 터키 ‘법과 삶’ 변호사회의 게넬 바쉬칸(Genel Ba?kan) 회장(위)은 “터키 민주화 과정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쿠데타 주도세력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경험은 터키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인사말을 했다. ⓒ 김당

주최측인 터키 앙카라의 '법과 삶' 변호사회의 게넬 바쉬칸(Genel Başkan) 회장은 "한국에서 쿠데타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경험한 법조인과 언론인 그리고 학자들이 와서 기쁘다"면서 "터키 민주화 과정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쿠데타 주도세력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경험은 터키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인사말을 했다.

 

먼저 '한국 민주화 과정의 몇 가지 특징'을 발제한 김태일 교수(영남대 정외과)는 "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으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은 미흡하다"고 전제하고, "연합정치를 통해 권위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민주 세력의 힘을 키우고, 문민적 통제를 벗어난 검찰과 언론 그리고 재벌을 통제하거나 영향력을 배제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이다"고 밝혔다.

 

'한국의 민주화와 헌법'을 발제한 오동석 교수(아주대 로스쿨)는 ▲대통령에 대한 통제 ▲헌법재판소 설치 ▲지방자치 실시 ▲불법적 과거의 청산 ▲국가인권위 설치 등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헌법규범 및 헌법제도로 반영된 결과물로 꼽았다.

 

그는 이어 "헌법규범으로써 민주화를 담아낸다는 것은 단지 헌법전 내용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위법령 및 제도 속에서 헌법적 원칙을 구현해내는 것"이라면서 "한국 민주화 및 헌법화의 과제는 국민의 주권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5.18특별법 제정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발제한 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는 "터키와 한국은 피를 나눈 형제국이어서 그런지 좋은 점뿐만 아니라 나쁜 점도 공유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쿠데타의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면서 5.18특별법의 제정 과정과 의미 그리고 터키 민주화에의 시사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헌법은 원래부터 군인의 것도 정치가의 것도 아닌 시민의 것이었다"면서 "헌법을 만들고 고치는 것은 전적으로 시민의 몫이고, 여러분이 스스로 찾고 확인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 민주헌법을 갈구하는 대학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터키측 "6.10 항쟁과 민주헌법 경험 등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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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배울 게 많다" 레벤트 코르퀴트(Levent Korkut) 교수(위)는 “터키와 한국은 같은 출발선에서 민주화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국이 크게 앞섰다”면서 “우리는 그동안 유럽만 보고 있었는데, 오랜 군사독재와 6.10 항쟁, 그리고 민주헌법 등 경험이 유사한 한국에서 배울 게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당

▲ "한국서 배울 게 많다" 레벤트 코르퀴트(Levent Korkut) 교수(위)는 “터키와 한국은 같은 출발선에서 민주화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국이 크게 앞섰다”면서 “우리는 그동안 유럽만 보고 있었는데, 오랜 군사독재와 6.10 항쟁, 그리고 민주헌법 등 경험이 유사한 한국에서 배울 게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당

터키측 발제자인  레벤트 코르퀴트(Levent Korkût) 교수(Haccttepe대학, 헌법학)는 "터키와 한국은 같은 출발선에서 민주화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국이 크게 앞섰다"고 전제하고, "터키에도 보수 정치세력과 진보 정치세력이 있지만 한국인들과 달리 터키인들은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쉽게 적응했다"면서 "터키의 권위주의적 권력자들은 여전히 사회를 자신이 지켜줘야 할 '아이'로 취급하면서 가부장적 권위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터키에서 1980년 군사쿠데타 이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이 사회주의 그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처벌받았고 언론인들도 고문받거나 죽었지만, 현재도 '쿠데타 음모'가 발각되어 재판을 받는 군인들이 있다"면서 "시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헌법으로의 개정과 권력 분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그동안 유럽만 보고 있었는데, 오랜 군사독재와 6.10 항쟁, 그리고 민주헌법 등 경험이 유사한 한국에서 배울 게 많은 것 같다"면서 "터키도 한국처럼 과거를 청산하고 2~5년 내에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터키 대학생들은 한국에서의 쿠데타 가능성 여부 등 쿠데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의 경우 총선(6월 12일)을 앞두고 선거 열기가 고조돼 있지만, 다른 이슬람국가들과는 달리 '세속주의 정체성'이 강해 여전히 군부와 헌법재판소의 정치개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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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뜨거운 선거 열기 터키 앙카라의 한 건물에 걸린 정당의 상징깃발들. 터키는 지금 총선(6월 12일)을 앞두고 선거 열기가 고조돼 있다. ⓒ 김당

▲ 터키의 뜨거운 선거 열기 터키 앙카라의 한 건물에 걸린 정당의 상징깃발들. 터키는 지금 총선(6월 12일)을 앞두고 선거 열기가 고조돼 있다. ⓒ 김당

터키는 지난 1946년 복수정당 제도를 처음 도입해 1950년 5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처음 실현했으나 1960년 5.27 쿠데타 이후 10년 주기로 계속된 쿠데타가 1997년에도 발생했다. 또한 지난 1996년 선거에서 이슬람계 정당인 복지당(RP)이 집권했으나 '세속주의를 일탈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폐쇄되었으며, 복지당 의원들로 창당된 미덕당(FP) 역시 '반세속주의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헌재의 판결에 따라 2001년에 폐쇄된 바 있다.

 

이후 2002년 11월 조기총선 실시로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단독정부를 수립했고, 2007년 총선에서도 승리(총 550석 중 337석)함으로써 총재인 레젭 타입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총리가 재집권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2010년 현재 정당별 의석수는 ▲정의개발당 337석 ▲공화인민당(CHP) 97석 ▲민족주의행동당(MHP) 69석 ▲평화민주당(BDP) 20석 ▲민주좌익당(DSP) 8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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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가능성 없다" 최재천 변호사는 “헌정을 중단한 세력을 응징한 시민사회의 힘이 살아 있는 한 한국에서 쿠데타 가능성은 없다”고 답변해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터키는 모든 공공건물에 케말 파샤의 초상화(위 오른쪽)를 걸게 하고 있다. ⓒ 김당

▲ "쿠데타 가능성 없다" 최재천 변호사는 “헌정을 중단한 세력을 응징한 시민사회의 힘이 살아 있는 한 한국에서 쿠데타 가능성은 없다”고 답변해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터키는 모든 공공건물에 케말 파샤의 초상화(위 오른쪽)를 걸게 하고 있다. ⓒ 김당

이에 대해 최재천 변호사는 19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민주 세력에 내란죄를 뒤집어씌운 쿠데타 세력과 군 출신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그로부터 14년 만인 1994년 5.18특별법 제정 이후 거꾸로 내란죄를 적용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헌정을 중단한 세력을 응징한 시민사회의 힘이 살아 있는 한 한국에서 쿠데타 가능성은 없다"고 답변해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50년 전인 지난 1961년에 한국에 군사쿠데타(5.16)를 '수출'했던 터키가 지금은 한국의 6.10항쟁과 과거청산 그리고 민주헌법에 대해 '열공'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터키 #앙카라 #5.16 #6.10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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