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이번에도 큰 거 먹으려고 하잖아!"

첫째와 막내 사이에 낀 둘째... 그 '소박한 허기'를 왜 몰랐을까

등록 2011.05.20 15:12수정 2011.05.2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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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떡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삼형제.
감자떡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삼형제.강정민
감자떡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삼형제. ⓒ 강정민

사과를 깎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의 손이 째빨리 사과 조각 하나에서 만난다. 서로 사과를 잡으려 하는데, 서로의 방해 때문에 어느 녀석도 잡지 못한다. 흡사 놓친 농구공을 잡으려는 농구선수들 같다.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첫째가 사과를 차지한다. 사과 조각을 입에 넣은 첫째가 둘째의 팔을 때린다. 둘째는 눈을 흘기며 잽싸게 반격. 첫째는 더 강력한 응징.

 

"그만해. 도대체 왜 이래?"

"얘가 아까 큰 거 먹고 이번에도 또 큰 거 먹으려고 하잖아."

"에~에~ 아니거든. 형이 먹은 게 더 컸거든."

"야! 제발 먹을 거 갖고 싸우지 좀 마."

 

둘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눈을 흘긴다. 중학생인 첫째는 초등학생인 둘째랑 아직도 먹을 거 가지고 싸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섯 살인 막내가 이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않는다는 것.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했다. 사과를 자르면서 딴생각을 좀 했다. 그랬더니 사과 조각의 크기가 많이 달랐던 거다. 그래서 서로 큰 거 먹겠다고 싸움이 난 거다. 나눌 때 잘 잘랐으면 이렇게 다툼이 되진 않았을텐데.

 

우리 집에서는 내가 하는 일 중, 중요한 일 하나는 바로 아이들 먹을거리를 똑같이 나눠주는 일이다. 공평하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것이 차별 없는 자식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냐고? 학생 때 여자 친구들과 '딸이라서 서러웠던 기억'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의 시작은 항상 먹을거리와 관련된 이야기다.

 

"할머니가 과일을 주면 무조건 반은 오빠 꺼야. 그리고 나머지 반을 언니랑 나랑 여동생이 나눠먹었야 해. 그런데 웃긴 건 나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거야."

"엄마가 우유를 사오면 남동생만 먹어야 해. 그런데 언니가 남동생이 먹던 우유를 엄마 몰래 먹어. 먹은 게 티가 나면 엄마한테 죽으니까 우유병에 물을 넣어 놔. 우리 엄마는 왜 그랬는지 정말. 여전히 지금도 아들만 최고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엄마가 되면 절대 저런 상처를 아이들에게 주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과자를 사면 일일이 하나씩 나눠줘서 싸움이 안 나게 했다. 바나나를 사면 식구 수대로 딱 5의 배수로 붙어 있는 송이만 샀다. 빵을 사더라도 한 봉투에 다섯 개가 들어 있는 빵을 샀다. 제일 싫어하는 빵은 식빵이다. 식빵은 개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크기도 제각각이라 아이들에게 나눠줄 때 고려할 게 많았다.

 

 감자떡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삼형제.
감자떡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삼형제.강정민
감자떡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삼형제. ⓒ 강정민

 

단 하나뿐인 엄마라는 걸 잊지 않을게

 

얼마 전엔 둘째 녀석이 친구 경모네 집에 놀러갔다.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실실 웃었다.

 

"뭐 좋은 일 있었어?"

"아까 경모네 엄마가 치즈샌드위치를 여섯 개 해 줬는데, 경모가 햄이 안 들어 있다고 한 개만 먹었다."

"그래서 니가 다섯 개나 먹었어?"

"응."

 

막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웃다가 좀 당황스러졌다. 그리고 미안했다. 세 개씩 나눠 먹어야 할 치즈샌드위치 두 개 더 먹은 게 그렇게 행복한가? 더 먹은 샌드위치 두 개가 가져다주는 행복이 저리 클 줄은 몰랐다.

 

세 아이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쩌면 아이는 세 아이를 차별 없이 대하는 내 모습에서 허기를 느꼈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삼형제 중 중간에 낀 아이라 더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 누가, 둘째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빨리 답하지 못했다. 첫째가 열다섯이고 둘째는 네 살이 적으니까 열한 살.

 

"열한 살, 4학년요."

 

아이들 나이를 묻는 사람들 대부분은 첫째와 막내 나이만 묻는다. 그래서 그런지 둘째 나이를 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뿐이 아니다. 나를 부를 때 첫째와 막내는 "엄마~" 하고 길게 부르는데, 유독 둘째만 "엄마! 엄마!" 하고 꼭 두 번씩 연거푸 숨 넘어갈 것처럼 부른다. 그만큼 내가 반응을 늦게 했다는 반증 아닐까. 첫째와 막내 사이에서 내 눈을 끌기 위해 더 노력했을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둘째가 "엄마! 엄마!" 하고 부를 때, 둘째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종종 첫째도 몰래, 막내도 몰래 둘째에게만 맛있는 거 사줘서, 나눠먹지 않고 몽땅 혼자 먹는 기회를 주어야겠다. 그럼 둘째는 얼마나 행복해할까?

 

샌드위치 두 개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의 소박한 허기. 엄마인 나는 뭐 하느라 그 소박한 허기조차도 채워주지 못했던 것일까? 나에게는 아이가 셋이나 있다. 하지만 우리 둘째에게 엄마라고는 세상천지에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형제 #먹을거리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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