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공원정만진
▲ 이서공원
ⓒ 정만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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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수성구 답사에서 절대 빠뜨리면 안 될 소공원 한 군데를 강력히 추천하고자 한다. 사실 대구 시민들 중 이곳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의심스럽다. 이곳의 이름은 '이서(李漵)공원'. '이서'는 사람의 성명이니, 공원의 이름만 듣고도 이 곳이 이서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이서는 정조 때 대구판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해마다 홍수 때문에 큰 피해를 입는 대구 사람들을 보다 못해 사재를 털어 시가지 중심부를 흐르는 물길을 신천쪽으로 돌렸다. 수로를 변경하고 새로 제방을 쌓았던 것이다. 그 후 대구 중심부는 홍수의 범람 탓에 연중행사로 피해를 입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된다.
당연히 시민들은 그를 추앙하는 비를 세웠고, 강에도 신천(新川)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2000년 10월, 상동교 아래에 소규모 공원을 만들면서 비도 옮겨오고 비각도 새로 짓는 등 숭모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 가보면 이서공원이라는 표식은 찾을 길 없고, 신천과 아무 관계도 없는 한 관변단체가 자기들의 이름과 구호를 커다랗게 새긴 돌을 입구에 덜렁 갖다놓아 공원 조성의 의미가 반감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서공원에는 꼭 가보아야 한다.
이서공원 맞은편의 상동 주택가 안에도 꼭 답사할 만한 곳이 숨어 있다. 수성못 간이 야구장 옆에도 있지만, 그것과는 규모로든 내용으로든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의 고인돌 유적이 정화팔레스 아파트 뒤에 부속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곳의 고인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대구 사람들이 신천변을 따라가며 조성된 너른 들판에 모여 살았다는 사실을 잘 증언해준다. 또한 집터와 고인돌을 복원하여 교육용으로 전시해 두었으므로 자녀와 동행한 답사 여정이라면 꼭 가볼 만하다.
상동 청동기 유적지는 무덤 위에 두꺼운 강판 유리를 얹어 두었다. 낮에 보면 유리 안에는 높은 하늘과 고색창연한 무덤 유적, 그리고 현대인의 고층 아파트가 시퍼렇게 뒤엉킨 채 모여 있다. 그 광경을 보노라면, 시간이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뇌리를 스친다. 물론 그 시각에도 창공의 흰 구름들은 정말 무심한 표정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