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우승하고도 외면당한 '한국 미녀'

[색다른 시선 ④] 트랜스젠더 모델 한민희

등록 2011.06.03 22:58수정 2011.06.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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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한민희 의상_이도이/협조_TINNews
모델 한민희의상_이도이/협조_TINNews마이클 허트

이번에는 한국 패션업계의 성적 소수자라는 주제를 다루어보려 한다. 한국 사회가 또 다른 정체성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소극적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패션업계가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임에도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성적 소수자들조차도 자국에서는 '커밍아웃'했을망정, 한국에서는 직장을 잃거나 자신들의 명성에 해가 될까 하는 두려움에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이끌어낸다. 만약 패션업계에서 안전하게 '커밍아웃'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한국사회 어디에서 안전하게 '커밍아웃'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람들이 성전환자 여배우 하리수와 동성애자 방송인 홍석천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한들 이 두 사람은 한국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예일 뿐이다.

홍석천의 경우를 보자. 대다수의 사람은 그가 자의에 의해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한 파렴치한 기자가 비공개를 전제로 얻은 정보를 알리는 바람에 '아웃팅' 당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물러났고 불필요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리수는 성전환자라는 사실 자체가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경우다. 이는 그녀가 외형상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사실과 대조된다. 하지만 그녀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전혀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생물학적인 여성들보다 더 성공적으로 통달했다. 결국, 그녀는 단순히 성을 전환했을 뿐, 우리가 생각하는 성 정체성에는 전혀 도전하지 않았다.

하리수나 홍석천은 여느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더이상 일반인이 아니다. 마침내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에 신중하게 잘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들은 스타이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다른 동성애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지는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택배 기사, 의사 또는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만약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라면, 또는 패션업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바이어나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 '커밍아웃'은 힘든 선택일 수밖에 없다(필자는 한국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그런 동성애자와 성전환자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호모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태원의 작은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태원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금지구역'으로 인식돼 왔다. 이태원에는 위험한 외국 문화, 위험한 외국인, 위험한 군인과 거주자들이 있어 물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위험한 곳이라는 이유다. 이러한 명성은 대부분 근거가 없지만 타인에 대한 두려움, 부풀려진 소문, 그리고 외국의 영향력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한국인들의 성향 등에 의해 부채질 되었다. 동성애 문화가 지난 20년 동안 종로의 낙원상가 지역에서 현재의 이태원으로 온 것을 보면 성적 소수자들이 맘 놓고 편히 있을 수 있는 안전 지대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피해야 할 곳이라고 여겨지는 장소다.


언론에 안 보이는 2010 국제미녀대회 한국인 우승자

한국에서 동성애를 다루기 시작한 건 외국 문화인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고 믿었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외국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된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인의 동성애 혐오증을 다룰 때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서구식 의복, 패션쇼, 그리고 패션처럼 동성애를 문화적인 타락으로 보는 관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패션쇼를 금지시켰고 패션을 불필요한 사치로 간주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까지도 서양식의 값비싸고 이름있는 패션 브랜드들은 일반인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따라서 물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동성애와 비전통적인 성 정체성은 여전히 비주류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태원이 외국인들과 동성애자, 성전환자들의 중심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패션계의 대부 격인 앙드레김도 과거에 패션쇼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미군 부대였다. 앙드레김이야말로 군부 독재 시절 국가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졌던 억압 속에서 패션과 외래성 그리고 또다른 정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상징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업계에서조차 디자이너의 '커밍아웃'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반대로 한국에서 가장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동성애자인 홍석천이 패션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 또한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그래도 패션업계만큼 주류 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은 없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이 문화 보수주의에 의해 강하게 저지당하면서도 패션 자체의 저항력에 의해 영역을 넓혀나가는 건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또 다른 공인이 '커밍아웃' 한다면 그는 외국 문화를 많이 접하고 관습에 저항하기 쉬운 패션업계나 문화계 인물일 확률이 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전반적인 한국 사회는 아직 '커밍 아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민희를 아는가? 그녀는 한국대표로 성전환자 미인대회인 2010년 미스 인터내셔널 퀸에 나가 일본과 미국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보통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한국인이 1등 하면 무슨 분야든 상관없이 한국에서는 주요뉴스로 다뤄지기 마련이다. 절반만 한국인인 하인즈 워드만 보아도 그렇다. 그가 슈퍼볼 MVP가 되자 한국의 인종차별까지 잠잠하게 만들면서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한국인의 자부심을 높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의 인종과 사회 문제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는 등 생산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성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보는 시각은 뒤섞여 있다. 국가 단위의 포상은 없었고 그저 형식적인 기삿거리로 다뤄졌을 뿐이다.

성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한 도전에 대한 것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바라보기엔 여전히 너무나 불편한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를 생각해보자. 그녀는 미국 내 주요 방송 시트콤에서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역할을 맡았음에도 한국언론의 사랑을 받기엔 너무 뜨거운 감자인 듯하다. 미국인들에게 그녀는 박세리와 샌드라 오, 심지어는 김연아를 다 합친 것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다. 아마도 한국인이 보기에는 인종, 섹스, 마약 그리고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선정적인 유머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그녀의 유명세를 방해하거나 문화적 의미를 줄이지는 못한다.

만약 한국의 '진짜' 여성이 미스 유니버스에 당선되었다면 분명 주요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그게 스타크래프트 경기든 핫도그 먹기 대회이든 간에 한국인의 우승은 국가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 만약 그 과정에서 일본이나 미국을 제쳤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하지만 한민희 같은 모델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언론의 립서비스는 하인즈 워드가 흑인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서 한국에서 겪었던 일들을 다루는데 다 써버렸나 보다. 국제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섰던 한민희의 이야기는 사실상 묻히듯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한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흔히들 한국은 10년을 주기로 완전히 다른 사회로 탈바꿈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과 외국 거주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 분위기가 '커밍아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사회적인 자살로 여겨지던 1950년대의 미국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커밍아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한국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이 5년 만에 당연시되는 사회이다. 누가 알겠는가? 몇년 후에는 이 기사가 먼 과거에 일어났던 엉뚱한 사실처럼 보이게 될지.

(*번역 - 이은별)

덧붙이는 글 | 마이클 허트 기자는 1994년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처음 와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한국에 다시 왔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에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셜 네트워크 매거진'Yahae!를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마이클 허트 기자는 1994년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처음 와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한국에 다시 왔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에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셜 네트워크 매거진'Yahae!를 준비하고 있다.
#한민희 #성적소수자 #트랜스젠더 #미스인터내셔널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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