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제부터가 시작"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3] 원폭피해자 모리구치 마사히코 씨 인터뷰

등록 2011.06.11 10:13수정 2011.06.1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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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있다. 나가사키도 긴 장마가 이미 시작되었다. 대기 중 물질이 섞여 내리는 이 비에 방사성 물질이 농축되어 있을지, 중국발 황사가 섞여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 전역에 내리는 비 중에 어디선가는 분명히 방사능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에 이어 역사상 두번째로 (미군에 의한)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다. <초우라늄원소>를 쓴 G. T. 시보그에 의하면,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위험한 독성 물질 중 하나"라는 플루토늄 원자탄이었다. 시보그는 '반핵 반원전'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그 반대였지만 말이다.

지난주 필자는 일본 나가사키에 왔다.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 때문인지 주점이 밀집한 번화가에도 오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적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속에서는 가끔씩 쓰나미로 인한 피해 사연을 소개하거나, 오늘은 어디서 방사성 물질이 미량 검출되었으나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극히 미량이라는 식의 짧막한 보도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그저 그런 뉴스들이 흘러 나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나가사키는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로부터 1140.3km 떨어져 있다. 원자폭탄과 방사능의 피해 경험을 가진 당사자와 그 가족들, 지역민들은 어떤 눈으로 현재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까. 세번째 인터뷰는 1939년 1월생으로 전쟁 체험 세대이자 원자폭탄의 피해자였던 모리구치 마사히코(73)씨와의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고등학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현재는 '나가사키 증언의 모임'에서 활동하며 매년 원폭피해 문제를 비롯하여 핵문제와 평화와 관련된 주제의 다양한 글을 모아 발행하는 책의 편집자이기도 하며, 전국과 해외 각지에서 찾아오는 수학여행단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원폭피해 유적지를 안내하고 있다.

그는 나가사키의 양심적인 평화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원폭피해자운동에도 공헌이 크며, 나가사키에 강제연행된 조선인과 외국인 노동자와 포로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젊은 세대에게 전쟁과 가해의 책임을 피해자인 외국인의 입장에서 전하고 있다.

바쁜 일정과 건강문제 때문에 인터뷰 일정이 미루어지다가, 6월 10일 전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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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폭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모리구치 마사히코 씨. ⓒ 전은옥


- 최근 건강 상태는 어떠십니까?
"예전부터 간장이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최근에 병원에서 종합적으로 검진을 해보니 신장도 위도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나이도 있으니 어쩔 수 없겠죠. 당분간은 조심하면서 생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나가사키 시민들 사이에서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원전 사고가 워낙 엄청난 일이라 당분간은 수습되지 못할 거에요. 적어도 진정이 되려면 1년은 더 걸리겠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어 버려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간간이 지역시민단체가 강연회를 주최하기도 했는데, 참석자 수를 보면 대단히 관심은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시민의 움직임이랄까, 시청이나 관청에 뭔가 요구하거나 항의하는 그런 것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피폭자 5단체가 원전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폐기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한 차례 낸 것이 전부랄까요?

나가사키 히로시마 시민을 대상으로 해, 원폭 피폭자와 피폭지 시민의식 여론조사는 아직 안 돼 있어서 신문사나 큰 단체가 나서서 그런 걸 해주면 좋다고 생각해요."

- 나가사키 시민들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소극적인 반응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속으로는 내심 불안하고 원전이나 방사능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신경도 쓰이죠. 그러나 나 자신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지 않으니까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이 걸린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고 이 지역 사람들은 피난 갈 필요도 없으니까요. 규슈 전 지역이 아마 그럴 거에요."

- 하지만 나가사키에도 인근 사가현에 겐카이 원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우라늄과 혼합한 MOX연료를 만들어 원자로에서 태우는, 보다 위험한 곳이 아닙니까?
"겐카이 원전에서 가까이 있는 주민들은 아마 불안할 거에요. 하지만 30-50km 떨어지기 시작하면 불안감도 그만큼 줄어들고, 특히 이쪽 지방 사람들은 여기는 지진 지대가 아니라서 괜찮다고 방심하는 경향도 있어요. 원전과 방사능의 위험성, 체르노빌 사고나 원전 사고 후 일어난 일들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구요."

- 언론을 통해,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전 사회의 '자숙 모드' 분위기가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나가사키도 그러했나요?
"그건 원전과는 관계 없어요. 쓰나미와 지진 사고로 지역과 주민들이 큰 피해를 당했으니 자숙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숫자적으로도 쓰나미와 지진피해는 눈에 바로 보이고, 실제로 죽거나 다치고 실종된 사람들이 통계에 잡힐 만큼 많으니까요.

굳이 비교하자면 쓰나미 피해 복구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수습되지만, 방사능 문제는 지금부터 계속 진행되어 갈 거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나 아직도 정부와 기업들이 시민들을 속이려고 하고 있어요.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3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피해자로서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앞으로 발생하게 될 방사능에 의한 피해가 원폭피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자폭탄의 폭발시 생긴 열선이나 폭풍 같은 현상은 없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방사능의 피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자폭탄 피해조차도 사실 당시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 어디까지인가 정확히 규명되어 있지 못합니다.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투하된 후에 검은 비가 니시아먀 등의 지역에서 내렸습니다. 후쿠시마의 경우 방사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도 매스컴도 발표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간간이 오늘은 몇 km 떨어진 어느 지역에서 방사성 물질이 이만큼 검출되었다는 식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20-30km 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피난명령을 내렸는데요. 처음에는 동심원을 그리고 반경 20km 이내는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모든 주민에게 피난을 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방사능은 동심원형으로 움직이고 오염이 확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경우에는 원자폭탄 피해 지역에 대해서 폭심지로부터 동심원을 그려 가까운 지역부터 피해를 상정하는데요,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과 그 피해는 그런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3개월이 지났지만 방사성 물질이 희석되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배출되고 있지요. 그리고 20-30km가 아니라 얼마만큼 어디까지 확산되어 있는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 사고가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 같습니다. 방사능의 피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느끼는 것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능 오염과 누출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은 사람이 죽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1년 혹은 2-4년에 걸쳐 인체에 축적되는 방사능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영향이 나타날 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들은 즉시, 혹은 빠른 시일내에 쓰러지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피해들이 있었지요.

지금 후쿠시마에서는 눈에 보이는 그 즉시의 피해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불안하지 않을까요? 나가사키 원폭 이상으로 이번 사고와 방사능에 대해서 그 지역 가까이 계신 분들은 대단히 불안할 거라 생각됩니다.

원폭피해자들도 당장은 아무 이상이 없었어도, 십 년에서 육십 년에 걸쳐 장시간이 흐른 뒤에 암에 걸렸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해서도 앞으로 수십 년간에 걸쳐 암 발생율이 늘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 원폭피해자를 오랫동안 진료했고 체르노빌에 대해서도 공부했다는 어느 의사가 피재지를 방문해서 방사능의 영향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는데 저는 그렇게 간단히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폭 피폭도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능 피해 등도 그 영향과 피해실태 및 규모가 정확히 규명된 것이 아닙니다.

방사능의 전모를 알지도 못하면서 걱정을 하지 말라니요. 체르노빌도 스리마일 사고도 당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은폐되고 있는 사실들이 많습니다. 숨기고 있는 정보 속에 진실이 있는데, 지금 사실을 숨기고 은폐하는 흐름은 후쿠시마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문제는 일본사회에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그리고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곳에서 정보를 은폐하는 일 없이 전부 공개해야 합니다."

- 무엇이 가장 걱정되십니까?
"원전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뿐 아니라, 전국의 원전 그리고 전 세계의 원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방사능 위험의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방사능 피폭이 심각합니다. 따라서 이번 사고,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와 방사능의 문제는 후쿠시마 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후쿠시마 원전 인근지역 피난민보다 방사능 피폭을 당하면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것들도 너무 알려져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 시민이 그 사실을 알고 문제화해야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짧은 시간에 간단히 해결될 수 없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조사하고, 대응하고, 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방사능 확산 지역에 대해서는 방사능 검출량이 적든 크든 피해자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하며 대응해야 합니다."

- 선생님의 인생에 있어 핵과 방사능은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전쟁을 체험한 끝 세대이며 소학교 1학년 때 원폭의 경험도 겪었지요. 인간의 생명과 지구, 인류를 생각할 때 과거 원폭 체험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핵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정확히 가지고 살아야 하며 그것을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핵 체험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한 부분입니다. 저는 여덟 형제 중 형제, 누님들의 생명을 원폭으로 인하여 잃었고, 지금 생존해 있는 원폭피해자들도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폭탄과 방사능 피해는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피폭2-3세 문제도 있습니다. 저도 피폭2세인 조카를 둘이나 잃었습니다.

그게 방사능의 영향인지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정확하게 인과관계가 증거를 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그 아이들이 아픈 아이로 태어난 것은 분명히 피폭2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폭자들은 자기 가족과 친척 안에서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후세대 건강 문제를 껴안고 있습니다.

'나가사키 증언 모임' 운동과 그동안 해온 피폭자로서의 운동들이 당사자의 고령화, 저 자신의 건강 문제로 힘에 부치는 면은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도 이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리구치씨는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미군의 플루토늄형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날, 폭심지로부터 30km 떨어진 사가현 시로이시무라로 피난을 가 있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4일 전의 일이었고, 패전 후인 19일 기차를 타고 다시 나가사키시로 돌아왔다. 원폭투하로부터 열흘이 지난 이날, 나가사키역에서 내려 이나사바시를 지나고 미쓰비시 조선소가 인근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잔류 방사능이 남아 있어 위험했던 시기에 피폭지에 들어온 '입시(入市)피폭자'이지만, 시청에서는 "원폭투하후 14일 이내, 2km 이내에 진입'이라는 '기준치'를 제시하며 원폭피폭자 건강수첩을 발급해 주지 않았다. 모리구치 씨와 형제들이 잔류방사능으로 오염된 나가사키를 걸어서 지나 귀가했으나 그 지역은 2.1km 였다는 이유였다. 즉, 100m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애당초 2km 이내만 방사능 피해를 입었다는 근거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게다가 행정 측에서는 원폭피해자들에게 피폭자임을 스스로 증명하게 하였는데, 그때 증인 2명을 요구했고 모리구치 형제의 피폭을 증언해줄 수 있는 이 중 1명이 사망하여 증인이 1명밖에 나서지 못했다.

모리구치씨는 원폭피해자 중에 정부가 행정기준과 법령으로 인정하여 발급하는 피폭자 수첩을 가지고 있지 못해 피폭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생존과 건강한 삶을 위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1945년 12월 말까지, 당시 피폭을 당한 사람은 시청에 신고를 하라고 했는데 그때 크게 몸이 아프거나 하지 않아서 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그때 해두었더라면 아마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저희는 피폭자 원호법에 의한  지원수당을 그때는 굳이 받으려고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누님이 3중의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을 때는 피폭자수첩을 취득했더라면 의료비 전액을 지원받고 사전에 미리 제대로 치료할 수 있었을 거라는 마음에 분하고 서글펐습니다."

"방사능 때문에 죽어도 증명할 수가 없다", "포클레인에 깔려 죽으면 증명할 수 있지만, 플루토늄 때문에 백혈병에 걸리면 증명할 수가 없다."(히로세 다카시 저, <원전을 멈춰라-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고 했다던 어느 오사카 가와가사키 노동자의 말이 묘하게 겹쳐진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피해 #원폭피해 #모리구치 마사히코 #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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