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님, '군대 부적응'이 문제가 아니에요

[주장] 뿌리 깊은 군대의 폭력문화, 친일부역세력 청산으로 쇄신 가능

등록 2011.07.13 10:00수정 2011.07.13 10:55
0
원고료로 응원
군대 가기 전 "군대 가면 사람 된다", "군대 가면 효자 된다"는 참 많이 들었다. 군대 가보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논산훈련소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물론 훈련소에서 시켰기 때문이다.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는 구구절절 "소자"라는 말과 함께 "은혜에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다. 시작은 타의였지만 편지는 진심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한 번도 편지를 올린 적이 없는데 제대할 때까지 매달 한 번씩은 편지를 썼으니 효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한 지 21년이 지난 지금,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제대 이후로는 편지를 올린 적이 별로 없다. 효도 편지는 군대에서 끝난 것이다. 그럼 사람이 됐는가. 군생활하면서 전우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것이라는 생각과 유격훈련과 행군할 때 전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가 꿈틀거리기도 했지만, 선임병들 구타 때문에 미움과 증오로 말미암아 속은 곪을 대로 곪았다.

경비부대였던 우리 부대는 현역과 단기사병(방위)가 조를 이루어 초소에 투입되었다. 그러므로 현역 선임병과 현역 후임병은 초소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초소는 중대본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설령 지휘관과 하사관들이 구타 방지를 위해 초소를 점검해도 20개 넘는 곳을 만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마디로 초소는 선임병이 후임병을 구타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였다. 

나 역시 초소 투입 첫날 철모와 M18 개머리판으로 수없이 맞았고, 1987년 12월에는 소나무에 매달려 수없이 맞았다. 누구 하나 제재할 사람이 없었다. 선임병 중에는 구타 때문에 허리를 거의 쓰지 못할 정도가 된 이도 있었다. 그리고 애인문제와 선임병 구타문제가 뒤엉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우가 2명이었다.

어제까지 함께 잤던 전우를 벽제화장터에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내면서 느낀 감정은, 군대란 효자나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사람 잡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구타가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전우를 떠나보낸 후에도 구타는 끊이지 않았다.

내가 겪은 구타는 구타도 아니었다


1987년 5월부터 1989년 9월까지 군복무를 하면서 구타 금지 정신교육을 받으면 한 해 동안 군에서 숨지는 병력이 약 500여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부대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1개 대대 병력이 약 400명 정도다. 그러므로 1년 동안 1개 대대 병력이 자살과 사고 따위 다양한 이유로 생명을 잃었다.

참고로 국방부는 11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병영문화 혁신 추진 경과 및 성과'라는 제목으로낸 보도자료에서 "1987년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지침'이 시달돼 사망자가 1985년 721명에서 1990년에는 430명으로 40%가량 줄었다"고 밝힌 것을 보니 내 기억과 별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초에는 970명이 넘었단다. 물론 모든 죽음이 구타로 인한 자살은 아니지만 1980년대 우리 병영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 일어나는 군대였음을 알 수 있다.


동네 또래 동무가 6명이었는데 1987년 1월부터 해병대(백령도 근무), 전투경찰(서울), 육군(최전방)에서 군복무를 시작했다. 군복무 동안은 전혀 만나지 못하다가 제대 후 만나 군생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내가 겪은 구타는 구타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군대는 남자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폭력을 배워주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옛날처럼 직접 가하는 폭력은 아니지만 이번 강화도 해병대 2사단 총기사건의 '기수열외'와 포항 해병대 1사단 정아무개 일병 자살사건의 '작업열외'처럼, 전우로 인정해주지 않는 '왕따' 문화가 우리 병영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구타는 당했지만 기수열외와 작업열외는 당하지 않았다. 작업열외는 초소보수작업 등 사병을 동원하는 군대 내에서의 여러 작업에 해당 사병을 빼주는 관습을 말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작업열외는 말년 병장이 누리는 특혜 중 특혜다. 군대에서 선임병은 땀 뻘뻘 흘리면서 작업을 하고, 후임병은 앉아서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다.

군대폭력의 뿌리는 생각보다 길고 깊었다

이런 병영문화가 우리 젊은이들이 전우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낳았다. 왜 우리 군은 아직까지 폭력문화가 망령처럼 자리 잡고 있을까. 이 망령이 정말 뿌리깊다는 것이다. 그럼 그 뿌리가 어디일까? 한 해 천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숨진 1980년대일까. 아니다 그보다 휠씬 길고 깊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근거한 '친일세력'에게서 그 뿌리를 찾았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매우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다. 광복 후 국군을 완전 장악하여 이끌어온 친일세력들은 '군대란 본래 그런 거야'라고만 해왔다. 국민들은 '이건 아닌데…' 의구심을 품어 왔지만 군대를 독점한 그들의 배타적 삼엄함에 주눅이 들어 입 다물어 왔다. 그들은 군대가 병들어 제정신 없는 상태를 오히려 즐겼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대를 이용해먹는 데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 9일자 <한겨레> '중병 걸린 한국군, 개혁 시급하다'

군 폭력이 뿌리깊었던 일본제국주의 군대에서 군생활을 했던 친일부역 군인들이 조국해방 후 대한민국 군대를 장악함으로 폭력성이 그대로 답습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표명렬 대표 진단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09년 11월 국회대정부 질의응답에서 "항일독립군부대인가요"라고 되물었던 '731부대'로 생물·화학 무기의 개발 및 치명적인 생체 실험을 행한 악명 높은 전쟁 범죄를 저질러 일본제국주의 군대는 '인간성 파괴' 군대임을 인식시켜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우리 누나와 누이, 이모와 고모를 전장에 끌고가 회복할 수 없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준 '종군위안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직도 일본은 이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731부대와 종군위안부는 인간에게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빼앗았으면서 국가(일왕)와 상관에게 충성만을 강요했다. 그들 중에 바로 친일부역 군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친일부역 군인들은 단죄받기는커녕 오히려 해방된 조국 군대를 다시 장악함으로써 양심과 자유라는 숭고한 인간존엄성보다는 가치없이 폭력을 통해 통제하고 지배하는 '군사문화'를 만들었다.

이 문화가 군대 전통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쓴 뿌리'가 되어 2011년 지금, 우리 젊은이들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친일부역세력 청산으로 새 군문화 만들어야

인간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제군문화와 그 후예들인 친일부역세력 군문화의 쓴 뿌리를 청산할 때 우리 군 문화는 사람 잡는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군 부적응"으로 진단했다.

"(해병대 총기사건은)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 12일 국무회의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해 포털 <다음> 누리꾼 'Seok***'이 "나 참! 맞는 것도 적응하고 들어가야 한다? 이건 조폭들이 조직의 정식멤버 되는 과정인 것 같은데. 할말 없구려"라고 비판한 것처럼 책임을 병사들에게 떠넘기는 것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병영문화의 뿌리 깊은 쓴 뿌리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아니다. 결국 원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쓴 뿌리인 친일부역군대 문화를 청산하는 길이다.   

이는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정통성과 정체성인 항일 자주독립 전쟁의 위대한 발자취와 정신을 지워 없애버린 결과 장병들이 국군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잃어버려 생긴 병폐들이다. 일그러진 국군의 정통성을 되찾고 바로 세워 철두철미 교육함으로써 공통의 비전을 향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국방개혁의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핵심 과제다. 완전히 새로운 군대로 확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길이다. - 9일자 <한겨레> '중병 걸린 한국군, 개혁 시급하다'

독립군을 때려잡는 것이 목적이었던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던 친일부역자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2011년 상황이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처럼 갈 길은 멀고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우리 군 정통성이 광복군과 항일독립군에 있음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 군대는 이제 더 이상 전우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대가 아니라 생명을 진정 존중하는 군대 문화로 거듭나야 한다. 이 거듭남이 이루어지면 양심과 자유에 따라 총을 들지 않을 자유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군폭력 #일제잔제 #병영문화 #해병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