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 <내 마음이 들리니>, 피보다 진한 가족 이야기

등록 2011.07.14 15:14수정 2011.07.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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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대개 그렇듯이 재방송을 우연히 간헐적으로 보며 퍼즐 맞추듯이 줄거리를 추적하다 마지막 회를 제 시간에 보았다. 물론 퍼즐은 거의 다 맞춘 것 같다.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드라마였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회를 보면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홈 페이지에 소개된 제작의도는 "바보들의 감동적인 휴먼 러브 스토리" 라고 돼 있지만, 내가 볼 때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면서도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형제가 된 가족의 이야기였다. 가족. 가족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단혼가족의 역사는 인류 역사의 긴 과정에서 볼 때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가족은 경제적인 단위다. 원시공동체사회가 무너질 때, 가족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아시아적 공동체와 고전적 공동체는 대가족 중심, 게르만족 공동체는 소가족 중심이었다. 물론 혈연에 의한 가족이었고, 가부장제였다. 원시공동체사회가 붕괴됐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아직 가족 단위의 경제적 독립이 완성되지 않았은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공동노동이 전제되는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의 대가족, 또는 다른 가족과의 공동노동이 병행되는 소가족이었다. 공동체의 형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공동노동이 배제된 소가족이 지배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혈연으로 맺어진 가장 기초적인 경제단위이다. 아직도 농촌에서는 품앗이 공동노동이 존재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 사는 대다수 도시인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고 철저하게 소가족 위주로 지낸다. 옆집의 소년소녀 가장이 밥을 굶어도, 홀로 지내는 노인이 굶어죽어도 모르고 사는 세상이다. 개인주의 사회인 것이다.

이런 세태에 비추어 볼 때 <내마들>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봉영규(정보석)는 어렸을 때 지능이 떨어진다며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황순금(윤여정)에게 맡겨져 그녀의 아들이 된다. 황순금은 바보 아들은 떠맡는 조건으로 받은 돈으로 딸 김신애(강문영)를 학교에 보낸다.

이 아이들이 장성했을 때, IQ 70의 봉영규는 딸이 있는 청각장애인 나미숙(김여진)과 부부가 되고, 김신애가 야심가 최진철(송승환)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을 봉영규에게 떠맡긴다. 그는 봉마루(남궁민)가 된다. 봉마루와 나미숙의 딸 봉우리는 황순금의 손주요 봉영규의 자식이 되고 남매가 된다. 이것이 황순금 - 봉영규 - 봉마루 - 봉우리의 가족관계다. 여기에 한집에서 한 가족처럼 함께 사는 승철네가 있다.

이 가족의 끈끈한 정은 피보다 진하다. 가족은 꼭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유난히 피(혈연)를 강조하는, KBS에서 걸작이라며 재방송까지 한 <제빵왕 김탁구>와 대비되는 드라마다. 윤여정의 치매노인 연기와 정보석의 바보 연기는 일품이었다. 김재원의 청각장애 연기도 돋보였다. 이렇게 <내마들>은 가족의 문제 뿐 아니라 노인문제와 장애인 문제 등 복지의 문제를 함께 제기하였다. 마지막 회에 수목장을 치르는 장면도 신선했다.


<내마들>이 보여주었듯이 혈연가족만이 가족은 아니다. 혈연가족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사회를 깨고 부화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이다. 오늘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계급의식마저 희석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혈연가족을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마음을 더 열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특히 불우한 이웃들의 마음을 들어야 한다.

드라마로서 한계도 있다. 구조적인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황순금이 봉영규를 떠맡지 않았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국가는 그런 지체장애인들을 배려하고 있는가? 누구나 그런 환경에서 집을 뛰쳐나간 봉마루처럼 사회의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있을까? 청각장애인들에게 모두 차동주(김재원)처럼 말로 하고 문자를 듣는 폰을 갖게 할 수는 없을까? 치매노인은?

복지는 절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부자들의 선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종교집단의 봉사도 매우 제한적이며, 사회복지기관들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다.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정작 <내 마음이 들리니>로부터 들어야 할 마음은 이런 숙제들이 아닐까?    
#내 마음이 들리니 #MBC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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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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