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오전 집중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로 토사가 서울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부근 비닐하우스를 덮쳤다.
박정호
밤에 집중되리라던 비가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린다. 참 무심하기도 하지. 장마가 끝난 뒤에도 그리 퍼붓더니 아직 양이 안 찼나. 천재지변이라고 무책임하게 말을 하지만, 가끔 홍수와 가뭄이 오고, 그때마다 물이 길을 넘어 범람하거나, 강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건 자연스런 물의 순환 현상이다. 물길에 삶을 기대는 삼라만상의 생명들은 그런 순환에 맞춰 뿌리를 내리고 알을 낳았다. 생명의 세계에 맨 나중 들어온 사람도 마찬가지였는데, 언젠가부터 사람은 물의 자연스런 순환에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라니냐에 밀린 무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장마가 지났어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와중에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남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들어오고, 마침 대륙에서 확산되는 차가운 기단과 만나 거대한 물풍선이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떨어진다는 기상대의 설명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진단이다. 생소했던 '국지성호우'나 장마 전후의 '정체전선'은 2000년 이후 심화되는데, 라니냐가 철지난 북태평양 고기압을 우리나라에 밀고, 중국 장강 유역에서 이맘 때마다 물풍선을 몰고오는 이유는 뭘까. 온실가스 과소비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중국의 장강을 가로막은 세계 최대 샨사댐과 정녕 무관한 걸까.
거리에 '레인부츠'라 칭하는 장화를 신은 젊은 여성이 자주 눈에 띈다. 후텁지근한 계절에 무릎까지 오르는 멋진 장화가 피부에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은데, 예보를 믿었다 낭패를 본 시민에게 샌들 이상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지난 강우는 무릎은커녕 걷는 이의 허리까지 차올랐는데, 이러다 가슴까지 올라가는 장화가 패션용품으로 등극하는 건 아닐까. 개인이야 우산이나 장화로 대비할 수 있지만 인구가 집중된 도시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는 만큼 대책도 체계적이어야 사전에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도시는 대부분 사막이다. 모래사막보다 끔찍하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흥건히 젖어 빗물을 어디론가 흘려보내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그치자마자 바싹 마른다. 그래서 끔찍하다. 삼청동 계곡과 인왕산과 사직공원을 적신 빗물이 깔때기처럼 모여드는 광화문이 그렇고 우면산과 매봉산을 적신 빗물이 역시 깔때기처럼 모여드는 강남 일원이 그렇다. 모여든 빗물을 체계적으로 신속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시민의 일상은 버거워지고 때로 고통스럽다.
보습력 향상보다 치장에 바빴던 서울의 직무유기605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1032만의 인구가 북적이는 서울은 만원이다. 그 인구를 위한 막대한 면적을 콘크리트로 채웠지만 모자란다 하고, 콘크리트 공간을 연결하는 아스팔트도 붐비는 만큼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굽이쳐 흐르던 한강과 그 지천이 직선으로 좁아진 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였고 남산에서 국립공원인 북한산까지 온 산자락이 야금야금 보습력을 잃었다. 퍼붓는 빗물은 물론이고 가뭄까지 완충하던 숲과 물길이 끔찍한 사막으로 뒤바뀐 거다. 그만큼 체계적인 홍수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서울은 이번 호우로 도 넘은 개발의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막에 길든 시민들은 빗물이 머뭇거리면 귀찮아한다. 옷에 튀고 신발 속에 스밀 수 있으니 재빨리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라고, 지방자치단체는 그에 걸맞은 배수시설을 준비한다. 사막이 끔찍할수록, 내리는 빗물이 많을수록, 배수 규모가 늘어야 시민들은 안심할 수 있는데, 서울시는 실패했다. 겉모양을 앞세운 나머지, 허리까지 빠진 서울은 결국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자초했다. 백년 빈도의 강우라는 걸 유난히 강조하지만, 지구온난화에 이은 국지성 호우는 1990년대 이후 심화되었다. 도시의 보습력보다 치장에 바빴던 서울에서 발생한 이번 수해는 정책결정자의 직무유기를 여실히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