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다빵.
조을영
사라다빵. 대다수의 분들이 그러하듯 이건 제게도 추억의 음식입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 방향이 같은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집에 오다가 배가 고프면 시장 어귀 빵집에 들러 사먹던 인기 메뉴였으니까요. 다른 빵들은 가게 안에 정리되어 있어도 사라다빵이나 고로케, 도나스('샐러드빵', '크로켓', '도넛' 이라고 해선 절대 그 느낌이 살지 않죠) 같은 것들은 항상 밖에다 죽 늘어 넣고 진열을 하셔서 우린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들을 사 먹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샐러드' 라고 발음하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발음했다간 '뭐야? 재수없어'하는 소리 듣기 십상이었죠. 하지만 일본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온 나라 안에 퍼져있던 터라 '사라다'가 아닌 '샐러드'가 옳은 발음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쩐지 입에 붙지 않은 말이었죠. 게다가 세월이 이만큼 흐르고 보니 '사라다'란 말을 간만에 몇 번 불러보면 그 시절의 사회 분위기와 추억이 함께 묻어와서 어쩐지 뭉클합니다. 다시 갈 수 없는 소중한 시절, 그곳에는 추억의 사라다빵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해서 첫 가사 실습시간에 만든 것도 사라다빵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사선생님이 출산 휴가 중이어서 서른 살 정도 된 임시 교사분께 가사를 배우고 있었는데, 굉장히 까다롭고 엄격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계신 분이셨죠. 그러던 어느날 가사 실습 주제로 '사라다빵' 이라고 칠판에 크게 적으시고 재료와 만드는 법도 열심히 설명하셨어요. 그리고 며칠 후 실습실에서 우리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손으로 오이를 얇게 썰고, 햄을 깎둑썰기하고, 양배추를 곱게 채치고, 완숙 달걀을 잘게 다졌습니다.
"오이가 너무 두꺼워. 더 얇게!""달걀이 덩어리졌잖아. 안돼!"우리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재료를 다듬어 놓으면 그 선생님은 하얀 조리사 가운을 입은 채탁자 사이를 오가며 썰어놓은 재료들을 검사하러 다니셨죠. 게다가 분필 만지고 머리 쓰다듬던 손으로 우리의 그 소중한 식재료를 마구 주물럭거리면서요. 그래서 우린 선생님의 손이 닿은 부분은 몰래 집어내고 요리를 계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