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1일 서울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유성호
김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4가지 호소2009넌 7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폐렴 증상이라고 하지만 주치의는 전신 무력감(general weakness)이라며 걱정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날 오후 동교동 사저 앞 길목에서 김 대통령은 휠체어에서 내려 불과 두세 걸음 앞에 있는 승용차를 힘겹게 올라탔다. 대통령을 부축하는 경호원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누구도 이것이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퇴임 후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위기는 있었지만 모두 걸어서 혹은 휠체어를 타고 동교동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입원 37일만인 8월 18일 세상을 떠나셨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2년이 됐다. 김 대통령은 85년 생애 중 마지막 1년을 불꽃처럼 사셨다. 역주행하는 민주주의 현실을 질타했다. 무너져내리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며 국민들을 향해 호소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생애 마지막 순간의 호소를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김 대통령의 호소는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관련기사: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4가지 호소).
첫째, 남북관계는 6·15로, 북핵문제는 9·19로 돌아가 풀어라. 둘째, 민주당과 야당, 시민세력은 단결하고 연합하라. 셋째, 이명박 정부는 불행한 길을 걷지 말고 국정방향을 전환하라. 넷째,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김 대통령의 이런 생애 마지막 호소는 사후 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고 있을까. 김 대통령 서거 이후 남북관계는 연평도 사태에서 보듯 무력충돌까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할 6자회담이 재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나 북핵문제를 풀어보려는 의지도 없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모든 정책('747정책', '비핵개방3000' 등)이 실패로 입증되고 있는데도 공허한 말잔치만 계속 하고 있다.
여기에 맞서는 야당과 진보진영 역시 무기력해 보인다. 전선은 지리멸렬하다.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한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진보진영의 연합문제는 정파들 사이에 입장만 난무할 뿐 행동이 없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부활최근 12·12 반란에 가담한 안현태씨가 국립묘지에 묻혔다. 이미 쿠데타에 가담하거나 친일 활동을 한 인사들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지만 이번 안현태씨의 국립묘지 안장에서 5공 세력의 후안무치를 본다. "광주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는 노태우씨의 회고록을 통한 망언도 우리 사회 보수진영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안현태씨의 국립묘지 안장이나 노태우씨의 망언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광주학살은 북한군 특수부대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버젓이 나왔다. 5·18의 진상은 이미 밝혀져 있고, 5·18은 국가기념일이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행사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이런 역사 왜곡에 한마디도 못한다. 오히려 이런 주장에 동조한 사람을 민주평통 수장의 자리에 앉혔다.
이 정부 들어오면서부터 '독재자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독재자 박정희'를 '청년영웅'으로 미화하는 일이 시작됐다. 이러한 현상들이 거리낌없이 등장하고 이를 방관하는 것을 보면, 지금 정권이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정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또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마도 보수진영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내려오는 기득권 동맹을 기반으로 정권을 다시 잡아, 자신들만의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만일 이것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보수진영의 전략적 선택이라면 그건 착각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3번의 독재, 즉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를 싸워서 이겨낸 국민이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행적과 그들이 불법적인 권력을 통해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고, 김대중-노무현 시대, 즉 '김-노시대'가 추구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확연히 구분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쟁취되었는지, 전자의 세력들과 그 후계자인 이명박 시대가 얼마나 우리 역사를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연설(2009년 6월 9일)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지난해 6·2지방선거와 올해 4·27 재보궐선거에서 투표로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좋은 정당에 투표하고, 나쁜 신문 보지 않고, 인터넷에 댓글을 달라"는 김 대통령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있다.
두 개의 칼을 가진 국민들국민은 두 개의 칼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하고 기득권에 기대어 정권을 연장하려는 세력도 심판할 것이다. 또한 우리 국민들은 그 이유가 욕심이든 리더십 부족이든 함께 뭉치지 못하는 민주진보진영도 심판할 것이다.
내년은 중대한 역사적 시점이 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정상적이고 품격 있는 방향, 즉 자율 개성 창의가 넘치는 민주사회,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구현하는 '분배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회,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의 길로 나갈지, 아니면 지난 3년 반처럼 민주주의 퇴행, 빈곤화 성장, 남북대결을 계속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기로에 있다.
이 기로에서 방향을 정하는 것이 국민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많아지고 커갈수록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이 중요하다. 김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호소를 실천하느냐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더 좋은 정부를 세우냐에 달려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최경환은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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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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